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 진전을 남북관계 진전으로

백학순

백학순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08년 6월 26일, 북한은 자신의 핵프로그램 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했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교역법 적용의 해제 절차에 착수했다. 6월 27일에 북한은 미국정부 대표와 6자회담 참여국들의 TV 카메라 앞에서 영변 핵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고, 미국은 바로 다음날 대북 식량지원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북한은 미국의 식량원조와 관련하여 국제기구 인력의 접근지역을 거의 전지역으로 확대하고 식량배분에 대한 ‘무작위 모니터링’을 허용했다.

앞으로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이 제출한 핵신고서의 ‘검증’, 핵프로그램 해체와 핵무기 폐기 등 북한측 행동조치와 그에 대한 미국과 6자회담 참여국들의 상응조치에 대한 합의,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북한은 무기급 플루토늄을 더이상 축적할 수 없게 되었고, 북미 양국은 2·13합의와 10·3합의 이행을 성공적으로 이뤄냄으로써 상호간에 ‘말’로 한 약속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신뢰’를 쌓게 되었다.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에서 지금 최대의 자산은 바로 북미 상호간에 구축된 이 ‘신뢰’이다. 덕분에 앞으로 상호간 주고받기 협상이 잘 진행되면, 우리는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까지도 폐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남북관계 진전이 당장은 쉽지 않아

그렇다면 북핵문제 진전이 과연 남북관계 진전으로 이어질까? 필자의 대답은 한마디로, 남북관계 진전이 당장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첫째, 그동안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는 우리가 원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져왔다. 북핵문제는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성격을 가지는데, 당사자인 북한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에 대한 자위책으로 나온 ‘북미간 문제’이며, 남한정부는 개입할 여지가 없는 문제라는 일관된 입장을 취해왔다. 따라서 역대 우리 정부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북한과 직접 대화하고 협상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북한의 그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는 우리 정부의 최우선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같은 민족이긴 하지만 나라가 분단되어 우리와 체제경쟁을 하고 있는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다면, 이는 우리에게 안보·정치적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통일을 앞당기는 데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대 우리 정부들은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방법으로 남북관계를 북핵문제와 ‘연계’ 혹은 ‘병행’하는 전략을 내놓았다. ‘연계론’의 문제점은, 민족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협상결과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병행론’이 힘을 얻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병행론은 평화적이고 조속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적으로 노력하는 한편, 무엇보다도 남북관계를 우리의 영향력 밖에 있는 북핵문제에서 분리해내어 우리가 주체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영역인 민족문제와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국익과 민족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확보해나가자는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김대중정부의 전략이 대표적인 병행전략이었다.

이명박정부는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양자를 연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불행히도 현정부는 연계전략의 구조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는 그대로 안은 채, 더구나 집권하자마자 지난 10년간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축적해놓은 남북관계의 성과를 일거에 무시했다. 그 결과 이명박정부에 대한 북한의 신뢰가 사라짐으로써 그동안 축적된 신뢰와 성과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압력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조그마한 여지마저 스스로 없애버리는 우를 범했다.

6자회담에서 북한이 우리를 ‘왕따’시키는 상황이 올 수도

셋째,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북미 양국은 즉각적으로 남북관계의 악화가 북미간에 진행되던 북핵문제 협상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아예 북핵문제를 남북관계에서 철저하게 분리해내는 정책을 공동으로 취했다. 이는 이명박정부의 연계전략이 북한은 물론 ‘동맹국 미국’으로부터도 철저히 차단당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 정부는 6자회담 틀 속에서 6분의 1 지분을 갖고 북핵문제에 접근해나갈 수밖에 없으며, 북한이 그동안 6자회담에서 일본을 실질적으로 배제해왔던 것처럼 이번부터는 우리를 의도적으로 ‘왕따’시킬 가능성까지 우려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은 그 의도와 달리 남한의 ‘국내정치용’ 정책이 되고 말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북정책의 대상인 북한과의 관계가 처음부터 끊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정책에 대한 북한의 호응과 협력을 통해 북한에 영향을 미쳐 우리가 원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해가는 ‘이행 메커니즘’ 자체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대북정책의 ‘효과’를 높이는 데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북한이 우리 정부에 대해 갖는 신뢰’의 존재 여부인데 현상황은, 좀 심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우리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북한의 호응이나 남북관계의 진전과는 아무 상관없이 우리 홀로 ‘북 치고 장구 치는’ 상황에 비유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명박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으니, 이제 우리는 너희 북한과 협력하려고 한다. 그러니 너희는 이제 우리와 협력하러 나와야 한다”고 해서, 자신의 목숨줄이 남한에 잡혀 있다면 모르되 북한이 그렇게 쉽게 이명박정부에 협력하고 나오겠는가? 북한이 ‘우리는 남한 없이 살 수 있지만, 남한이 우리 없이 살 수 있는지 어디 두고 보자’는 입장을 밝힌 지 벌써 오래되었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우리 하기’ 나름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의 대답은 결국 남북관계는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책이 북한의 호응과 협력 아래 실행되어 우리의 국익과 민족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북핵문제에 ‘연계’하는 전략을 버리고 양자를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무엇보다도 남북한 공히 이익이 될 수 있는 ‘공통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이명박정부가 내세우는 ‘창조적 실용주의’의 요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1990년대초 소련 붕괴 이후 변화된 국제환경 속에서 새로운 ‘대외생존의 틀’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 핵협상을 진행해왔으며, ‘대남생존의 틀’을 짜기 위해 두번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에서 화해협력을 통한 ‘대남 평화공존과 평화번영의 틀’을 만들어내려는 목표를 갖고 있으며 두번의 남북정상회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북한으로서는 남북 ‘평화공존과 평화번영’의 합의기제인 셈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이러한 목표는 현단계에서 우리 정부의 목표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현단계에서의 남북간 공통 정책목표로서 ‘평화공존과 평화번영’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6·15공동선언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10·4선언 중에서 실현가능한 합의사항의 이행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필자가 ‘전면적’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있다. 현재 남북간 신뢰상실의 폭과 깊이가 너무 넓고 깊어서 어떤 미지근한 조치로써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치는 ‘마음을 얻는 것’이며, 이는 남북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회복은 우리 정부,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국제사회에서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북미 양국이 관계정상화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전면적’ 회복은 당장 우리 사회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 살리기는 물론, 통일지향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 및 번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고 시급한 것임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2008.7.2 ⓒ 백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