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연재를 시작하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팬데믹이 되면서 어디로도 이동을 못하게 되자 집 앞에 앞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집 뒤쪽으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북한산 등산로가 있습니다. 저도 산에 가게 되면 아름다운 뒷산으로만 올라갔지 어째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앞산은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나마 엉치가 아프기 시작한 지 꽤 되어서 사실 가파른 뒷산을 오를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중에 어느날 앞산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런 산길이 있었나, 싶은 길들이 여기저기 나 있었어요. 오늘은 이 길로, 내일은 저 길로…… 걸어다녔습니다. 잎이 돋고 꽃이 확 피었다가 지고 지금은 나무에 돋았던 새순들이 자라서 녹음이 우거졌네요.

 

   아버지 이야기를 반쯤 썼습니다.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는 저도 다 써봐야 알겠습니다. 여름이 지나 완성이 되었을 땐 다만, 삶의 낯섦이나 고통들과 일생을 대면하면서도 매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익명의 아버지들의 시간들이 불러내졌기를 바라봅니다. 저에게 개인적으로 아버지는 (아버지가 들으시면 언짢으실 것 같은데) 아픈 손가락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어려서나 청년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저는 늘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관찰하며 살아온 듯합니다. 거꾸로 돼도 한참 거꾸로이고 오만하고 건방지기까지 한 말일 수도 있는데 아버지를 생각하면 저도 잘 파악할 수 없는 보호본능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늘 아버지 편이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목소리가 크고 타인에게 힘이 센 분으로 여겨졌다면 그 곁에서 도망치려 했겠으나 제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문득 생각나는데 언젠가 무슨 일로 아버지와 함께 밤길을 걷게 되었을 때 어둠 저쪽에서 날카로운 뭔 소리가 들리니까 놀란 제가 얼른 아버지 손을 잡고는 아버지 뒤쪽으로 바짝 붙어서더군요. 아마 이 이야기는 작품 어딘가에 어떤 식으로든 스며들어가겠지요. 그때 알았습니다. 만약 함께 걷는 발소리가 제 아버지 것이 아니었다면 제가 두려움에 찼을 때 그리 믿고 의지했겠는가를.

 

   언제나 지금도 뭔지 당신 뜻대로 되지 않은 힘겨움 앞에 서 계시는 나의 아버지께 이 작품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쓴다고 말하고 싶으나 사실은 오그라든 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슬픔과 모순을 심연에 품고 나아가야 하는 허망하고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바람에 날려갈 한톨 먼지에 불과합니다. 어디에 계시건 제 기척이 느껴지면 경숙이냐?고 묻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언제까지 들을 수 있을는지요. 저는 예, 아버지 경숙입니다,라고 언제까지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마음이 약간 급하기는 합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부쩍 깨닫습니다. 부디 작품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지켜봐주십시오.

 

2020. 6. 23. 신경숙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