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민주화혁명의 왜곡과 군사개입

정상률

정상률 /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발생한 한 청년의 분신자살이 ‘재스민 혁명’을 가져왔다. 여기서 촉발된 ‘민주화 나비효과’는 작은 불씨에도 살아나는 들불처럼 멀리 거세게 퍼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반동현상이 나타나면서 또다른 권위주의 정권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리비아의 경우 이미 내전이나 국제전으로 변질되었으며, 다른 몇몇 나라들도 왜곡될 조짐이 보인다.

 

이번 중동 민주화혁명을 두고 많은 학자들과 언론은 예측 실패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이제까지 중동지역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슬람이 정치발전에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에 촛점을 맞추어왔다. 또한 2001년 9·11사건 이후 ‘정치이슬람'(political Islam) 세력에 대항한 ‘테러와의 전쟁’에만 몰두함으로써 정치·사회·문화 전반적인 대변혁의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러한 예측 실패는 중동을 하나의 통합된 실체로 보는 인식의 오류 때문이기도 하다. 중동에는 ‘정치이슬람’만 존재하고, 모든 중동국가가 ‘아랍민족주의’에 기초하여 통합되어 있으며, 그들 전부가 하나같이 반미·반서구적이라는 식이다.

 

중동의 복합적 정체성 이해가 우선

 

중동의 정치·사회·문화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우선 몇가지 정체성을 이해해야 한다. 중동아랍이슬람 지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상들은 크게 부족적 집단정체성, 이슬람 종교정체성, 아랍민족주의, 주권국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지대추구경제 등으로 설명된다. 이 지역의 정치지도자들은 경제발전정책, 정치적 입지, 국민과의 소통방식, 그리고 이번과 같은 민주화 요구에 대한 대응에서 특정한 정체성을 더 강하게 드러내왔다. 그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가다피가 통치해온 리비아이다. 그런데 최근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가 내전으로, 급기야 국제전 양상으로 번진 데는 이같은 고유한 정체성 문제에 더해 국제사회의 개입과정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이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그 진행과정을 시간순으로 분석해보자.

 

2월 15일 리비아 동부지역 중심도시 벵가지에서 반정부시위가 시작되어 20일경에는 트리폴리까지 확산되었고, 시위대와 보안군이 격돌하는 과정에서 가다피는 전투기와 헬기 등을 투입해 반정부 시위대 진압을 시도했다. 법무장관 알 잘릴이 물러난 이후 내무장관, 석유장관, 검찰총장 등 가다피의 주요 측근이 사퇴하기 시작했다. 21일부터 가다피에 충성하는 사하라지역의 부족군대가 트리폴리에 도착하면서 친가다피 대 반가다피로 갈라져 급기야 부족간 갈등으로 번졌다. 2월 26일 과도정부가 구성되고 제1차 UN 안보리 결의(만장일치)를 통해 가다피측을 제재하기 시작한 이후, 3월 16일 제2차 안보리 결의(상임이사국 중 중국, 러시아 기권, 비상임이사국 중 독일, 인도, 브라질 기권)를 통해 리비아 국가위원회(과도정부)와 아랍연맹이 요구해왔던 리비아 상공에서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결의했다. 이처럼 반정부 민주화시위, 권력중심부 세력의 일부 이탈,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 선포 및 무차별 공격, 부족간 갈등, 반정부세력의 임시과도정부 구성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민주화혁명의 왜곡이 나타났다.

 

국제기구의 개입과 각국의 이해관계

 

여기에 UN과 NATO라는 국제기구가 개입하면서 사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행위자의 다양화로 인한 혼란이기도 하지만, 리비아 시민의 보호와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명분과 달리 관련국들의 이해가 대립하고, 군사개입 결정과 UN 결의안의 실행과정에서 분열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리비아와 무기수출 계약을 맺은 러시아, 사활을 걸고 아프리카에 진출하고 있는 중국, 리비아 석유산업에 대거 투자한 프랑스, 과거 리비아를 식민지배했으며 기득권 및 전쟁난민 문제에 민감한 이딸리아 등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특히 프랑스와 이딸리아 등 유럽국가들은 전쟁난민 1인당 하루에 30~40달러의 유지비가 들기 때문에 내전 조기종식을 위해 공세에 적극적이다.

 

반면 미국 오바마 정부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스마트 파워’를 바탕으로 하는 외교적·평화적 해결이라는 대외정책 기조를 충실히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전쟁비용에 비해 경제적 실익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다. 2003년 ‘리비아식 핵 해법’을 통해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는 개선되고 있었고, 특히 미국은 리비아 석유에 큰 이권이 없었다. 또한 지상군을 투입했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경험, 천문학적 전쟁비용, 반가다피 세력에 포함된 알 카에다에 대한 불신 등 여러 이유로 공습에서 한발 빼거나 작전지휘권을 NATO로 넘기려고 애썼다.

 

내전과 국제전으로 왜곡되는 민주화혁명

 
이러한 각국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 탓에 국제기구의 군사개입이 늦어졌을 뿐 아니라 그후에도 지상군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다국적 연합군 내부에서도 갈등이 일면서 리비아 내전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군사적 개입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과 명분 없는 개입 사이의 괴리, 공습과 지상군 투입 사이의 지연, 전비 분담에 대한 각국의 입장 등 정책결정상의 여러 난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전이 길어지면서 얼마나 많은 리비아 국민과 여러 부족민이 희생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며, 과연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도 미지수이다.

 

UN 다국적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NATO가 가지고 있는 이 이상한 전쟁에서 미국과 가다피 측은 출구전략을 찾는 중으로 보인다. 이는 장기내전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고, 결국 동서분할이라는 또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한편 다국적군이 적극적으로 참전하거나 반대로 완전히 손을 땔 경우에는 반가다피 측과 가다피 측 중 어느 하나가 승리할 것이므로 통일국가를 유지하겠지만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 뻔하다. 어느 경우든 리비아 국민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민주화 시위가 내전으로, 또 국제적 군사개입으로 왜곡되는 현상은 국제사회의 중동정책이 지닌 난점을 다시 확인해주고 있다. 리비아와 중동아랍이슬람 시민들이 최소한의 희생으로 빠른 시일 안에 민주화의 꽃을 피우기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희망할 뿐이다.

 

2011.4.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