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거리 대량수송 중심 전력시스템의 파산

이헌석

이헌석 /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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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째, 언론에서 밀양송전탑, 핵발전소 부품 비리, 전력대란 등 전력정책 관련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일부터 재개된 밀양송전탑 공사는 20여명에 이르는 70~80대 어르신들의 부상 속에 결국 공사를 중지하고 전문가 협의체를 통해 대안을 논의하기로 했고, 신고리·신월성 등 신규 핵발전소에서도 안전에 문제가 되는 원자로 제어케이블의 성능 검사 결과가 위조되어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 신규 핵발전소 외에도 부품 재질 결함, 노후 등의 이유로 가동을 멈춘 핵발전소로 인해 전력대란 우려가 높아지면서 연일 언론에서 전력수급 준비, 경고 같은 용어가 들리고 있다.

 

올 초여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기에너지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그간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오던 전력시스템의 사실상 파산을 의미한다. 그간 우리나라의 전력정책은 전형적인 원거리 대량수송, 핵발전 위주의 시스템에 집중해왔다. 전력수요가 많은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발전소와 송전설비가 계속해서 증설되었다. 하지만 정작 수도권엔 발전소를 짓지 않았다. 서울과 경기도의 전력자급률은 각각 3.0%와 24.6%이다. 부족한 나머지는 모두 외곽에서 공급받아왔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당진·태안·보령에 집중적으로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었고, 태백산맥 너머 울진에는 핵발전소를 지었다. 그리고 생산한 전력을 수송하기 위해 전압 76만 5천 볼트의 초고압 송전탑이 서울과 수도권을 휘감고 있다.

 

한반도를 휘감은 송전탑과 핵발전소

 

밀양송전탑 계획은 애초 원거리 대량수송 시스템의 일부였다. 이후 서울까지 연결될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결국 이 전력은 수도권까지 이어진다. 밀양이 포함된 영남권 전체는 지금도 전력예비율이 150%에 달해 전기가 남아도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신고리 핵발전소 3~6호기에서 생산된 전력을 대구 등 영남지역 내부에 공급하고 남는 전력은 다시 중부지역에 공급하고, 중부지역은 다시 서울?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는 거대한 연결이 밀양 송전탑을 시작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많은 발전소와 송전탑이 건설되었지만 전력은 언제나 부족하다. 혹자는 환경론자들의 반대로 발전소 건설이 여의치 않다고 항변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그간 정부는 이러한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도대로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 같은 대형 발전소를 지어왔고,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산업용 전기를 공급해 한전이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도 싼 전기요금을 유지해 전력소비를 늘려왔다. 이에 따라 2005년 이후 우리나라의 전력수요는 연평균 5.7%씩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독일과 영국이 각각 0.05%와 -0.17% 늘어난 것에 비하면 말 그대로 ‘비약적인 증가’였다. 특히 2010년에는 한해에만 무려 10.1% 폭증하는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졌다.

 

한편 정부가 언론을 통해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끊임없이 홍보하는 핵발전은 어떠한가. 80년대 한때 전체 전력생산의 50% 이상을 차지하던 핵발전은 이후 점차 비중이 낮아지기 시작해 현재 30%대에 머물고 있으나, 2008년 이명박정부는 2030년까지 이 비율을 59%까지 늘리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고, 이에 따라 현재 23기가 있는 핵발전소는 2배 이상 늘어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존 발전소 부지 외에도 삼척과 영덕에 각각 6개씩의 핵발전소를 지을 부지를 예비고시해놓고 있는 상황이다. 후꾸시마 핵사고 이후 시민사회에서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지만, 정부 계획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또한 소위 ‘원전 마피아’라고까지 불리면서 강력한 카르텔을 만들어왔던 핵산업계는 자신들의 부패고리를 감추며 핵발전소의 부실을 키워왔다. 그들은 핵발전이 값싸고 안정적인 전원공급원이라며 자랑해왔지만, 전국적인 부품비리 앞에 핵발전은 가장 불안하고 불안정한 전력공급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소규모 분산형 전력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모색하자

 

‘우리는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밀양의 목소리를 님비(NIMBY)로 매도하며 보상안을 논의하는 이들에게 밀양의 70~80대 어르신들은 청년도 오르기 힘든 산을 매일 오르며 이와 같이 외쳤다. 그들의 외침은 결코 밀양 송전탑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한 건 몇푼 되지 않는 보상도 대안 노선도 아니라, 현재의 전력시스템 전체를 뜯어 고치라는 요구이며 항거다.

 

그리고 우리 시대는 이제 그 항거에 답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까지 내몰려 있다. 발전소와 송전탑을 계속 지어도 전력이 부족한 상황, 각종 비리의 늪에서 더이상 믿을 수 있는 것들이 없는 상황, 말 그대로 전통적인 전력시스템의 파산을 겪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원거리 대량수송이 아닌, 소규모 분산형으로 전력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이다. 또한 더이상 안전하지도 안정적인 전원 공급원이 아닌 핵발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력시스템을 고민해야할 때다. 현재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전력수요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사태 이후에도 시스템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더 큰 파국이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라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3.6.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