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칼날 위의 평화』

황준호

다시, 노무현이라는 화두

– 이종석 『칼날 위의 평화: 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 개마고원 2014

 

 

kalnal이종석(李鍾奭) 전 통일부 장관이 쓴 노무현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비망록’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의 반 이상 동안 이 분야를 취재했던 기자로서,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저자가 어떤 얘기를 내놓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 책에서 수차례 언론에 서운함을 표하는데, 나 또한 노무현정부의 정책은 물론 저자를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도 썼다.

 

저자는 “일부 진보언론과 정치인은 정부자료를 공개하면서 참여정부가 대미굴종적 협상을 하고 있으며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다”(460면)라고 썼는데, 내가 바로 그 ‘일부 진보언론’의 기자였던 것이다. 특히 이 대목은 주한미군의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주한미군이 대북 억제만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 동북아 신속기동군이 되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한반도가 동북아 분쟁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협상을 둘러싸고 청와대 국정상황실이 당시 NSC 사무차장이었던 저자를 공격하던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나는 그 국정상황실이 작성한 문건을 입수해 단독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후 저자와 여러차례 접촉하면서, 내가 쓴 비판기사 중에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작성한 것도 꽤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렇지만 아직도 노무현정부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납득되지 않거나 아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저자가 비망록에서 무슨 말을 할지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본 결과, 머릿속은 전보다 더 복잡해졌다.

 

나를 혼란케 한 부분을 하나 꼽자면,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던 2006년 여름의 상황에 대한 서술이다. 당시 저자는 통일부 장관으로서 ‘만약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대북 쌀 지원을 유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경고는 북한의 행동을 바꾸지 못했다. 북한은 핵·미사일 문제만큼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이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쪽에서 뭐라 하건 미국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행동을 결정한다. 결국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고, 남측은 공언했던 대로 쌀 지원을 유보해야 했다. 북한은 그해 10월 끝내 1차 핵실험까지 감행했는데, 미사일 발사와 쌀 지원을 연계하지 말고 남북관계를 계속 가져갔어야 했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다. 진보진영만의 비판이 아니었다. 통일부 고위 관계자들조차도 사석에서 ‘남북관계를 북미관계하고 섞으면 안되는데……’라며 그 결정을 비판했다. 그로 인해 노무현정부는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노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5개월도 남지 않은 2007년 10월이 되어서야 열리게 된 것도 ‘쌀-미사일 연계’의 여파가 어느정도 작용한 결과다.

 

시간이 흐른 후 2009년, 저자는 한 강연에서 2006년 당시의 결정에 대해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스스로 잘못된 결정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칼날 위의 평화』를 보니 내가 잘못 넘겨짚은 것이었다. 저자는 책에서 당시의 결정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했으며 어떤 이들은 ‘어떻게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냐?’고 비난했다. 그러나 (…) 그것은 핵실험으로 진행되는 위기의 국면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였다. (…) 국민이 누려야 할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민의 평화로운 권리를 위해 대북 쌀 지원을 유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507면)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신념이 누구보다 강한 그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분리한다는, 포용정책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얘기를 이렇게 강하게 한다는 건 의아하다. 어쩌면 내가 포용정책의 원칙을 오해하고 있거나 교조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마음 한편에 있다.

 

이처럼 노무현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에는 아직도 많은 얘깃거리와 논쟁거리가 남아 있음을 『칼날 위의 평화』는 재확인시킨다. 노무현정부 지지자의 대거 이탈을 가져왔던 이라크 파병을 돌이켜보는 부분을 읽어봐도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고려하여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던 대의명분을 포기하고 추가파병을 선택했으며 (…) 결과적으로 우리는 자이툰부대를 통해 ‘파병 반대=평화, 파병=반평화’의 공식을 넘어서 ‘평화를 증진하는 파병’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생각한다.”(242면) 북핵문제에서 미국의 협력을 얻기 위해 명분 없는 전쟁이었지만 파병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의명분을 일절 고려하지 않고 ‘비용 대비 효과’만 따진다고 해도 나는 그 판단에 회의적이다. 과연 파병이라는 값비싼 비용을 들인 만큼 북핵문제에서 미국의 협조를 많이 받았던가.

 

『칼날 위의 평화』에 나타난 저자의 생각을 예전처럼 딱 잘라 비판하지 못하고 ‘혼란스럽다’ ‘회의적이다’ 등 유보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의 진정성과 고뇌를 상당부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 어느 쪽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었던 노무현정부의 처지를 이해하는 측면이 생겼기 때문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나타난, 한반도 문제에 관한 노 전 대통령의 접근방식과 해법이 그 누구의 것보다 현실적인 동시에 평화지향적임을 믿기 때문이다.

 

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핵심 담당자가 이런 방대하고 상세한 비망록을 쓴 사례는 매우 드물다. 한편 작년에는 극비문서여야 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까지 유출됐다. 이렇게 해서 노무현정부의 외교·안보·대북 정책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는 거의 나오지 않았나 싶다. 바라건대 이 문서와 책이 그저 노무현정부를 평가하는 데만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평가는 이제 역사가들에게 맡겨둘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귀한 자료가 앞으로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한 용도로 더 긴요하게 쓰이길 바란다. 

 

 

황준호 / 국민TV 뉴스취재팀장 

2014.9.17 ⓒ 창비주간논평

 

*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4년 가을호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