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작은 대문으로 나가서 도랑 쪽으로 걸어가다가 아버지가 우사 쪽을 바라보았다.
―인자는 쓸모없는 것이니 허물어야 할 터인데……
아버지는 우사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안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저게 분꽃 씨앗이냐? 물었다. 엄마가 가꾸던 텃밭 한쪽에 분꽃이 피었다가 지고 검은 열매가 맺혀 있었다. 아버지는 단단하게 맺혔고나, 감탄을 했다. 이맘때쯤은 열매들이 야무지게들 영근다, 했다. 마당의 남촌도 곧 붉은 열매가 둥글둥글 맺힐 것이니 살펴보라고도. 구기자며 오미자며 다 단단해지는 때라고. 도랑 팽나무 아래에 놓여 있는 평상에 앉아서 늙은 호박 속을 파내고 있던 내촌 할머니가 아버지와 나를 바라봤다.
―못 가고 또 만나네.
―뭐 한다요?
―호박 속 파고 있는 거 안 보인가? 가기 전에 호박 버무리나 해 먹고 갈라고.
아버지가 웃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믄 해 먹고 가야제, 길이 멀다고 안 허요.
―내가 언제 죽겄소?
―그것을 내가 어찌 알겄소.
―인자 살기 싫은디 안 데려가네.
―뜻대로 된다요?
―넝뫼 양반은 좋겄소. 이도 다 해 넣으니 튼튼한 이를 하고 갈 수 있응게.
―그게 그렇게 되능가.
―염색해야 쓰겄소. 언지 갈지도 모르는데 그리 허연 머리로 갈랑가?
―해야제.
―늘 깨깟하게 하고 있어야제 언지라도 갈 수 있게.
―그리야제.
―어젯밤 꿈에 그 양반이 나를 데리러 왔는디 그놈의 장독 뚜껑 열어놓은 게 생각나갖고 뚜껑 닫으러 갔다가 못 따라갔당게.
내촌 할머니가 지칭하는 그 양반은 내촌 할아버지를 말함이었다.
―헌이 엄마가 서울에서 오믄 만나고는 가야제.
―언제 오요?
―올 때가 되어야 오겄지만.
―그 양반이 다음 판에 또 델러 오믄 그때는 장독 뚜껑이고 뭐고 다 두고 따라나설랑게로 보고 잪거든 어서 오라고.
―알겄소.
―꼭 전해주랑게.
―못 만나믄 가서 만나믄 되제.
―동지가 오면 새알 맨들어서 팥죽 쑤어야는디 그적까지는 오겄제?
아버지는 대답을 못 하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럼요, 곧 오실 거예요, 아버지 대신 얼른 대답했다. 아직도 엄마와 내촌 할머니는 동지에 같이 팥죽을 만드는가보았다. 동네에서 엄마와 내촌 할머니는 절기를 꼭 챙기곤 했다. 초사흗날엔 팥찰떡을 만들었고 대보름엔 오곡밥과 나물을 만들었다. 유둣날엔 흰쌀을 넣고 닭죽을 끓여서 나누었다. 그중에 동지팥죽은 엄마와 내촌 할머니 두 사람이 함께 했다. 팥을 삶아 으깨서 팥물을 만들고 반죽 덩어리에서 일일이 동전 크기만큼의 반죽을 떼어 손바닥 위에 올리고 공글려서 새알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려서였을 것이다. 어느해는 내촌 할머니네 부엌 큰솥에서 또 어느해는 우리 집 부엌에서 쑤어지던 팥물이 걸쭉하던 동지팥죽.
―그때엔 내가 여기 없을랑가도 모리겄지만.
―어쩌든가 인사는 하고 가시오, 월성 양반처럼 가지 말고.
나는 아버지와 내촌 할머니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아버지의 팔을 끌었다. 산보를 나가다가 여기에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대화가 매번 이런 식이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덤덤히 나누었다. 아버지가 이 치료를 마쳤을 때 신작로에서 만난 왕림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향해 인자 지대로 고기도 깨물어보다가 가소, 했다. 아버지는 그리야겠네, 했다. 말을 건네는 사람도 대답을 하는 사람도 덤덤했다. 도랑가에 사는 초강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걸어와 담장 위에 뭘 올려놓고는 마당에 서 있는 나에게 아버지 안 계시냐? 물은 적이 있었다. 병원에 물리치료 받으러 갔다고 하니 그냐…… 하면서 등을 돌리고 다시 도랑 쪽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무엇인가 싶어 담장 위를 살펴보니 오래된 양은으로 된 볼 속에 육만원이 접힌 채 들어 있었다. 저녁에 아버지에게 초강 할아버지가 놓고 갔다며 양은볼을 내놓자 아버지가 물끄러미 볼에 담긴 육만원을 바라보더니 그 양반이 곧 갈랑가비다, 했다. 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내가 아버지를 보자 아버지는 담담히 이 돈 꿔가고는 안 갚을라고 그동안 죽 나를 모린 척하더마는 갖다놓은 거 보니 갈랑가벼…… 했다. 가끔 혼자 동네를 걸어다니다보면 마을 집집마다 남아 있는 건 나이 든 사람들뿐이라는 게 느껴졌다. 마당에 풀들이 무성한데 마루에 노인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빈집에 사람은 없고 개 두마리만 마루 밑에 앉아 있기도 했다. 비어 있는 집 나무에는 새들이 더 많이 앉아 있었다. 새들은 어느 때 이 허공에서 저 허공으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다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지저귀는 게 아니라 싸우는 중인 게 틀림없었다. 허공의 새 싸움을 지상의 개들이 올려다보며 짖기도 했다. 이제 이 동네엔 사람보다 새와 개가 더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 새와 개만이 아니었다. 철길까지 고라니가 내려와 있었다. 밭둑을 걷다가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와 대면하기도 했다. 멧돼지는 나를 피하지도 않고 내 눈을 바라봤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지 뒷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멧돼지와 마주쳤을 때 대처 요령이 붙어 있기도 했다. 멧돼지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대처 요령을 읽어보았다. 소리치지 말고 급하게 움직이지 말고 멧돼지의 눈을 쳐다보며 천천히 자리를 피한다. 돌을 던지는 등의 위협 행위를 하지 않는다. 공격 위험을 감지하면 주위의 나무, 바위 등에 몸을 신속하게 피한다. 이따금 마주치는 동네 할머니들은 멧돼지 출몰도 두렵지 않고 시끄러운 새소리를 듣지 못하는지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나는 동네를 걸어다니다가 만나는 나이 든 분들을 대부분 알아보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지만 누군지 알아보지는 못하고 스쳐 지나오면서 할머니가 그 자리에 선 채 내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끼곤 했다. 어느날인가 뒷산까지 걸어갔다 오려고 나갔다가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기 전에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할머니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숱이 적은 백발을 쪽 찌고 여름인데도 추위를 타는지 옅은 색 스웨터를 입고 있는 서너명의 할머니들 중에 내가 몰라본 그 할머니도 섞여 있었다. 유난한 햇빛 때문이었을까. 백발이 반짝이는 할머니들은 현실 속의 사람이 아닌 유령 같았다. 다가가 껴안기라도 하면 바스라질 것같이 야윌 대로 야위었는데 움푹 들어간 눈에선 반짝 빛이 났다. 지난번에 내가 누구인지 몰라봤던 할머니가 맞구나, 너 넝뫼 양반네 큰딸 책벌레 아니냐? 나를 알아보며 말을 걸었다. 책벌레는 어렸을 때 내 별명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별명이 붙을 만큼 집에 책이 많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끝내 그 할머니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예, 안녕하셨어요…… 또 어색하게 인사를 하다가 끝을 얼버무렸다. 옆에 있던 할머니가 쟈가 누구라고?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넝뫼 양반 큰딸이구먼. 쟈가 콩알만 할 때부터 헛간에 들어가 책에 코를 박고 있더마는 낭중에 글씨 쓰는 사람이 되었다덩만. 내가 전날 알아보지 못한 할머니가 대꾸했다. 여러 할머니 중 한 할머니가 아, 니가 갸구나, 하고 난 뒤였다. 햇빛 속의 유령 같은 할머니들이 내 기색을 살피는 거 같더니 누구에게 건네는 말인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마디씩 내뱉으며 수다스러워졌다.
―오래 슬퍼하지는 말어라잉.
―우리도 여태 헤맸고나.
―모두들 각자 다르게 헤매다가 가는 것이 이 세상잉게.
할머니들이 다가와서 내 손을 잡고 어깨를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드렸다. 앙상한 손가락들인데 머리에 어깨에 등에 닿는 느낌이 부드러웠다. 나는 산보를 하다가 그렇게 할머니들에 에워싸여 느닷없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 내 마음에 패어 있는 것들이 흐릿하게 뭉개지는 느낌이었다. 그 열쇠가게의 남자에게 내 말이 너무 심했다고 사과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J시에 오지 않았던 지난 몇년간 나는 무엇이든 잃어버렸다. 거리에서 내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을 집까지 가져오지 못했다. 신발가게에서 산 슬리퍼를, 생선가게에서 구한 생굴을, 프린트할 종이가 바닥나서 문구점에 내려가 값을 치른 A4 종이 뭉치를 대체 어디다 두고 오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집에 오면 내 손은 빈손이었다. 나는 빈손을 쥐었다가 펴보곤 하다가 물을 틀어놓고 오래 씻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열쇠조차 다 잃어버리고 마지막 한개가 남았을 때 그 열쇠를 들고 동네 열쇠가게에 갔었다. 열쇠가게는 휴대전화를 개통해주는 가게와 좁은 골목 사이에 끼어 있었다. 출입문을 달 자리조차 없는 양쪽으론 좁고 안으로만 기다란 공간의 가게였다. 영화표를 살 때와 같은 창구를 사이에 두고 열쇠집 남자에게 열쇠를 내밀며 여섯개를 복사해달라고 했다. 열쇠를 받아든 남자가 안경 너머로 나를 쳐다보더니 잘 지내냐고 물었다. 이 사람이 나를 아는가? 싶어 갑자기 내 행색이 살펴졌다. 감지 않은 머리, 목이 늘어난 셔츠에 접어 신은 운동화…… 세수나 하고 나올걸, 생각하며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이삼십분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 이삼십분 후에 오겠다고 하고 동네를 걸어다니다가 다시 갔을 때 남자는 내 열쇠가 프랑스산 열쇠인데 홈이 정교하고 복잡하게 파여 있어 본을 구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복사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내 집 현관문 열쇠가 프랑스산이었던가. 남자는 난감하게 서 있는 나에게 쉽게 문을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열쇠통을 달았을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며 이참에 편리한 번호 열쇠로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함께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현관문 앞에서 아이는 가방에서 열쇠를 찾고 있는 내 앞에 손을 내밀곤 했다. 열쇠를 찾아 아이의 손에 올려주면 아이는 자물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이리저리 돌리다가 딸칵 소리가 나면 열렸다! 소리치며 나를 바라보곤 했다. 칭찬해달라는 뜻이었다. 천재다,고 칭찬한 적도 있었지. 아이와 현관문 앞에 서 있던 그 순간이 그리웠다. 나는 열쇠가게 남자에게 열쇠를 구할 수 있기는 한가를 물었고 남자는 시간이 걸릴 테지만 구할 수는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시간이 걸려도 똑같은 걸 구해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남자는 열쇠 한개에 들어가는 비용이 사만원씩 총 이십사만원이 되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한개에 사만원?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계속 사용하려면 할 수 없지, 싶었다. 대신 개수를 한개 줄여 다섯개만 만들어달라고 하고 지갑에서 십만원을 먼저 지불하고 내 휴대전화 번호도 알려주었다.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개 남아 있던 열쇠를 남자에게 맡겼기 때문에 남자로부터 열쇠를 찾으러 오라는 문자가 올 때까지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지냈다. 나는 바로 열쇠가게를 찾아가서 잔금 십만원을 치르고 집에 도착하기 전에 가방에 넣어둔 열쇠를 잃어버릴까봐 가방을 꼭 붙든 채 집에 와서 새로 복사해온 열쇠를 시험해봤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것도 다섯개 모두. 차례로 세번씩 시험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열쇠가게로 내려가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하자 남자는 그럴 리 없다고 했다. 자신이 이 자리에서 열쇠복사를 해온 지 이십년인데 아직까지 자신이 복사한 열쇠로 문을 열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고. 나는 열쇠가게 창구 바깥에 서 있고 남자는 창구 안에 있었다. 유리막을 사이에 두고 나는 세번씩이나 시험을 해봤는데 열리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고 남자도 그럴 리 없다는 똑같은 말을 연이어 했다. 남자는 내가 가서 시험해봐서 열리면 어쩔 거냐고 화까지 냈다. 그때도 내가 열리지 않아요,라고 하자 남자는 함께 가보자고 했다. 남자도 자신이 복사한 열쇠로 문을 열지 못했다. 다시 내게서 원본과 복사한 열쇠를 가지고 내려간 남자가 이틀 후에 열쇠 가져가라는 문자를 보내와서 받아와 열어봤으나 상태가 똑같았다. 내가 다시 열쇠가게를 찾아가 이번에도 열리지 않는다고 하자 남자가 창구 바깥으로 돈을 밀어내며 재수 없게,라고 했다. 처음엔 잘못 들었는가, 했으나 내 귀엔 남자가 방금 내뱉은 재수 없게,라는 말이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이십만원 모두 만원짜리 지폐로 지불했는데 남자가 창구 앞에 내놓은 건 오만원권 세장이었다. 갑자기 코피가 터지는 느낌이었다. 오만원 더 주셔야 맞아요, 내가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말하자 남자는 한개에 삼만원씩 다섯개이니 십오만원이 맞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한개에 사만원씩 이십만원이었다고 말했다. 남자의 뒤로 셀 수 없이 달려 있는 수많은 자물쇠와 열쇠들이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로부터 돈을 받으려는 게 아니었다. 문이 열리는 열쇠를 받으려는 것뿐이어서 한번 더 살펴봐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느닷없이 그의 입에서 재수 없게,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입술이 꽉 다물어졌다. 내가 이 열쇠 찾아내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 줄 아느냐는 남자의 말은 이미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차분히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번호 열쇠를 새로 달아도 십오만원이 든다고 당신이 말했다, 열쇠 다섯개를 복사하면 한개에 사만원씩 이십만원이니 복사하는 게 비용이 더 든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쇠를 복사해달라고 한 것을 잊었느냐……고. 남자는 내 설명을 듣고는 돌변해서 창구에서 뛰어나와 자기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곧 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남자는 소설가라더니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거짓말을 한다며 심보를 그렇게 쓰니 아이가 죽은 거라고 내가 모를 줄 아느냐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길 가던 사람들이 열쇠가게 남자와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지나갔다. 건너편에서 신호에 걸려 있다가 길을 건넌 어떤 이는 아예 옆에 서서 구경을 했다. 내 심장박동 소리가 빨라지며 귀에 열이 오르고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내 손엔 남자가 복사한, 문이 열리지 않는 열쇠들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외쳤다. 당신, 평생 저 안에서 열쇠나 복사하면서 살아! 흘러내리는 코피를 손바닥에 받아 훅 뿌리는 심정으로 외쳤다. 사람들이 고개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붉어진 얼굴로 남자를 밀치고 수군거리는 거리의 사람들도 밀치고 앞을 향해 걷는데 나도 모르게 아버지, 부르고 있었다. 열쇠가게의 남자에게 내가 내뱉은 말은 나를 찔러댔다. 나는 자주 내가 내뱉은 말에 깊이 찔려서 자다가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 있곤 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면 거칠어진 손바닥이 뺨을 긁어놓았다. 할머니들이 그 뺨을 쓸어주고 있었다. 얼마나 지나 나를 에워싸고 한마디씩 하던 할머니들은 우리가 언지 또 보겄냐, 뭣을 허든 너도 잘 마치고 와라잉, 하더니 등을 돌리고 내가 걸어온 쪽으로 느릿느릿 내려갔다.
너도 잘 마치고 와라잉, 하던 메마르고 갈라진 목소리가 귓전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 내가 헛것을 봤거나 꿈을 꾼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아버지, 이삭이가 저기 있네.
내촌 할머니와 헤어져 수리조합 길 쪽으로 들어서는데 논에 지어놓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삭이가 보였다.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삭이를 바라보았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나오다가 아버지와 나를 보고는 어디 가셔요? 물었다. 아버지는 이삭이 묻는 말엔 대답을 안 하고 비닐하우스 앞에 세워놓은 새 콤바인을 바라보았다. 새 콤바인 뒤쪽으로 이앙기, 잡화기, 경운기들이 나란나란 세워져 있었다.
―이거 새로 들였어요. 올해는 이것으로 추수를 하려고요.
이삭이 새 콤바인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있던 거는 어쨌냐?
―새 기계 나온게로 헐값에 내놔도 임자가 안 나타나서 삼산리 기식이가 쓴다길래 거기로 보냈는디요.
―전에 거 들인 지 몇년이나 되얐다고 벌써……
―기계라는 것이 이삼년만 지나도 중고가 돼버린게요. 겨우 기계값 갚고 나면 새 기계가 나오고……
―농협서 임대를 해줘야제 어떻게 개인이 기계값을 다 부담헌다냐?
―건의는 계속 넣고 있는디 그게 수월치가 않네요.
―이계장한티 말해봐라, 그 사람은 그리도 말귀를 알아들응게.
―그러고는 있는디……
전화 목소리는 안 들린다고 하더니 들판의 이삭과 한참 대화하는 아버지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또 바람 불고 비 온다고 안 허냐. 태풍 피해가 없게 잘 살피라.
이삭은 어젯밤에는 산에서 삯이 내려와서 비닐하우스 안의 닭을 물어가려다가 개에게 물어뜯겼다고 했다. 어젯밤 그 비바람 속에서? 멧돼지가 내려오는 것은 자주 봤는데 삯이 내려온 것은 처음 봤다며 이제 산에 삯까지 많아진 모양이라고 했다. 논둑을 걸을 때 혹시 다친 삯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이삭의 말을 알아듣는지 아닌지 아버지는 반응이 없었다. 이삭이 갑자기 누나…… 나를 부르더니 누나가 여기 있다고 했더만 처가 두가지를 물어봐달라는 게 있는데 했다. 이삭의 아내를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두가지나? 농담을 하며 이삭을 쳐다봤다. 하나는 처가 글을 써둔 게 있다는디 그거 좀 읽어봐줄 수 있겠는지 물어봐달라고 하네. 응? 나는 입안에 물고 있던 얼음을 통째로 삼킨 때처럼 놀랐다. 이 시골에서 누군가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이삭의 아내는 베트남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그녀가? 나는 당황해서 또 한가지는 뭔데? 하고 물었다. 울먹인다는 것이 우는 것인지 아니면 울려고 하는 것인지 물어봐달라고 하던디. 이삭은 처가 이제 한국말을 자신보다 잘하는 거 같은데 글로 쓰려고 보면 여기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나 알아듣는 말이 많다고 아내가 말하더라면서 그런가 누나? 하고 물었다. 이삭의 얼굴이 진지해서 나는 지금은 아버지와 산보 중이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그렇게 이삭과 헤어지려는데 이번엔 아버지가 다시 콤바인 쪽으로 몸을 돌리고 이삭아, 하고 불렀다. 이삭이가 새 콤바인에 올라가다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나 없이도 올해도 수매 잘할 수 있제?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렷했다. 어디 가시게요? 이삭이 아버지 옆에 있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아니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어디 안 가시면 올해도 살펴주셔야지요. 아버지가 대답을 하지 않자 이삭이 새 콤바인 비닐을 뜯어내며 다시 어디 가시는데요? 물었다. 아버지는 어디로 가는지를 누가 알겄냐, 이삭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혼잣말을 하며 지난밤에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난 수리조합 둑길로 올라섰다.
아버지와 함께 철길 너머의 들판까지 걷는 동안 두대의 기차가 지나갔다. 이삭의 말대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점점 내려오고 있는지 논둑에서 몇번이나 고라니를 만났다. 나는 도랑과 논둑 사이에 쓰러져 있는 노목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정월 대보름날에 줄다리기를 마치면 그 줄을 동여매놓곤 하던 나무다. 추수가 끝난 후에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벼가 털려나간 후의 짚을 모아서 줄다리기에 사용할 줄을 엮곤 했다. 그 짚줄은 어찌나 굵고 굵은지 아이들이 위에 올라가 뛰어다녀도 될 정도였다. 그 줄이 생각나자 손바닥이 간질거렸다. 줄다리기가 있던 날은 노인이고 아이이고 할 것 없이 나와 힘을 보탰는데 힘이 달려 끌려갈 때면 줄이 술술 빠져나가던 감각을 손바닥이 기억하고 있다니. 이긴 쪽 줄을 가지고 있으면 풍년이 온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줄다리기에 지는 해에도 이긴 쪽에서 줄을 얻어와 저 나무에 둘러놓고 들판을 오갈 때마다 나무에 매놓은 줄을 바라보곤 했다. 이젠 줄다리기를 할 사람도 없고 줄을 매어놓을 나무도 저리 쓰러져 있구나, 싶어 유심히 나무를 바라보다가 나는 눈을 부릅떴다. 뿌리가 도랑에 닿아 있어서일까. 노목은 양옆으로 찢어지듯이 쓰러진 채로 계속 살아 있다. 쓰러진 채 옆으로 자라난 가지가 굵기까지 하다. 그 어느 가지에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 두마리가 앉아 있었다. J시에 와서 저 나무를 지금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쓰러진 채 살아 있다는 발견에 나무가 다시 봐졌다. 아버지, 저기 고라니가 있네요, 나는 아버지를 불러 노목 가지에 앉아 있는 고라니들을 가리켰다. 아버지가 묵묵히 쓰러진 채 살아 있는 노목과 고라니들을 바라봤다. 산에 있어야 할 것들이 자꾸 마을로 내려오는구나, 지들끼리도 영역 싸움을 허는 것이제. 워낙 숫자가 많아진게 밀린 놈들이 자꾸 마을로 내려오는 것여. 인자는 산밭에다 고구마랑 감자를 심덜 못한다. 알이 굵어지기도 전에 멧돼지들이 내려와서 죄다 파 먹어버린당게. 작년에 이삭이가 우리 산밭에다 블루베리인가 뭣인가 달콤한 거 심었다가 고라니가 다 따 먹어버링게로…… 중얼거리다가 아버지가 웃었다. 하기는 쟈들도 먹고살어야 하니까는. 그럼 산밭이 다 비어 있어요? 아무것도 못 심고? 아버지가 힘이 드는지 신발이 끌리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 걸음이 느려질 때 들리는 소리였다. 키 작은 것들은 심어봐야 멧돼지 고라니들 차지가 돼버링게 키 큰 것들만 심을 수 있는디 그게 또 수지가 안 맞응게…… 우리 산밭에는 매실을 심어뒀구나. 많이도 열리는디 딸 사람이 없응게로 떨어지게 그냥 두는디 그것들이 거름이 돼야서 다음해는 더 열리고 더 열리고 그러더라. 매실 맛이 강한가벼. 새들도 안 먹는 거 보믄. 아버지는 쉬어가자며, 철길 옆의 둑길 위에 앉아 논들을 바라봤다. 바람이 불어 아버지가 쓰고 있는 모자 끝이 휘말렸다. 아버지가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어린 소를 데리고 와 풀을 뜯게 하던 냇가를, 콩이라도 더 거두려고 사람이 걸어다닐 곳에도 콩 모종을 했던 논둑들을, 가뭄이 들 때면 낮밤 없이 삽을 들고 서 있다가 한줄기의 물꼬라도 아버지의 논 쪽으로 대려고 애를 태우던 수리조합 길을. 고라니는 노목 가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논으로 내려온 고라니 한마리가 숨을 죽이고 있다가 다른 논으로 껑충 뛰어갔다. 나는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오래 굽어 살펴온 것들을 둘러보는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에 빛이 어룽지고 그 빛이 내게까지 번져와 나를 감싸는 듯했다. 이런 날이 올 줄을 모르고 살었구나. 밭이 있어도 고구마를 안 심고 논이 있어도 농사를 못 짓고…… 아버지의 나직한 목소리를 세번째 지나가는 기차가 잘라먹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논둑을 타고 마을 끝으로 나아가 다시 신작로로 나가게 되어 있는 길로 택했다. 동네에서 가장 안쪽이 우리 집이라 신작로에서 집으로 오려면 고샅들을 돌아야 했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날 해 저물녘에 고샅길로 들어서면 집집마다에서 풍기던 밥 짓는 냄새들, 흙담 아래 눈밭에서 아이들이 모여 노는 소리, 어느 집에서 싸움이라도 나면 모두들 달려나가 말리고 달래느라 왁자했던 고샅길이 너무 조용해서 나는 무심코 아버지에게 물었다.
―저 집의 고창 아재는 잘 지내셔요?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내가 가리키는 집을 바라봤다.
―죽었다.
한 고샅을 돌아 나는 다시 물었다.
―고부 아재는?
―죽었다.
고샅을 돌 때마다 나는 물었다.
―도산 아재는?
―죽었어.
―장성 아재는?
―죽었다.
―하만 아재는?
―죽었구나.
아버지는 담담히 죽었다, 죽었제, 죽었구나……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죽은 사람들을 호명하다보니 우리 집 앞이었다. 대문 앞에서 아버지가 걸음을 멈췄다. 비를 머금은 바람아 아버지와 나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신작로에서 고샅으로 들어서는 집집마다의 어른들이 다 돌아갔다는 깨달음에 이마가 차가워지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시 걸음을 떼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죄다들 죽었구나. 나만 남아서 너를 붙들고 있구나.
낮에 많이 걸었던 편이라 밤에 깊이 잘 줄 알았던 아버지가, 저녁을 먹고 이른 잠자리에 들어서 코까지 골며 자던 아버지가, 11시 무렵쯤 잠이 깨어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헌아, 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불을 켜볼 테냐?
작은방의 스탠드를 가져다 식탁에 켜놓고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부엌의 식탁에 앉아 있으면 유리문 건너 거실의 아버지 잠자리가 건너다보였다. TV를 켜놓은 채 잠드는 게 아버지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의사가 일러준 잠에 잘 드는 방법 중의 하나엔 TV를 켜놓고 자지 않는다,도 있어서 나는 아버지가 잠에 든 것 같으면 맨 먼저 TV를 끄곤 했다. 아버지의 잠이 깬 것, 몸을 움직여 침대에 앉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던 나는 아버지가 부를 때에야 노트북을 덮고 아버지 곁으로 가면서 아버지 침대 머리맡의 수면등을 켰다.
―저것도 켜라.
아버지는 거실 전체를 밝히는 스위치를 손으로 가리켰다. 무슨 일인가? 싶었으나 나는 아버지가 지시하는 대로 거실 스위치를 켜고 수면등은 다시 껐다. 갑자기 환해진 빛에 눈이 시어서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버지의 잠옷 단추가 두개는 풀어져 있었다. 물 마실래요? 물어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아버지가 나직한 목소리로 너는 언제 가냐? 물었다.
―가야지.
―……
―몇번 말하려다가 함께 있으니 좋아서.
―……
―인자는 가보거라.
―……
나는 괜히 눈자위를 꾹꾹 누르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베개에 눌린 흰머리, 수분이 빠져나간 메마른 얼굴, 실핏줄이 툭툭 불거져 있는 손등. 며칠 전만 해도 내 가슴을 쿵 소리 나게 놀라게 했던 아버지가 지금은 여느 때와 같아 보였다.
―내 말을 니가 좀 적어둘 테냐?
벽시계를 보니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밤이 깊었네, 아버지. 오늘은 그만 자고 내일 하면 어때요?
―생각날 때 해두어야제.
오후 들어서 날이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의 태풍 예보가 비껴가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마당 쪽에서 바람 소리가 거칠어지고 곧 빗소리가 후드득 들리기 시작했다. 이 기척 때문에 아버지가 잠이 깬 것인지도.
―비가 오네 아버지.
주위를 돌릴 생각으로 건넨 말이었으나 아버지는 니가 좀 적어두라,고 재촉까지 했다. 나는 식탁의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새문서 파일을 만들고 아버지 말을 받아적을 준비를 했다. 아버지의 나직한 목소리가 자꾸 후드득거리는 빗소리에 뒤섞였다. 아버지는 빗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가고 이어갔다.
첫째, 승엽이에게 내 외투와 나무궤짝 안의 편지들을 남긴다. 집을 떠나 첫 월급을 받아서 내게 사준 외투를 아주 오래 잘 입었다 동생들에게 너를 아버지로 생각하라,고 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 그동안 니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 것이냐.
둘째, 홍이에게는 평소에 원하던 대로 북하고 북채와 전축을 남긴다. 북은 잘 닦아두었다. 나를 서울의 장충동에 있는 국립극장에 데려가주었을 때 참 좋았다. 소리를 재미나게 들으라고 전축을 사다줘서 내가 여태 귀호강을 했구나.
셋째,에게는 시계와 술 한병을 남긴다. 술 이름이 로얄 살루트라고 하더라. 내가 몇년 동안 내리 벼 수매 특등급을 받았을 때 기분을 내서 사둔 것을 여태 잊고 있었다. 니 불같은 성격을 내가 아는데 고분고분 형을 따라줄 때마다 감사했다.
너는 헛간에 세워둔 새 자전거를 가져라, 하다가 아버지는 무릎에 노트북을 내려놓고 자신의 말을 받아적고 있는 나를 응시했다. 너라고 하면 안 되겠구나, 넷째, 헌이는이라고 고쳐라, 했다.
넷째, 헌이에게는 헛간에 세워놓은 새 자전거를 남긴다. 너와 함께 자전거를 타려고 새 자전거를 사놓은 지 이년이나 되었다. 헛간의 엄마 냉장고 옆에 비닐 커버를 씌워서 세워둔 자전거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니 곁에 가고 싶은데 오지 못하게 해서 자전거를 사놓고 너를 기다렸다,고 했다. 니가 오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새 공기를 마시며 달려보려고 했는데 늦은 일이 되었다,고.
다섯째, 이삐에게는 내 선글라스를 남긴다. 니가 어느해 생일에 선물해준 선글라스를 열심히 쓰고 다닌 덕에 내가 아직 백내장에 안 걸렸다고 하더라. 그동안 엄마와 내 약을 대느라 참으로 수고하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다 약사 딸 둔 덕이라고 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너의 헌신이 항상 고마웠다.
여섯째, 막내는 텃밭의 우사 허무는 일을 맡아라. 내가 마저 하려 했으나 엄두가 안 나는구나. 우사를 허물고 그 자리의 밭은 막내에게 남긴다. 막내가 고3일 때 하필 내가 여러번 쓰러졌다. 그해에 나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서울의 형들에게 연락하기를 몇번이나 하면서도 대학에 합격해줘서 감사했다.
헌이 엄마 정다래에게는 내 통장을 남기네.
아버지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잔고가 많지 않아 미안하네, 했지만 나는 그 말은 적지 않았다. 정다래, 당신은 나한티 열매만 보여줬네, 일생을 내게 열매만 갖게 하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았는가, 감사했네. 나는 아버지 말을 받아적다가 움찔했다. 내가 어떤 일에 마음이 옹졸해지거나 갑자기 인색해지며 쓰기를 주저했던 말들이 아버지 입에서 풍부하게 느릿느릿 흘러나왔다. 아버지가 내게는 황송한 내 자식들,이라고도 했으나 나는 차마 그 말을 적지 못했다.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더 하고 싶은지 방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우고 기다렸다. 아버지가 뭐라고 낮게 웅얼거렸으나 마당의 바람 소리가 세지고 빗소리가 훅 들이치고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섞여버렸다. 뒷마당의 사위어가는 머위 잎들이 거칠게 한쪽으로 쓸리는 소리가 났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어렵게 무슨 말인가를 했으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예? 나는 무릎 위의 노트북 자판에 두 손을 내려놓은 채 아버지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뭐라셨어요? 내가 아버지의 말을 받아적는 일에 이렇게 간절해져 있을 줄이야. 아버지와 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옆 마당에 떨어진 감나무 잎새들이 비에 쓸리고 있는 중인가보았다. 빗소리에 수수수 나뭇잎 쓸리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아버지가 힘을 내서 메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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