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삶의 역사를 보존하는 도시계획

김기호

 

김기호

김기호

도시는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도시이다. 도시는 박물관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와 방향이다. 사람들은 도시의 개발과 도시의 역사보존을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사실 도시가 변화한다는 것을 수긍한다면 이 둘은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지만 위치가 좀 다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도시를 개발을 중심으로 보는 시각은 도시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를 희망하는 것이고, 도시에서 역사환경 보존을 강조한다면 이는 도시가 좀 느린 속도로 변화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즉, 양자 모두 변화하는 도시에 대한 태도인 것이다.

 

도시개발과 역사보존은 양립 가능한가

 

우리나라는 지난 50여년간 신속한 근대화를 이루었으며 아울러 민주화도 이룬 나라로 내외에서 평가된다. 압축성장이라는 것을 통하여 여타 선진국이 이룬 성장을 매우 빠른 시기에 달성한 것으로 자주 칭찬받기도 한다. 허나 모든 성장에 성장통이 있듯이 압축성장에는 압축성장통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성장통은 성장의 크기만큼이나 그 크기가 클 것이다. 앞서 설명한 개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지난 50여년간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으며, 그에 따라 느린 속도로 변화하는 속에서 그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도시 역사환경 보존은 관심 밖이었다. 경제성장이 조금 느려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다시 때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도시의 빠른 변화, 즉 도시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자, 그럼 오늘 우리나라, 특히 서울에서 도시개발과 역사환경 보존은 양립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물론 가능하며 꼭 그래야 한다’이다. 왜 그런가?

 

무엇보다도 이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나 시민의 수준은 ‘닥치고 개발’로는 대응할 수 없는 위치에 와 있다. 사람들은 이미 빠른 변화에 현기증을 느끼고 있으며, 유목민이나 이방인처럼 정처 없이 이사하며 사는 것에도 피로를 느끼고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관심이 이를 대변한다. 시민들은 이제 삶의 질 향상을 경제개발과 동등하게 또는 더 높게 희망하고 있다. 역사환경 보존은 시대적, 형태적으로 그리고 기능적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삶의 환경을 제공하여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북촌과 삼청동을 찾는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생각해보자. 인왕산 아래 서촌에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데 귀를 기울이자. 정동과 명동을 걸으며 한 시대의 역사적 분위기와 오늘의 우리를 생각해보자.

 

다른 하나는, 현재 우리나라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소위 국제화 또는 세계 속의 도시경쟁력이라는 것이 결코 지금까지와 같은 ‘무작정 개발’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만들고 살아온 도시나 건물을 싹쓸이하고 국적 없는 거창한 건물이나 도시를 빨리 베끼는 것으로는 결코 세계 속에서 고유한 도시경쟁력을 가질 수 없음이 자명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한류라는 것이 어떻게 성공하고 있는가가 이를 증명한다. 사실 글로벌 경쟁력과 앞에 언급한 시민의 삶의 질은 동전의 앞뒤같이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명제이다. 누가 고유한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지니지 못한 도시에 국제적 지점이나 기관을 위치시키고자 할 것이며, 누가 삶의 질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곳에 가서 살고, 일하고 싶어하겠는가?

 

도시의 역사환경 보존을 통하여 독특하고 고유한 도시형태와 공간, 장소를 창출해내는 일은 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세계 속 우리 도시의 경쟁력을 위하여 ‘안되면 말고’의 수준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작업인 것이다. 여기서 역사환경이란 매우 제한된 궁궐과 도성뿐만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사용해온 친근한 집들과 가로경관 등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삶의 공간이 곧 역사문화재가 될 수 있어야

 

‘왜 역사환경을 보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양한 실용적 답이 있을 것이지만, 영국의 역사보존계획 전문가 마이클 로스(Michael Ross)는 그의 책 『계획과 역사유산』(Planning and the Heritage)에서 좀더 근본적으로 세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는 역사적‧고고학적 이유이며, 둘째는 심미적 이유이고, 셋째는 사회적 이유이다. 첫째와 둘째 이유는 어떤 장소나 건조물이 역사적 또는 건축‧도시계획적으로 중요하다든가, 매우 아름다운 전통적 조형미를 보여준다든가 하는 차원으로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할 만한 것들이다. 우리나라 역사문화자원의 보호‧보존제도 및 그 실무 역시 이들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하여 발전해왔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궁궐이나 고려시대의 불탑, 불상 등을 보존하는 일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지지한다.

 

흥미로운 것은 셋째인 사회적 이유로서, 이는 사람들이 최근 도시환경 변화의 속도와 형태에 불만을 가지며, 자신에게 익숙한 기존 환경에 애착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보존이 충실히 추구되어온 조선시대 및 그 이전 시설물‧장소와 달리 이 ‘사회적 이유’가 주목하는 것은 좀 더 일상적인 것들로, 오늘을 사는 일반인의 삶과 관련되는 건물과 시설, 장소 등으로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역사적 문화재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안녕, 고가도로」 「잘 가,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전시회는 이러한 시설들이 철거되었음을 아쉬워하며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회를 보며 나는 쉽게 ‘안녕’ 또는 ‘잘 가’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전 국민이 오랫동안 소리치고 환호했던, 그래서 더 애달파했던 동대문운동장이나, 많은 시민이 출퇴근을 하며 새로운 내일을 다짐했던 아현고가도로같이 시민의 일상의 기억에 깊이 새겨진 시설과 장소가 왜 이렇게 쉽게 헐려 없어져야 하는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들은 위 세가지 보존의 이유에서 최소한 역사적‧고고학적 이유와 사회적 이유에 해당할 만한 것들이다. 특히 시민의 일상의 기억과 관련해서는 셋째의 사회적 이유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이해나 이와 관련한 역사보존의 개념은 분명 달라질 필요가 있다. 역사문화재가 보통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근현대 역사문화재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를 왕이나 엘리트로만 보던 시각에서 대중과 민중도 중요한 주체로 보는 시각으로 변화한다면 일반시민, 백성들의 삶의 공간과 장소를 역사문화재로 보고 중시하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다. 연탄 때던 예전 아파트만큼 우리의 산업화‧근대화시대를 잘 보여주는 문화재가 있는가? 바야흐로 사회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문화재의 민주화’도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김기호 /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2014.7.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