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성평등 관점이 필요하다

이숙진

이숙진 / 젠더사회연구소 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최근 활발한 복지국가 논쟁은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국사회의 미래상을 복지국가로 전망하고 다양한 수식어를 통해 그 내용과 형식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3·8 세계여성의 날의 의미와 앞으로 복지국가에서 한국여성이 누릴 지위를 상상해본다. 근 100여년 전, 3월 8일은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로 상징되는 생존권과 참정권을 위해 거리투쟁에 나선 날이었다.

 

복지국가가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이는 당연히 여성의 삶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복지국가’가 되면 한국여성의 삶은 어떻게 변화될까. 현재 거론되는 다양한 복지담론들은 여성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그리고 여성들은 어떤 나라를 꿈꾸며 복지국가 논의에 주목해야 할까.

 

여성은 어떤 복지국가를 원하는가


 

복지국가는 민주주의의 성장을 담보하므로 독재와 억압이 횡행하는 곳에서 복지국가의 깃발을 꽂을 수는 없다. 가부장적 사회는 성차별과 성불평등이라는 전제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이므로 복지국가가 가부장적 질서와 친화적일 수 없다. 그러나 모든 복지국가가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이것은 복지국가가 반드시 성평등을 진전시키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구의 복지국가 유형을 성평등 관점에서 살펴보면, 복지정책이 전통적인 성별분업(남성은 직장, 여성은 가정)을 약화시킬 수도 있으며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북유럽국가들의 경우 여성을 주부나 피부양자의 역할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구에 2인의 소득자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각종 사회정책(사회보장, 조세, 보육, 노동 등)을 설계한다. 그러나 남유럽 혹은 영미형은 약간 혼재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어머니나 주부 혹은 부차적 소득자라는 틀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국가의 보육써비스를 넓히는 대신 양육수당 지급을 확대한 독일은 여성의 노동권을 강화하기보다는 어머니 역할을 지원한 나라에 속한다. 스웨덴은 반대로 양육수당 대신 보육써비스 확대를 통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율을 높인 나라이다. 각종 성평등 지표들은 스웨덴이 명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전통적인 성별분업을 약화시키는 사회정책은 성평등을 진전시키고 더불어 합계출산율과 여성고용률 증가의 효과를 가져온다. 때문에 독일도 최근에는 정책 방향을 전환하여 보육써비스 재정을 확대하고 여성고용을 높이는 쪽으로 재정투자를 바꾸려 하고 있다.

 

극단적 시장논리가 강요하는 여성의 주변화


 

이제 우리 현실에 비추어 어떤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일단 인구학적으로 우리는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파고 아래 아들, 남편, 남성의 생계벌이는 더이상 안정적이지 않으며, 딸, 어머니, 여성의 소득활동은 생존을 위한 필수전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월 123만원의 비정규직으로 내몰릴 뿐이다. 일은 해야 하고, 또 하고 있는데 기업과 노동시장은 여성을 주부나 어머니로만 취급한다. 주부 딱지, 어머니 딱지 없이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은 여성들은 결혼도 출산도 거부하면서 시장의 경쟁논리를 좇아가게 되고, 결국 이 논리가 쌓아놓은 한국사회의 모습은 여성 비정규직화, 저출산, 돌봄노동 공백 등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후기산업사회 혹은 탈산업사회에서의 새로운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이라 할 만한 요소들을 낳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여성의 역할과 지위, 평등과 차별에 관한 성평등 문제가 놓여 있다. 전통적인 성별분업을 전제로 한 가부장적 복지국가 모형은 더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복지국가는 명백히 변화하는 여성의 역할을 인식하고, 성평등을 구조화하고 제도화하는 복지국가인 것이다.

 

현재 우리의 복지국가 담론에서 이러한 젠더 관점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것은 복지의 담론화가 이제 겨우 시작단계이므로 옥석을 가릴 만큼 풍부하고 구체적인 논의가 펼쳐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우려되는 점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보수화가 여성문제에 관해 한층 치명적인 반격을 가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가 몰고온 피폐와 양극화가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되짚어보기도 전에 지난 2~3년간 불어닥친 보수의 반격으로 성평등에 대한 주장은 훨씬 두꺼운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형국이다.

 

성평등 없이는 진정한 복지국가도 없다

 

혹자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성차별이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지난 수십년간 여성운동의 성과로 맺은 호주제 폐지,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성매매금지 등의 법제화과정은 형식적 평등을 진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는 미완의 평등이며 반쪽의 평등이다. 한부모 여성가장의 생존은 여전히 절박하고, 일-가정의 양립은 슈퍼맘의 초인적 능력을 요구한다. 성폭력과 성희롱은 여전히 여성을 불안케 하며, 출산권이나 성적 자기결정권의 목소리는 여성이기주의로 비판받는다. 여성에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로서의 민주주의는 아직 요원하다. 복지국가가 단지 복지정책의 나열이 아니라 국가운영전략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러한 여성의 삶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가부장적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은 20세기 후반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논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해주었다. 우리가 직면하는 사회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필요로 하고 그것은 분명히 젠더 관점, 즉 성평등의 가치지향을 담고 있어야 한다. 주로 여성이 담당하는 무임의 돌봄노동을 외면하는 남성중심성, 돌봄노동은 숙련과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아 나쁜 일자리일 수밖에 없다는 생산중심성, 그리고 여성은 출산과 양육을 위해 경제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성별고정관념이 팽배하는 한 복지국가는 성공할 수 없다.

 
굳이 저명한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복지국가 논의가 젠더관점에 기초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앞으로 논의되는 복지국가는 반드시 ‘성평등 복지국가’여야 하며, 성평등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실현되는 복지국가가 되어야 한다. 정치권,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 역시 이 길을 함께 가야 하며 이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2011.3.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