대학 등록금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김종엽

김종엽 / 한신대 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립대 기준이지만, 대학 등록금 연간 천만원 시대에 돌입했다. 더불어 OECD 국가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학비가 비싼 나라가 되었다. 사실 교육비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은 터질 듯이 부풀어 있다. 한때 교육비 문제는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비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중학교를 거쳐 초등학교로까지 사교육비 부담이 커져갔고, 대학생들의 각종 취업준비를 위한 사교육비도 크게 팽창해갔다.

그러더니 마침내 대학 등록금마저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 된 것이다. 아들 있는 집은 그래도 한 사람을 군대 보내서 등록금 부담을 분산시켜보지만, 딸 둘이 대학을 다니면 그마저도 어렵다고 투덜대는 경우도 주변에 꽤 있다. MB정부 각료나 그 자녀는 군대를 가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서민층의 대학생 아들에게 군 입대는 효도의 일환인 경우가 많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

대학 등록금이 치솟자 그 대책으로 정부는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를 내놓았다. 애초에 공약했던 (어쩐 일인지 다들 그렇게 알고 있는데 MB정부는 그런 공약 한 적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는) ‘반값 등록금’에 비하면 정말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의 대책이다. 대출자격이 까다롭고, 대출금리는 복리로 계산되며, 그 금리 자체도 낮지 않다. 게다가 기존의 차상위 계층 장학제도와 소득분위별 이자 지원도 폐지되어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조삼모사에 가까운 제도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 제도는 등록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라기보다 학부모가 지던 등록금 부담을 학생 자신에게로 옮겨놓는 매개장치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 매개장치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모처럼 사회적 불만이 모아져 형성된 사회적 의제를 대출금 상환시기까지 미뤄둘 수 있게 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 자식간에 정말 나누기 어려운 대화를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는 결국 당의정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이런 비유적 표현이 이보다 잘 어울리는 경우가 별로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등록금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그것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등록금 문제의 뒤에 있는 진짜 문제는 대학생을 교육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교육비 문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등록금 문제가 한창 시끄러울 때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우리나라처럼 등록금이 싼 데가 없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대학 총장의 발언으로는 정말 어처구니없고, 교육비를 피교육자가 전적으로 부담해온 우리 사회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발언이지만, ‘등록금’을 ‘교육비’로 바꾸어 본다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교육의 질 높이고 등록금 부담 낮추는 길

연간 등록금 천만원이 온전히 대학생 교육비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전액 교육비로 돌린다고 해도 사실 그것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볼 때 높은 편은 아니다. 선진국 수준이 되려면 대학생 1인당 교육비가 최소한 연간 2천만원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생 교육비가 거의 전적으로 등록금에 의존하지만 그 액수가 질 좋은 고등교육에 필요한 수준에는 못 미치기 때문에, 등록금은 학부모의 등골을 빼는 수준인데도 대학교육의 질은 나쁜 것이다.

좋은 고등교육을 위해서는 교육비를 올려야 하고, 대학생과 학부모를 위해서는 등록금을 낮추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가계의 부담을 줄이고 총교육비는 늘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 그 차액을 부담해야 한다. 새로운 부담의 주체는 현재 우리 대학체제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에 상응하는 부담을 지지 않고 있는 쪽이 되어야 할 것인데, 필자는 그것이 대기업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은 대학교육은 물론이고 취업을 위해 사교육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이른바 ‘스펙’이 가장 우수한 인재를 저렴하게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에 상응하는 기여를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시로 대학교육의 질이 낮다고 불평을 터뜨림으로써 자신이 얻은 혜택을 은폐하며, 더 나아가 시장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해당 기업의 직무훈련을 통해서 형성되어야 할 능력까지 대졸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작 그들이 하는 일은 기업 소유주의 이름을 건 건물을 지어주고 생색을 내는 것이거나 그도 아니면 아예 대학을 인수해 기업처럼 바꾸는 짓을 벌일 뿐이다.

대기업이여, 대학교육에 받은 만큼 기여하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의당 자신들이 받은 혜택에 상응하는 기여를 하게 만드는 제도와 방안을 고안해야 하거니와, 이를 위해 대기업의 기여를 늘리는 방향으로 교육세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에서부터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대학교육 발전을 위한 기금을 형성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 제도와 방안이 어떻게 마련되든 그런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의 가닥이 잡힐 때, 총교육비는 올리지만 등록금을 낮출 수 있을 것이고, 우수한 박사들이 최악의 비정규직인 시간강사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오늘의 대학생이 내일의 신용불량자가 되는 대출제도를 피할 수 있고, 대학교육의 질은 상승할 것이며, 더불어 기업과 사회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10.4.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