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개혁·진보 정치가들을 위한 제언

최태욱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미국발 금융위기를 신자유주의의 위기로 해석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만능주의의 아성인 미국 내부에서도 “(자유)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귀환”이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기왕의 ‘작은 정부론’을 포기하고 구제금융 제공, 민간은행의 부분 국유화, 부실채권처리기구 설립, 금융규제 강화 등의 적극적인 시장개입 조치를 취하고 있다. 시장 자유화, 민영화, 탈규제, 정부개입 최소화 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으며, 이에 미국 스스로가 자신의 모델을 (아직 폐기까지는 아닐지라도) 크게 수정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신자유주의 위기의 불똥은 세계 각처로 튀고 있다. 한국에 떨어진 것은 유난히 뜨거워 보인다. 너무 뜨거워서일까. 한국 정부는 그 불똥을 잘 다루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금융 및 실물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점치고 있고, 우리의 일반 시민들은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

한편 이명박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반대해온 정치세력들 내부에서는 이 위기상황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화를 억제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그래서인지 민주·개혁·진보세력을 망라한 범야권에서는 최근 일제히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들을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총론적으로는 감세, 민영화, 규제완화 등을 강조하는 소위 ‘MB노믹스’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가리키며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위기시대에 얼마나 퇴행적인 정책기조인지를 부각시키는 한편, 각론에 들어가서는 종합부동산세 완화, 산업은행 민영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금산분리 완화 등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냄으로써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을 고발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대안 없는 신자유주의 비판

말하자면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미국식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명확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는 오히려 그 문제 많은 구닥다리 경제모델에 근거한 정책들을 더 강력히 추진하려 함으로써 사회 양극화 심화나 비정규직 급증 등으로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에 와 있는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인 것이다.

바른 비판이다. 우리 사회가 시장만능주의나 성장지상주의 혹은 물신주의에 빠지는 것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 그러나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시민들이 희망을 품고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 움직일 수 있다. 범시민적 공감대와 지지 없이 새로운 민주사회가 열린 예는 없다. 대안은 그 시민적 공감대와 지지 형성 과정에서 초점 혹은 구심점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것이 없을 경우 설령 기존의 제도나 정책들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한다 할지라도 시민들은 서로 흩어져 있을 뿐 개혁을 위해 한 방향으로 결집하지 못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민주·개혁·진보세력들은 오직 단편적인 정책비판에만 몰두하고 있는 듯하다. 일반 시민들은 그들의 정책비판이 어떠한 대안을 염두에 두고 나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즉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혹은 진보신당이 어떤 대안이나 경제철학을 지니고 있기에 (그것에 비추어볼 때) 이 정부의 정책들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은 아직도 구상중에 있다고 하며, 다른 두 당의 경우는 이상적이기는 하나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감이 떨어지거나 너무 복잡한 내용의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은 시민들이 쉽게 공감하고 기꺼이 지지를 모아줄 수 있을 만한 현실적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공통분모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과거 독재와 권위주의에 움츠려 있던 우리 시민들에게 누가 어떻게 희망을 주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라. 희망을 밝힌 이들의 선두에는 반독재와 (정치)민주화라는 단순명료한 목표 아래 하나로 뭉친 보수 및 진보 정치가들이 있었다. 당시 그들 사이의 이념차이는 부각될 필요가 없었고, 그건 오로지 민주화 이후의 문제였다.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그들이 함께한 정치개혁 노력도 지극히 단순한 내용의 것이었다. 대통령 선거제도 개혁, 즉 대통령 직접선출을 골자로 한 개헌쟁취 노력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 그들은 시민사회를 결집시켰고 그 범시민적 지지를 토대로 하여 결국 새로운 민주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이즈음에서 필자는 민주·개혁·진보세력들이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다시 하나로 뭉치기를 제언한다. 그리하여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 정부에 맞서 다음 두가지 연대사업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하나는 ‘대안 수립을 위한 연대’이다. 즉 시민들이 그것의 실현에 희망을 걸고 결집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공동으로 마련하여 제시하는 일이다. 그 대안은 세밀하거나 정치한 것일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단순하고 명쾌한 것일수록 좋다. 그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본철학이나 비전 혹은 굵은 정책기조 정도면 당장의 목표로서는 충분하다.

다른 하나는 ‘정치개혁을 위한 연대’이다. 이는 앞서 제시한 공동대안의 실현을 위해 어떠한 정치(제도)개혁이 필요한지에 합의하고 그것을 위한 정치적 노력을 공동으로 경주해가는 일이다. 여기서의 정치개혁도 그 내용은 굵고 단순한 것일수록 좋다. 요컨대 단순한 목표와 단순한 수단을 제시하고 실천해감으로써 신자유주의의 대안적 사회 건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범시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확보하라는 것이다. 이는 반신자유주의 세력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해법들 중에서 최소한의 공통요소 혹은 최소 공분모를 찾아내어 그것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올리는 소위 ‘최소주의 전략'(minimalist strategy)을 택하라는 요구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본질이 시장만능주의이며 따라서 거기서 최상의 가치는 시장의 자유라고 한다면 그 대안사회는 마땅히 시장의 자유가 적절히 통제되고 조정되는 곳이어야 한다. 이때 그 통제와 조정은 경제적 효율성만이 아니라 사회적 형평성 그리고 성장만이 아니라 분배의 가치까지도 획득하기 위한 것이다. 흔히 자본주의 유형에는 크게 두가지, 즉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영미식 ‘자유시장경제’ 체제와 시장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유럽식 ‘조정시장경제’ 체제가 있다고 하는데, 이 개념을 빌리자면 신자유주의의 대안사회는 기본적으로 조정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결국 민주·개혁·진보세력들은 대안 수립을 위한 연대사업을 통해 ‘한국형 조정시장사회’의 건설을 자신들의 최소 공동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장에 대한 국가 혹은 사회의 개입을 필요하고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시장개입 필요성과 정당성은 이미 우리 헌법(119조 2항)이 천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의 반신자유주의 세력들간에도 시장조정의 강도와 폭 그리고 구체적인 조정기제와 관련해서는 서로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세부적인 사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일 때가 아니다. 급한 것은 우리 시민들에게 자본주의의 일개 유형에 불과한 미국식 자유시장체제가 이미 심각한 문제를 노출한 이상 우리는 이제 거기에 더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식 조정시장체제를 모색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는 일이다. 더 나아가 유럽의 예를 보더라도 조정시장체제가 자유시장체제보다 형평성, 공공성, 분배, 복지 등 주요 사회적 가치의 확보 측면에서 크게 우월할뿐더러, 경제성장이나 효율성 확보 측면에서도 결코 뒤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널리 알려야 한다. 말하자면 더 나은 대안이 엄연히 존재함을 명확히 알려 시민들이 새 희망을 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조정시장’이라는 목표 제시가 그 용어의 생경함 등으로 인해 시민사회의 여론결집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한다면 그 제시어는 ‘민주시장’으로 대치해도 좋을 것이다. 과거의 (정치)민주화운동이 민주정부체제 수립을 가능케 했다면 지금부터의 (경제)민주화운동은 (시장에 대한 민주적 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민주시장체제 수립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조정시장의 핵심 기제인 사회적 합의주의의 발전을 위한 정치개혁

그 이름을 무엇으로 하든 조정시장을 골자로 하는 대안을 내놓을 경우 그것에 이어지는 정치개혁 연대사업은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혁에 초점이 모아져야 마땅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론적으로는 물론 유럽 등에서의 경험을 보더라도, 조정시장경제는 민주적 조합주의(corporatism) 혹은 사회적 합의주의 방식에 의한 경제운용이 가능할 때 성공적으로 작동한다. 말하자면 조정시장사회는 일반적으로 노·사·정 같은 주요 경제주체들간의 사회적 합의에 의한 시장조정이 일상화되고 제도화된 곳이란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합의주의의 정착은 이념 및 정책 중심의 정당정치가 활성화돼야 가능한 일이다. 사회적 합의는 당연히 해당 국가의 주요 경제주체들이 모두 그 과정에 참여할 때만 의미가 부여되는데, 대부분의 사회경제집단들은 자신들의 정책선호를 대변하는 정당이 있는 경우에만 그 합의과정에 참여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설령 자신의 선호가 반영된 사회적 합의가 일단 도출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막상 정치적 과정에 가서는 왜곡되거나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주요 사회경제집단들 모두가 입법 혹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대리인, 즉 ‘자기 정당’을 확보할 수 있는 정치구조를 그 발전조건으로 요구한다. 그러한 정치구조의 핵심이 다양한 이념이나 가치 혹은 정책기조에 의해 구조화된 온건 다당체계일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주지하듯, 한국의 정당정치는 여전히 인물이나 지역 중심의 정당들이 주도하고 있다.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이 그러한 정당이며 제1야당인 민주당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의회 내의 유일 이념정당인 민주노동당은 힘없는 소수당일 뿐이다. 한국의 현 정치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한국의 사회적 합의주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주체인 기업 및 노조연합뿐 아니라 실직자, 비정규직, 자영업자, 농민단체 등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선호를 현재의 정당체계가 감당할 길은 전혀 없다. 어느 정당이 이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의 정치적 대리인 역할을 제대로 맡아줄 수 있겠는가.

민주당은 정책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의 군소 이념정당들은 의석수를 크게 늘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한국의 정당정치가 이념 및 정책 중심의 온건 다당체계로 발전해갈 수 있다. 이 모두를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일이다. 각 정당의 국회의석 점유율을 유권자들의 정당 지지율과 근접하게 만들어주는 선거제도일수록 그것의 비례성은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네덜란드의 경우처럼 전국을 단일 선거구로 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최고의 비례성을 지닌 선거제도이다. 여기서는 지역구별·개별 후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인물이 아니라 정당에 대하여 투표할 뿐이다. 국회의석은 각 정당의 전국 득표율에 비례하여 정당들에 배분된다. 따라서 선거정치는 당연히 인물 경쟁이 아니라 정당 경쟁으로 진행된다. 정당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당의 특색을 분명히해야 한다. 전국 차원에서 정당의 특색을 분명히해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당의 이념이나 가치 혹은 정책기조이다. 이것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는 나라들의 정당체계가 이념 및 정책 중심 정당들로 구성되는 까닭이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우리의 선거제도를 순수 비례대표제나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현행 비례대표의석을 대폭 늘리고 그와 동시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여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유의미할 정도로 높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등 기존의 이념정당들은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선거정치를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의석 수가 상당정도 증가할 것이며), 민주당도 자신의 이념 및 정책기조를 더 선명히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선거제도 개혁으로 한국의 정당체계를 이념 및 정책 중심으로 구조화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한국형 조정시장사회의 건설에 필요한 사회적 합의주의 발전의 정치적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개혁 연대사업의 핵심이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혁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시민사회단체와 범야권의 연대를 기원한다

마침 ‘민주주의와 민생을 위한 새로운 연대기구'(민민연)가 조만간 ‘민생·민주 국민회의'(국민회의)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민민연이 시민사회단체들만이 아니라 민주당이 포함된 범야권 정당 모두를 국민회의로 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민주·개혁·진보 정치가들이 모처럼 마련되는 이 ‘연대의 장’을 적극 활용할 수 있길 고대한다. 그 장에서 서로 만나 대안의 수립과 정치개혁 달성을 위한 연대사업을 최소주의 전략기조에 의해 공동으로 추진해가길 기원하는 바이다.

2008.10.22 ⓒ 최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