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 명분을 얻으려면

정현곤

한반도 위기의 중간결산에 부쳐

 

정현곤 / 세교연구소 상임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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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2일 북의 3차 핵실험 이후부터 본격화된 한반도 위기의 성격은 뭐였을까? 아무래도 국면의 이니셔티브를 쥐었던 북의 입장이 궁금하다. 솔직한 내심을 잘 드러내고 있는 글이 4월 22일자 조선신보 기사다. 김지영 명의의 그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교전 쌍방인 조선과 미국이 눈앞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마주 앉는 대화라면 그 의제는 저절로 정해진다. 파국직전까지 치달은 조미핵전쟁의 처리방식이다.” 무슨 뜻인가? 1953년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종전협정을 처결하자는 것이다. 핵은 대화의 전제가 아니라 의제이며, 더구나 의제로 다룰 그 핵은 미국과 북한 핵이 모두 포함된다. 한마디로 ‘선 종전협정 후 비핵화’이다.

 

기사가 나온 것은 무척 중요한 날로 기억되는 4월 18일 이후인데, 4월 18일은 북의 국방위원회 정책국이 대화의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또 이에 대해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서는 북의 발언을 ‘협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 수(initial gambit)’라 응대한 그날이다. 협상국면을 예고하면서 생각들이 한참 많을 그 시점에 조선신보가 북의 최대치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평화협정’과 ‘비핵화’의 함수관계

 

물론 이러한 북의 최대치가 통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과의 핵군축 회담은 성사되기가 난망하다. 게다가 이 최대치는 그간 진보론자들 사이의 공통된 인식이던 평화협정과 한반도 비핵화의 동시병행론과도 차이가 있다. 동의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 최대치는 평화협정 이후에조차 비핵화는 자동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신뢰의 우려를 낳는다. 북의 상대자는 그것을 핑계로 평화협정 협상 자체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평화협정을 요구하는 행위가 평화협정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하는 이 역설을 북이 몰랐을 리 없다면, 북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북의 최대치에 대한 통찰이 그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음의 표현이 그러하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며 외부의 경제지원이 증대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분단국가로서의 체제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백낙청 〈포용정책 2.0을 향하여〉, 《창작과비평》 2010년 봄호) 북의 최대치 접근의 의미를 정확히 짚고 있다. 이 주장의 논리적 귀결은 북의 체제를 보장하는 장치인 남북연합의 시급한 추진이 핵심적인 북핵 해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상호간 체제안전 보장책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북은 일찌감치 체제안전의 자구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북의 자구책 마련이 지난 이명박정부 시기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자구책의 핵심에 인공위성 발사와 핵무기 개발이 있다. 일등 공신은 김정일 위원장이다. 그는 핵과 장거리 발사체의 성능을 개량했고, 경제분야에서는 중국의 도움을 얻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는 갑작스런 병고를 맞았고, 3대세습의 비판을 무릅쓰고 아들로의 권력승계를 강행했다.

 

체제안정 위한 북의 자구책, 성공할까

 

올해 발생한 위기는 그렇게 마련된 북의 자구책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이번 위기에서 미국은 전례 없이 핵무기 탑재 전략폭격기까지 동원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북은 미국과의 강대 강 대결을 끌고 가는 힘을 보여주었다. 그 힘의 배경에는 명백히 북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과 2월 12일 3차 핵실험이 존재하고 있다. 북이 미국에 가한 위협적 언명의 핵심에 이 두 실험을 통해 확보한 무기체계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용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3차 핵실험의 경우 경량화, 소형화 실험이었을 것이라는 진단이 일반적인 것을 보면, 그 실험이 이번 대결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북은 성공하고 있는가? 북 내부적인 목표관리로 본다면 분명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안보에 대한 물리적 담보에서나 지도력에 대한 보장에서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의 입장에서 이 성과는 평화회담에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정치적 위력이 커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야 한다. 한국민에게서 북에 대한 감정은 지금 최저점이다. 한반도 주변에서의 군사훈련에 대한 미군의 수요가 차고 넘친다는 점도 있다. 여기서 더 가면 정말 돌이킬 수 없다.

 

이제 ‘평화회담’을 꺼내야 할 때

 

그렇다면 북이 취해야 할 변화의 방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평화협정 논의와 동시에 진행된다면, 북의 변화된 핵능력 전체가 협상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최대치의 변경이다. 모든 진보세력이 동의할 수준이다. 이렇게 한다면 3차 핵실험은 무마된다. 북이 명분을 취하며 실리도 챙길 수 있는 지점이다.

 

한가지 덧붙일 말이 있다. 최대치 변경과 관련하여 사실 북의 속내가 거기까지 가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 부른 금액 그대로 전액을 받아내기를 기대하는 흥정꾼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상대방인 한·미가 북의 ‘최대치 변경’을 이끌어낼 성의와 솜씨를 발휘하느냐가 오히려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5·7한미정상회담은 안타깝다. 그 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은 평화회담이라는 결정적 한마디를 끝내 꺼내지 못했다. 14일 한국정부가 남북대화를 제안했다. 존 케리식으로 말하자면, ‘협상을 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라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긍정적 이해의 연장에서라면 평화회담이라는 그 말을 한중정상회담에는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13.5.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