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체제 출범 후 첫 남북민간교류

이승환

이승환 / 6․15남측위원회 공동대표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9년 봄부터 중단되었으니, 만 3년 만에 이루어진 북과의 공식적인 만남이었다. 이번 접촉은 북의 새 지도부 등장을 배경으로 민간이 앞장서서 남북관계에 대한 북의 입장을 듣고 또 남쪽의 다양한 의견을 전하는 것은 물론, 민간교류 복원에 대한 밀려 있는 논의를 위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이하 6․15남측위)가 먼저 6․15북측위원회에 제의한 접촉이었다.

 

6․15남측위는 남쪽의 최대 통일운동단체로서 정당, 종교, 시민사회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고 모두 참여하고 있으며, 역시 북쪽의 모든 정당, 대중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6․15북측위원회와 함께 그동안 남북 민간교류의 상징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지난 3년간 6․15남측위는 북한주민 접촉신청을 제출하고 정부로부터 ‘수리 거부’라는 형식으로 사실상 접촉을 불허당하는 불유쾌한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해왔다.

 

‘유연성’과 친절 서비스의 사이

 

이번에는 좀 다른 듯했다. 6․15남측위가 북과의 심양 실무접촉을 신청하자 통일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불허를 통보하는 일회성 만남이라면 사양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만남에 대한 정부 관계자의 의지는 강력했다. 그러나 그 만남은 결국 ‘민간접촉은 당국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번 실무접촉은 어렵다’는 불허 통보의 자리였다. 결과적으로 민간교류와 관련한 정부의 ‘유연성’ 발휘는 문서로 불허를 통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만나서 불허를 설명하는 친절 서비스로의 전환이었던 셈이다.

 

민간교류와 관련한 정부의 말도 안되는 논리를 ‘친절 서비스’를 통해 직접 들으면서, 우리는 이 정부의 ‘유연성’ 발휘에 대한 기대를 깨끗이 접었다. 정부와 민간의 관계에 대한 상식이나, 남북관계에서 민간교류가 갖는 의미와 역사성 따위를 그 자리에서 논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해 보일 정도였다. 이 만남 이후 열린 6․15남측위의 회의에서는 민간교류에 대한 정부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면서, 이번 심양 접촉을 강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지난 3년 동안 정부의 불허 조치를 대체로 수용해왔던 6․15남측위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김정은체제 출범 이후의 첫 남북 민간교류는 이 정부가 말하는 대북정책 ‘유연성’에 대한 기대를 접으면서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번 접촉에서 우리는 올해 6․15공동선언 12주년 남북공동행사를 금강산에서 진행하자고 북에 제안했다. 이 제안은 남북공동행사를 금강산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의 시급한 현안을 푸는 실마리로 삼아보자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북은 남측의 제안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긍정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어서 우리는 금강산 남북공동행사가 성사되려면 금강산관광의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 사이의 대화와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개진했다. 이에 대해 북은 최대 현안인 관광객 신변안전보장 문제와 관련해서 2009년 8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대아산 현정은 회장에게 북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담보를 했기 때문에, 금강산관광 문제는 남의 현대아산 측과 북의 조선아태평화위원회가 협의하면 되는 문제라고 답했다. 즉 당국간 접촉이 없어도 금강산관광 재개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정은체제의 남북관계 인식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남에서는 이른바 북의 ‘통민봉관(通民封官)’ 전략에 민간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런 비판이 옳든 그르든, 당국관계가 닫혀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또 민간교류 역시 당국관계에 일정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지점에 이르자 북은 마치 준비했다는 듯이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북에 계속 묻고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답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새로운 김정은체제하에서 북은 남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또 앞으로 남북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려 하는가?

 

북은 “남쪽 언론에서 제기하는 ‘통민봉관’은 어불성설이다, 북은 남북의 대화와 협력을 위해 여러 노력을 전개해왔으나, 남쪽 당국이 그때마다 매우 실망스런 태도를 취해왔다”면서, 남측 당국이 집권 말기에 들어와 어려움에 처하자 북을 탓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이 남북관계에서 특히 문제로 삼고 있는 지점은 최고지도자 표적 조준사건, 심리전 돌출행동, 김정일 위원장 조의 관련 남측 당국의 태도 등 세가지였다. 이중에서도 소위 ‘대국상(大國喪)’과 관련하여 북은 남측 당국이 북 당국과 주민의 분리 운운하면서 최대 슬픔에 빠져 있는 북의 상주와 인민을 ‘조의를 빙자하여’ 모독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당국간 대화는 더 논의할 여지가 없다. 남측 당국이 대화나 평화를 언급하려면, 대국상 관련 사과 표명과 함께 6․15와 10․4남북정상선언 등 남북선언들에 대한 존중과 이행의 입장을 명백히해야 한다”는 것이 북의 결론이었다.

 

민간교류가 선 자리

 

여기에 이르자 마음이 답답해졌다. 현재의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 북이 하고 싶은 말은 서로 했지만 답답함은 여전했다. 이번 접촉의 논의들을 바탕 삼아, 특히 금강산관광 재개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나서서 현대아산과 북 아태평화위원회 사이의 논의를 진전시키기를 희망하는 우리들의 기대는 아마도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당국관계에 대한 북의 누적된 실망과 닫혀버린 마음, 그리고 민간교류가 범법행위가 되고 있는 남쪽의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 이번 심양 접촉이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바로 이 지점에서 민간교류의 가능성과 희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북의 생각을 남에 가감 없이 전하고 또 남쪽의 다양한(정부를 포함하여) 의견을 북에 전하는 것이 민간교류의 한 역할이고, 이 과정이 축적되면서 비로소 막혀 있던 남과 북의 속깊은 소통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민간교류는 통일과정의 속내용을 채워 가는, 정부와는 또다른 핵심 행위자인 것 이다.

 

2012.2.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