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의 열린 자세를 기대하며

이철희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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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여성대통령’,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슬로건이다. 야권의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가 가진 새로움에 맞서기보다, 그들의 짧은 정치이력이 갖는 한계를 부각시키기 위한 개념이다. 하나 후보 TV토론에서 박 당선인이 보여준 모습은 준비됐음을 보여주는 데 미흡했다. 이처럼 준비성 담론이 정책에 대한 이해의 측면에서는 미스매치가 있었던 반면 강한 결기와 세력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어필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인수위 구성을 둘러싼 과정을 지켜보면 박 당선인이 과연 대통령직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당선부터 취임일까지의 67일이란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박근혜정부가 얼마나 신속하게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데 매진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미국의 대통령학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hit the ground running’이다. 표현 그대로 발이 땅에 닿자마자 뛰어나가는 기세로 신속하게 하고자 하는 일에 착수해야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박 당선인의 상황인식은 너무 느슨하고, 발걸음은 너무 더디다.

 

‘대통합’ 실천하려면 인수위부터 바삐 움직여야

 

인수위원회가 할 일이 그 이름 때문에 앞선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파악해서 인계받는 것이 아니다. 신정부가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앞으로 어떤 로드맵과 액션 플랜으로 풀어나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야 취임 직후의 허니문 기간을 이른바 ‘대통령 선도'(presidential activism)의 분위기로 만들 수 있다. 당에서 정책을 총괄하던 정책위의장을 인수위를 총괄하는 자리에 앉힌 것은 잘한 일이나 더불어 일할 팀을 신속하게 구성하지 않아 그 의미조차 퇴색해버렸다.

 

미국의 경우 당의 후보로 정해지면 곧바로 인수위 활동을 시작한다. 카터 대통령은 자신이 민주당의 후보로 최종 확정될 것이 기정사실화된 시점부터 가동했다. 레이건은 선거가 치러지는 해의 전년도에 이미 구상을 시작했고, 공식적인 활동은 선거 해의 봄부터 이뤄졌다. 아버지 부시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클린턴은 전당대회 직후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이 이처럼 이렇게 인수위 활동을 서두르는 것은 선거 캠페인과 별개로 차분하게 집권을 준비하는 작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인수위에 대핸 운운하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 있다는 핀잔을 듣거나,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조롱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보가 인수위에 대한 구상이나 기획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건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어쨌든 당선 후 인수위를 신속하게 구성하고, 효율적인 팀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도 당선인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이다. 방심하면 이명박 대통령처럼 취임하자마자 혼란을 겪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박 당선인이 내건 대통합도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

 

반대의견에 귀기울여 소통하는 자세를

 

박 당선인에게 아쉬운 대목은 또 있다. ‘사람이 곧 정책이다.’ 사람만큼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를 맡느냐에 따라 정책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당선부터 취임 초기의 국면에는 더욱 인사가 중요하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문제적 인물을 대뜸 당선인의 수석대변인에 임명했다. 나중에 인수위 대변인으로 격하시켰지만 편법이다.

 

인사의 핵심은 발탁된 인물의 역량이나 이력, 품성이 아니라 발탁의 과정에서 임명권자가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인사의 특성상 모든 것을 공개리에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론이 수렴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은 필수적이다. 여론의 호응과 검증 속에 임명되면 그만큼 일하기도 더 좋다. 결코 낭비가 아니다. 약간의 노이즈나 일시적 지체가 생기더라도 소통과 공감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훨씬 유효하다. 밀봉인사는 민주주의를 해친다.

사실 인사뿐 아니라 박 당선인이 대중과 소통하는 노력 그 자체도 많이 부족하다. 당선된 다음에도 선거 때처럼 대중과 접촉하고 현장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만나고 들어야 한다. 고인 물은 썩듯이 갇히면 망한다. 현장을 찾아 일반인과 대화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지금처럼 은둔해서는 곤란하다. 권력의 속성상 대통령이 보통사람의 정서와 괴리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박 당선인이 스스로 대통합을 무엇으로 정의하든 핵심은 ‘반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의회에서의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비판, 언론의 질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근소한 당파적 다수에 의지한다면 결국 반대를 억누를 수밖에 없다. 닉슨이 대통령의 권한을 오·남용해서 결국 하야하게 된 것도 이런저런 반대를 ‘시끄러운 소수'(vocal minority)로 치부하면서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는 자신을 지지한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은 반대를 존립이유로 하는 야당, 시민단체, 언론의 지적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의 열린 자세를 기대한다.

 

2013.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