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평화·협력 위한 2012 뉴욕회의, 그 취지와 성과

이기호

이기호 /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 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 3월 7일부터 9일까지 열린 동북아 평화와 협력을 위한 뉴욕 회의에는 수십명의 기자들이 회의장 로비를 에워싸고 취재경쟁을 벌였다. 언론의 관심은 2월 23일 북경에서 열린 북미회담 이후 북측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리용호 외무부상과 한국측 대표인 임성남 본부장 간의 만남이 이뤄질지 여부에 쏠렸다. 여기에는 김정은체제의 국제외교 및 대남정책의 방향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올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번 뉴욕 회의가 이른바 채텀하우스 원칙(Chatham House Rule)을 적용, 참가자들이 솔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위해 발언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데다가 특히 언론의 북측 대표단 접촉을 극도로 제한했기 때문에 회의장에 출입할 수 없었던 기자들은 애를 태웠다. 그 까닭인지 이번 뉴욕 회의는 회의장 내부의 속깊은 논의와는 별도로 회의장 밖의 기자들은 단편적인 정보를 토대로 보도했고, 마치 이번 회의가 남북 정부간 만남을 위해 주선된 자리인 것처럼 알려지기 시작했다.

 

두가지 키워드, 시민사회와 동북아

 

사실 이 회의는 시민사회가 중심이 된 모임으로 기획되었다. 비정부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지속 가능한 평화의 틀을 구축하기 위한 취지로 1년 넘게 준비된 트랙 2 모임이다. 다만 우연히 이 시점에 북미간 대화가 열렸고 북측에서는 리용호 외무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구성되었기 때문에 정부간 협의의 가능성이 주목받았을 뿐이다. 작년초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와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뉴욕 회의를 구상할 무렵 염두에 두었던 회의 취지 가운데 일부는 다음과 같은 동북아 지역의 특수성이다.

 

첫째, 한반도의 분단상황은 동북아의 냉전체제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이므로 분단 극복과 냉전구조 해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분단 극복은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모든 냉전적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간 합의와 협력만으로는 부족하며 인식의 틀을 변화시키고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협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셋째, 동북아의 비대칭구조를 극복하고 G2로 부상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상대화하며 군사력이 아닌 평화와 협력에 기초한 안보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동북아 지역은 국가 규모, 경제발전 정도, 민주화 및 시민사회의 성장 정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협력의 파트너를 찾고 그 틀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본 회의에는 독일과 EU에서 온 참가자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6자회담국은 아니지만 6개국 모두와 국교를 맺고 있는 몽골도 참여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헬싱키 프로쎄스’와 동서독의 통일, 그리고 새로운 유럽의 탄생 경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 기대했고, 이미 비핵국가를 선언한 몽골이 동북아비핵지대를 지향하면서 동북아 다자협력의 매개역할을 할 것을 골자로 하는 ‘울란바따르 프로쎄스’ 등 다양한 다자간 안보체제의 경로를 구상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번 회의에서 어떠한 합의나 새로운 정책 대안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각자의 입장을 솔직하게 나눔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신뢰의 싹이 자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일부 언론은 미국의 적대시정책을 철폐하라는 북측의 기존 입장이 되풀이되었을 뿐이며 남북간에 별도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한국정부가 북미를 따라다닌 꽁무니 외교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대화와 만남, 그 자체가 이미 평화 프로쎄스

 

그러나 회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남북간의 별도 모임은 없었지만 남과 북은 회의장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설득력있게 피력했고 이는 서로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모임에 초대된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닉슨대통령의 북경방문을 통한 미중 정상회담 전해인 1971년 자신이 북경을 방문하기 전까지 대사급 수준의 미중간 회의가 136회나 열렸음을 강조했는데, 이는 대화와 만남이 신뢰 구축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한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는 굳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진지한 태도와 자세에 매료되기도 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신뢰감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화는 그 자체가 이미 평화 프로쎄스인 셈이다.

 

이번 회의에 참가한 북측은 모든 관계국들에게 그런 신뢰의 이미지를 심는 데 기여했다. 행사가 열린 3월 7일부터 9일까지는 2월에 이미 시작한 키리졸브 훈련이 진행 중이었고, 회의 직전인 3월 4일에는 한국 군부대에서 벌어진 북한지도부 모독행위를 규탄하고 ‘남측과의 성전을 불사하는’ 15만명의 대규모 군민대회가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되었다. 또한 탈북자 북송 문제로 북한 인권이 다시 국제무대에서 논란이 되고 있었다. 이런 정황에서 북이 참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정은체제가 북미간 대화를 포함하여 향후 적극적인 외교를 펼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남측의 정부인사가 참석하는 것을 사전에 인지했고 이들이 배석한 회의장에서도 북측 참가자들은 매우 진지하고 여유있게 임했을 뿐 아니라 아침과 저녁 식사자리에 한번도 빠짐없이 모든 참가자들과 자유롭게 섞여 앉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굳이 회의에 참가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책과 동북아 평화를 위한 첫 단추에 대한 해답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정답의 목록은 6자회담의 성과인 9․19합의(2005)는 물론 남북 정상들이 합의한 6․15선언(2000)과 10․4선언(2007), 북미 공동코뮤니케(2000), 그리고 북일간의 평양선언(2002) 같은 양자간 합의에 모두 나와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이번 모임에서도 확인되었다.

 

시민사회의 지혜로 지속 가능한 평화를

 

다만 리용호 외무부상은 이를 위해서 미국의 ‘마인드 셋’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북측은 새로운 지도부가 과거 세대들과 달리 미국과 싸울 뜻이 없다는 ‘평양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심지어 미국이 북한에도 핵우산을 제공하면 당장에 핵을 폐기하겠다는 북측의 발언이 국내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이는 북의 핵개발이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므로 관계개선이 이루어지면 핵문제 해결은 어렵지 않다는 북측 주장을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었다. 미국은 북이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먼저 요구했지만, 핵개발을 포기할 테니 국교정상화를 통해 친구관계를 맺자는 북한을 적으로만 돌리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북미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최근 불거진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는 관련국들을 긴장시키고 있고 합의 자체를 원점으로 돌릴 위험마저 감지된다. 그러나 이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요구하고 나선 북한과의 합의는 서로가 그대로 준수하고 인공위성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으로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다. 2012년 주체 101년을 맞이하는 북한이 ‘북핵외교’에서 핵을 포기하고 ‘친구외교’로 전환하며 동북아 각국이 새로운 정부를 출범하는 2013년에 지속 가능한 평화의 기틀이 새롭게 놓이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과 더불어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국경을 넘어서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함께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2012.3.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