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문을 열어라

송경동

3차 희망버스를 준비하며

 

송경동 / 시인



사용자 삽입 이미지저 문을 열어라
크레인에서 내려가면 아이들에게
‘힐리스’ 운동화를 사주겠다던
김주익이 올라가 제 발로 내려오지 못한
저 철문을 열어라

 

저 문을 열어라
열다섯 시내버스 여공으로 시작해
스물다섯 최초의 여성용접공으로 시작해
대공분실 세번 다녀오고 징역생활 두번 하고
수배생활 오년 하고 나니
머리 희끗한 쉰두살이 되어 있더라는
저 아픈 여인이 스스로 잠가버린
저 절망의 철문을 열어라

 

저 문을 열어라
전깃불 하나 없는 깜깜한 쇠기둥 위에서
내려오는 법을 까먹을까봐
날마다 어둠속 되짚으며
한 계단씩 내려오는 연습을 한다는
저 서러운 철문을 열어라

 

저 문을 열어라
모두가 열고 싶어하는 저 문을 열어라
용역깡패들이 당장 열어버리고 싶어하는 저 문을
경찰특공대가 금세 따버리고 싶어하는 저 문을
경총과 전경련과 상공회의소와 시장과 노동청장과
경찰청장이 아예 이 지상에서 들어내버리고 싶어하는 저 문을
비겁한 이들도 덩달아 열어보고 싶어하는
저 고립된 문,
저 소외와 배제의 문을 열어라

 

“짐을 정리해서 내리고 문자와 소중히 간직했던 사진들을 지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력중 제가 선택한 건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어떤 밤들이 제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담담해지려 애쓰며 기다릴 뿐입니다. 그게 여러분이든 특공대이든……” – 김진숙의 트위터

 

그가 기다림에 지쳐 미쳐버리기 전에
그가 외로움에 지쳐 뛰어내려버리기 전에
그를 지키는 네명의 전사가
용산의 그 다섯 슬픔이 되기 전에

 

저 절망의 쇠문을 열어라
저 폭압의 철문을 열어라
저 착취의 대문을 열어라

 

희망의 버스를 타고 가는 길

 

‘희망의 버스’를 제안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백기완 홍세화 선생, 문정현 신부, 박창수 열사 아버지 등이 맨 먼저 ‘국가기간산업’의 담을 넘었다. 157일째를 맞는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날라리밴드의 뽕짝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었다. 1차 희망버스로 104명이 소환되고, 2차 희망버스로 50명이 연행되었지만, 다시 3차 희망버스가 준비중이다.

 

2차 땐 내려가는 길에서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피하지 않고 행진에 들어갔다. 밤 10시경. 아무도 없는 부산 시내를 걸으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다시 새벽 1시경,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으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2차 때 우린 참 많은 것을 준비했다. 부산 시민에게 호소하기 위해 1만여장의 포스터를 시내 곳곳에 붙이고, 정리해고자를 대신해 공장을 돌리고 있는 2천여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양말을 선물했다. 전국의 정리해고자 가족을 초대하고, 반값 등록금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위해 ‘반값버스’를 결의했다. 전동휠체어를 실은 희망의 트럭을 준비해 장애인 연대버스를 운영했다. 인권단체 회원들이 ‘무지개버스’를 준비하고, 청소년 활동가들이 ‘영의정버스’를 운행했다. 철거 위기의 홍대 두리반 식당에서 함께했던 ‘뮤지션버스’가 출발하고, 보건의료버스가 출발했다. 대안학교 아이들이 전혀 다른 ‘생태학습’을 경험하기 위해 오고, 성소수자들이 ‘퀴어버스’를 만들어 왔다. 하루 40km를 주파하는 희망의 도보행진에 나선 이들이 있었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맙게도 희망의 자전거를 끌어주었다. 제주도 강정마을 투쟁 현장의 사람들이 희망의 비행기를 타고 왔고, 멀리 일본의 반핵활동가들도 도착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1만여명, 1차가 끝나고 불과 24일 만이었다. 처음 고공농성 185일에 맞춰 전국 각지에서 185대의 희망버스를 조직해보자고 제안했을 때만 해도 모두가 웃었다. 그 인원은 민주노총이나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도 일년에 몇차례씩 불러모을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배후가 누구냐는 질문에 답한다



한 단위사업장의 사안에 연대하기 위해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찾아든 사람들이었다. 몇시간 집회를 위해 온 이들이 아니었다. 1박 2일 낯선 타향의 거리, 화장실 하나 없는 곳에서 노숙을 마다 않고 찾아든 이들이었다. 폭우와 폭염 속에서 날을 지새우고 밥이라도 한끼 먹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찾아든 이들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해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을 각오를 하고 찾아든 이들이었다. 연행과 구속을 결의하고 온 평범한 이들이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런 희한한 행진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자신의 일자리와 생존, 경쟁과 돈의 가치만이 전부인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연대가 가능하냐고, 묻는다. 이럴 때마다 나오는 얘기, 배후가 누구냐고 묻는다.

 
그런 질문 앞에 설 때마다 막막하다. 어느새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나 아닌 타인을 연민하고 사랑함으로써만 우리는 비로소 사람일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이 잊혀지고 있다. 이 농성이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과 ‘소금꽃’ 김진숙의 문제만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의 운명과 관계된 일이라는 것을 애써 잊고 있다. IMF 구제금융 이후 지난 십수년간 생존의 공포와 모멸 속으로 밀려나간 비정규직이 9백만에 이른다는 사실에 대한 실감의 상실이다. 이 모든 악독한 체제가 희망버스의 진정한 배후라는 것을, 연대의 매개물이며 촉진제라는 평범한 진실에 대한 방기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일부 신장을 댓가로 실제 우리가 내어주어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실종된 결과다.

 

‘희망을 만드는 휴가’를 제안하며



사람들은 이 모든 평범한 진실이 바로서기를 원한다. 김진숙을 살리는 일이, 바로 우리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김진숙을 살리는 일이,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유성기업 노동자를, 발레오와 콜트·콜텍과 재능교육과 국민체육진흥공단과 또 그 어디에서 잘려나가는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이제 알아가고 있다.

 

그렇게 3차 희망버스가 다시 준비되고 있다. 이번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내용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줄까.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이 운동이 전혀 다른 꿈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관성과 관습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엔가 포획되기를 거부하고, 무엇엔가 짓눌리기를 거부하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고통과 비장함이 아닌, 즐겁고 유쾌한 방식을 찾아나가고 있다.

 
3차 희망버스의 컨셉트는 ‘희망을 만드는 휴가’다. 소비하는 휴가가 아니라 생성하고 창조하는 휴가를 제안한다. 이 유쾌하면서도 눈물겨운 운동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해서 한국사회에 새로운 역사를 써주길 바란다.

 

2011.7.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