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의 등장과 한일관계의 새로운 국면

이원덕

이원덕 | 국민대 교수, 정치학

아베 신조오(安部晉三) 정권의 출범이 향후 한일관계 및 동북아질서에 어떠한 영향을 초래할 것인가를 두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10월 9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으로 일단 경색된 한일관계 복원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갑작스런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따른 대북정책의 한일공조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아베는 과거를 직시하며 한국국민의 감정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표명함으로써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천명했다.

물론 한번의 정상회담으로 양국간의 골깊은 갈등이 일거에 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과거사 문제는 그 속성상 묘수에 의한 단기적 해법 도출이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국제공조 및 양국 시민사회의 협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아베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대다수 식자들은 그의 우익성향으로 한일관계의 악화가 가속화되는 한편, 중일·북일 관계의 경색이 심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의 언행과 정치적 행보를 보더라도 그가 복고적 국가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우파임이 손쉽게 확인된다. 아마도 아베는 전후 일본 총리 중에서 우파적 성향이 가장 농후한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그의 DNA 속에 내장된 정치이념이 골수 보수우파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베 정치의 주안점은 신보수주의적 성향의 정책 추구에 있다. 취임 직후 행한 소신표명 연설에서 아베는 그의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추진할 정책이 평화헌법과 교육기본법의 개정이라고 주장했다. 즉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적 보통국가의 실현, 교육기본법 개정을 통한 애국심의 고양을 주된 정치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정치지향은 향후 일본의 외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정권은 대미동맹 강화를 배경으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진출, 방위청의 방위성으로의 승격,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확대, 자위대 해외 파병의 항구화 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할 것을 표명했다. 북한문제에 관해서 아베는 초강경 정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납치 일본인 문제를 놓고 아베는 비타협적인 자세로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해 일본내 광범한 지지를 획득한 바 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전격적인 핵실험에 대해 아베 정부는 유엔을 통한 제재조치는 물론 일본 단독으로도 북한에 최대한 압력을 가하는 초강성 정책을 광범위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아베 정권하에서 한일관계 및 동북아 국제관계가 순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짙은 우파성향에도 불구하고 강경 일변도로 질주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아베 정권은 경우에 따라 한국과 중국에 대해 의외로 유연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는 10월 6일 일본국회에서 과거사 인식문제와 관련하여, 전후 최고 수준의 사죄문을 담은 ‘무라야마(村山富市) 담화’와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 관헌의 개입을 인정한 ‘코오노(河野良平) 담화’를 자신의 정부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아베의 이러한 자세표명은 다소 뜻밖이지만, 내년 7월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일본내 반대세력의 비판의 예봉을 사전에 꺾고 파탄 직전에 놓인 한국·중국과의 근린외교 복원을 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따라서 아베 정권에 대해 고정관념과 예단에 기대 우리의 대일정책을 구상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우리 정부도 열린 마음으로 폭넓은 선택지를 고려하며 아베 정권과의 관계를 새롭게 탐색해볼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아베는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으며, 자신의 저서에서도 “한일관계에 대해 나는 낙관주의자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쓴 바 있다. 한국과 우호친선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그의 사고 기저에 자리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선 야스꾸니신사(靖國神社) 참배에 관해 아베는 분명한 입장표명을 삼가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당분간 참배를 자제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로써 한국·중국과 관계를 개선할 실마리가 일단 제공된 셈이다. 아베는 잇따라 중국·한국과 정상회담을 열어 코이즈미(小泉純一郞) 전 수상이 일그러뜨린 근린외교 복원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볼 때 5년여 만에 찾아온 일본의 정권교체는 전략적 선택에 따라 관계개선의 호기로 활용할 여지가 크다. 따지고 보면 작년 봄부터 급속도로 냉각된 한일관계의 원인제공자는 일본이었다. 독도, 교과서, 야스꾸니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의 출발점은 코이즈미 정권의 무절제한 선제행위에서 비롯됐다. 물론 분쟁이 지나치게 격화된 데는 한국의 과잉대응도 한몫했음을 빠뜨릴 순 없다.

이번 정상회담은 그간 극도의 불신에 빠져 있던 한일간 상호신뢰와 대화의 기반을 재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우리는 아베 정권의 등장을 계기로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 프로그램이 동북아질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장기적이고 다각도의 대비책을 수립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 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일간 대화와 의견 조율이야말로 최우선의 과제다. 북한의 핵실험은 동북아지역 최악의 위기 씨나리오의 가시화를 예고한다. 한일 양국은 지역정세를 파국으로 이끌지 모를 북한의 핵무장을 막아내고 6자회담 재개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데 모든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2006.10.10 ⓒ 이원덕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