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재선 이후 한반도 정세

김민웅

김민웅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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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여전히 힘겹다. 경제위기에 봉착했던 2008년 이후, 전쟁을 통한 국가팽창 전략에는 제동이 걸렸고, 미국 중심의 일극적 체제(unipolar system)는 이전처럼 가동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맥락에서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의 생존방식에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오바마의 정치경제적 운신은 생각보다 좁았다. 각료 구성에서도 오바마는 네오콘 세력 일부를 정치적으로 상속받았고, 복지정책 확대 요구와 정부의 부실재정이 서로 충돌하는 모순 속에 자신의 입지를 확보해야 했다. 오바마 1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그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변화’의 구도가 현실정치에 안착하려는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추구는 기본적으로 구질서의 퇴각 내지 해체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4년으로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어디 어림이나 있는 것인가? 오바마 자신의 지도력과 개성은 기존 질서에 일정하게 포위되는 상황이었으니 그를 뽑아주었던 유권자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재선이 가능했던 것은, 2008년 경제위기가 그의 책임이 아니라 부시 정권이 저질러놓은 일이라는 것을 유권자들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4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산적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도 인정한 결과였다.

 

오바마 2기 대외정책의 향방

 

 

따라서 그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한 미국 유권자의 선택에는 오바마표 정책이 좀더 뚜렷하게 가시화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실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의 행보는 지난 4년보다 상대적으로 자신감과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바마로서는 일극적 위상을 더는 유지하기 어려운 미국의 대외 행동반경에 있어서 ‘단독적으로 강한 미국’이 아니라 ‘국제적 협력체제를 지휘하는 미국’을 선택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이는 ‘아시아로의 이동’이라는 대외정책의 기조와 합치하는 동시에, 중국 포위 내지 봉쇄 전략이 중심이 되었던 1기의 수정을 의미한다.

 

유럽이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유럽 중시주의 정책이라는 것이 자국에 부담만 가중시키게 된다. 미국은 중국 성장에 대한 견제력을 발휘할 여지조차 그런 위기 해결에 흡수되어버리는 결과에 직면하면서, 아시아․태평양 국가로서의 위상 굳히기에 진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외정책의 방점 변화는 동북아시아에 일정한 평화적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내심 긴장하면서 상대의 의중을 탐색하고 그와 동시에 물리적 대립을 피하려는 처지는, 그 중간지대를 완충지역으로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완충지역의 중심에는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묘한 ‘외교 방정식’ 위에서 평화를 구하는 방법

 

 

이렇게 보자면, 남과 북은 정세를 활용하기에 따라서 상호 평화적 접근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가는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치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 남북대화가 지난 시기의 압박에서 일정하게 풀려나 여유를 갖고 진행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 생각해보자면, 미중관계가 미묘한 균형 위에 서 있기에 한반도가 어떤 축으로 기우뚱하게 되는가에 따라 동북아시아 패권체제 재편성의 결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미·중의 한반도에 대한 교차성 흡인정책의 강도는 강해질 수 있다. 즉 상대가 유지하고 있는 기존의 동맹질서에 다소라도 균열을 내고 싶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중국은 한국에 대해 외교적 인력(引力)을 강화할 수 있다.

 

이같은 정세는, 우리에게 매우 복잡한 ‘외교 방정식’을 요구하고 있다. 긍정적 틈이 생긴 평화의 공간을 확대하면서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립적 균형을 이룩해야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고 통일 한반도의 축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고 미국이나 중국이 판단하게 될 경우,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구나 그 어느 쪽이라도 이를 용납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조건 위에서 가장 절실해지는 것은 남과 북의 대화와 동북아시아 패권체제의 장력을 넘어서는 상호결속이다. 이 기반 위에 있지 못하는 일체의 동북아시아 질서 재편은 우리에게 또다시 주변의 힘에 휘둘리는 역사를 강요하게 될 것이다. 역사가 열어준 기회를 부디 지혜롭게 사용해야 할 때가 왔다. 오바마와 차기 정부의 평화협력체제의 등장을 고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2.11.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