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가압류, 대한민국의 끔찍한 현실

권영국

권영국 /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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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0일 현재,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과 소속 조합원들에게 단체행동을 이유로 사용자로부터 청구된 손해배상금액이 1691억원, 가압류 결정이 난 금액이 18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에는 2009년 분식회계로 위장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77일간의 파업을 벌였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올해 1월에는 2010년 고용안전협약을 위반한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을 전개했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59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떨어졌다. 대법원이 두차례에 걸쳐 인정한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며 공장점거 파업을 벌였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90억원이 넘는 금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이어졌다. 박근혜정부의 철도 분할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철도노동자들은 철도공사로부터 16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받은 상태이고 이미 법원으로부터 112억원의 가압류 결정을 받았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파업노동자

 

이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파업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로부터(심지어 경찰로부터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민사배상청구를 당하고, 그중의 상당부분이 법원에 의해 인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단체행동으로 인한 민사책임은 대부분 연대책임으로 구성되어 노동자들은 평생을 벌어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금액에 압도되고 만다. 그 결과 ‘손배 폭탄’을 맞은 노동자의 가정은 파탄이 나고 노조간부는 노조를 떠나야 하며 급기야 그 중압감과 부당함에 죽음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1월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 배달호 대의원은 손해가압류의 횡포에 맞서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고, 한진중공업지회 김주익 지회장은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로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며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고 자결했다. 그 여파로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옥죄는 손배가압류를 금지하거나 상당히 제한하여야 한다는 사회적 공론이 일었다.

 

그러나 당시 불어닥친 기업과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라는 신기루 정책 앞에서 이는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십여년이 지난 2012년 12월 한진중공업지회의 조직차장이었던 노동자 최강서가 남긴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이라는 비운의 유서를 우리는 마주해야만 했다.

 

이쯤 되면 헌법 제33조에서 규정한 단체행동권은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거의 무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민법상의 손해배상책임과 형법상의 업무방해죄에 포위되어 고사할 지경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헌법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천명함으로써 쟁의권(단체행동권)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위헌적 손배가압류 문제

 

본래 노동자에게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취지는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한 실력행사를 보장하고, 그와 같은 실력행사의 법적 효과로서 민사상·형사상의 면책을 비롯하여 쟁의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에게 해고 기타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막으려는 데 있다. 즉, 쟁의권 보장의 공통적인 법적 효과는 쟁의행위가 비록 계약법상의 의무를 벗어나거나 사용자의 영업의 자유 등을 일부 제한함으로써 근대 시민법상의 위법성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아니하려는 데 있다.

 

그 제도적 보장은 영국과 미국의 경우 판례와 제정법에 의해 갖춰져 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독일과 일본은 헌법상 기본권으로 확립하고 있다. 어떠한 제도를 통하든 중요한 것은 쟁의행위가 원칙적으로 민·형사상 적법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쟁의행위의 민사상·형사상 면책이란 평화적인 쟁의행위가 민사상·형사상 위법으로 평가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헌법상의 권리행사에 대해 ‘파업의 정당성 요건’이라는 하위법령과 해석의 굴레를 뒤집어씌워 노동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과 형사책임을 지우는 위헌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파업권은 노동자들과 노동자단체가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이해를 옹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주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누구도 평화로운 파업을 조직하고 참여하였다는 사실만으로 형사제재를 받거나 그들의 자유를 박탈당해서는 안된다.’ 이 내용은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서 표명한 파업권에 대한 결정요지 중 일부이다. 그럼에도 100여년 전 노조탄압의 수단으로 동원되었던 손배가압류가 기승을 부리며 파업권을 부정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끔찍하다. 파업에 대해 거의 무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의 노동조건은 물론이요 삶의 조건 또한 온전할 수 없다.

 

2014.3.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