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겨레의 집을 꿈꾸다

이재규


이재규
/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공덕동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사장 고은) 사무실에 들어서면 흰머리칼이 수북한 채 굵은 검정테 안경 너머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방문객을 바라보는 한 노인과 마주치게 된다. 고(故) 문익환 목사의 유화 초상이다. “반가워요.” 금방이라도 정겹게 손을 내밀듯한 표정으로 문목사가 거기 문지기처럼 서 계신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1989년 3월 25일,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는 김일성 주석에게 남북 공통의 국어사전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공동작업을 제안했다. 대표적 재야인사이면서 민주화 통일운동가이기 이전에 윤동주의 친구이자 성서 번역자, 시인이었던 문익환 목사는 우리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각별하게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좋지요.” 김주석의 망설임 없는 화답이 이어졌고 그렇게 겨레말큰사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이 걸어온 길

최초의 합의는 극적으로 이뤄졌지만 실제로 사전 편찬작업에 착수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1994년 문목사와 김주석이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나면서 어렵게 이뤄진 합의를 이끌어갈 양쪽의 주체가 막연해졌고, 그뒤로 남북관계가 여러차례 요동치면서 사전 이야기는 한동안 잊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0년 남북 정상의 6·15공동선언이 있고 나서도 3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묵혀둔 약속이 다시 세상에 나왔고, 드디어 2005년 2월 19일 남북공동편찬위원회가 금강산에서 결성되면서 겨레말사전은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최초의 약속으로부터 따지면 16년 만의 일이었다.

겨레말큰사전은 분단 이후 60년을 다른 제도와 문화 아래에서 살아온 남북 양 민중의 언어생활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출발한다. 양측을 통합해갈 때 어려운 점은 우선 어문규범상의 문제일 것이다. 자모의 배열순서, 사이시옷, 띄어쓰기, 외래어표기법 등에서 남북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두음법칙’은 남북이 두드러지게 차이나는 규정으로, 북측 문헌과 말에 대해 남측 언중이 가장 이질감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반면에 남북의 어휘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원래 남북지역 방언 사이의 차이가 60년간 왕래가 철저하게 차단되면서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말의 차이보다 더 커 보이는 것, 곧 심리적 거리가 더해진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북측 특유의 억양과 ‘전투적’ 어휘들이 주는 생소함이 전쟁 이후 남쪽 대중이 갖게 된 공포의식을 자극하여 더 ‘아득한’ 거리를 만들어내는지도 모르겠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은 바로 이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가장 직접적인 목표로 삼는 것이다.

남북의 언어통일을 넘어서는 겨레말큰사전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의 언어통일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격랑의 우리 근대사에서 만주, 연해주, 중앙아시아, 일본, 멀리는 유럽과 미주로 밀려간 우리 동포들의 삶이 담긴 말까지도 온전하게 통합해가는 진정한 모국어공동체의 회복이야말로 겨레말큰사전이 지향하는 목표이다. 그래서 작업일정에 남북 모든 지역의 현장조사와 함께 해외동포들의 어휘조사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문헌어휘 조사의 대상도 남북의 작가들은 물론 재외동포 작가들의 작품에까지 열려 있다. 또한 표준어, 문화어에 밀려 ‘비표준’으로 격하되어온 지역어(방언)를 살려내고 생동하는 입말 조사를 전 한반도에 걸쳐 시행하는 것도 특색이다.

이런 이유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을 누구보다 환영하는 곳은 재외동포 사회이다. 연변의 사례를 들어보자. 중국 연변지역은 사회주의체제의 지배원리가 작동하고 지리적으로도 한반도와 인접한 곳이며 말과 혈통을 같이하는 조선족이 집단적으로 거주해온 사회이기 때문에, 중국과 수교한 이래 북을 들여다보는 창(窓) 역할을 했다. 실제 연변의 조선족들이 어려서 배운 조선말과 글은 다 북쪽 기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조선족 사회는 한국과 거의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위성방송으로 한국의 인기 드라마를 같은 시간대에 시청하고 왕래가 빈번하기 때문에, 생활어도 남쪽을 많이 닮아감을 느낀다고 한다. 조선말, 한국말, 연변말이 뒤섞이면서 아직 북측 언어체계를 따르는 교육현장과 실제 생활이 괴리되는 등 여러 부문에서 정체성의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총련과 민단 중 어디에 소속되느냐에 따라 말과 글이 대치하는 재일동포 사회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은 이들에게 통합의 실마리를 주는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전 편찬의 산실이 될 ‘겨레말의 집’

지금 중국 션양(瀋陽)에서는 제11차 공동편찬회의가 열리고 있다. 공동편찬회의는 분기별로 한번씩 북측지역과 남측, 중국을 오가며 열리는데, 북측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을 알고 있었다. 김주석의 생전 약속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북쪽의 관계 일꾼들 사이에서 겨레말큰사전은 어떤 정세변화가 있더라도 꾸준하게 밀고 나가야 할 민족사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2005년 9월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평양)에서 “남과 북은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적극 밀어주기로 하였다”는 내용의 합의(제5항)가 가능했던 것은 이같은 정황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실제 남북간 교류가 동결상태에 머물렀던 ‘북핵’ 국면에서도 겨레말의 발걸음은 이어졌고 그런 신뢰와 지속적인 교류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언어’를 특별히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남쪽에서도 모국어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을 위한 핵심사업으로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여야 의원들이 노력한 덕분에 2007년 4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이 사업은 국가적 차원의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겨레말큰사전은 2013년에 30만 어휘를 담아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남과 북이 분기별로 만나 그동안의 작업을 비교하고 합의하는 일정으로는 사전이 나오기 어렵다. 매일 남북의 언어학자와 관계자 들이 수백개의 어휘를 함께 검토할 수 있는 공동의 작업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남북이 2008년 무렵 완공을 목표로 해서 개성에 건립하기로 잠정 합의한 ‘겨레말의 집’은 가장 위대한 무형유산인 우리말을 유형의 유산으로 치환해내는 상징적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공동사전 편찬의 산실로 민족사에 우뚝 남을 것이다.

민족어 통일작업은 오늘도 계속된다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이 1945년 분단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남과 북을 단순 통합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통일이란 남과 북이 각기 걸어온 길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다른 측면을 적극 받아들여 민족 구성원 모두가 풍성해지는 길일 것이다. 우리 민족사의 큰 흐름을 긍정의 눈길로 적극 해석해볼 때, 근현대 100년간 우리 민족이 겪어온 갖은 풍상만큼 우리 겨레는 남들이 미처 가보지 못한 길을 개척해갈 수 있는 저력을 쌓아온 것이다. 해외에서 신산을 겪은 우리 민족 구성원의 애환과 함께 남북이 서로 갈려 전혀 다른 체제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며 살아온 60년이 그저 헛된 세월만은 아닐 것이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통일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먹어버리거나 일대일로 단순 통합하는 것이 아니듯,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남과 북의 어휘를 단순히 통합하는 작업이 아니라 ‘겨레말에 녹아 있는 우리 민족의 유산과 얼을 발굴하여 민족공동체 의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통일 조국의 밝은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한반도 내부에서만 그칠 일이 아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주, 유럽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이산의 삶을 살아온 우리의 묵은 상처가 회복되는 순간, 민족어의
영토가 한없이 넓어지면서 우리의 언어와 문화도 그만큼 풍성해질 것이다.

공통의 사전 한권을 우리 손에 올려놓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의 흐름이 그렇듯 남과 북의 편찬 작업자들은 어느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한 채, 격돌하고 논쟁하며 또 한편으로는 서로를 아울러갈 것이다. 평양과 서울, 북경과 션양, 개성, 금강산을 종횡으로 연결하며 공동편찬회의는 오늘도 계속된다. 우리 민족이 오랜 신산의 세월을 댓가로 지불한 유일무이한 역사를 버무려 가장 황홀한 ‘언어의 창고’를 함께 만들어내는 이 작업 속에서, 이제서야 우리는 온전한 겨레의 집을 갖게 될 것이다

2007.10.16 ⓒ 이재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