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평생교육단과대학 사태가 말해주는 것

윤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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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추진해온 평생교육단과대학사업(평단사업)에 선정된 이화여대가 학생들의 강한 반발로 결국 사업을 반납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총장퇴진을 요구하며 본관 점거농성을 지속하고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는 등 사태가 종식되지 않고 있다. 평단사업은 정부가 ‘선취업 후진학’의 기회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평생교육 목적의 단과대학을 설치하는 대학에 30억원의 재정지원을 하는 사업이다. 그 자체로는 선정되었다 해서 해당 대학에 이처럼 심각한 갈등과 분란을 야기할 사안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가 사업의 철회로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충돌이 더 격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직접적으로는 총장을 비롯한 대학본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사태가 증폭된 탓이 크다. 학생들의 본관건물 점거농성은 꽤 과격해 보이지만 사학분규가 고질화된 한국사회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극심한 분규를 겪는 대학조차도 공권력을 요청하여 학생들을 진압하는 식의 대응은 흔치 않고, 군부독재 시절에조차 학내 갈등으로 빚어진 일에 이번 이대와 같은 신속한 경찰투입은 거의 없던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동문이나 학부모까지 대학의 행위에 분노하고 학생들에게 동조한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한국 대학정책의 근본 문제를 드러내는 징후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의 대학들이 이같은 사태가 언제라도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데 있다. ‘이대의 난’이라고도 불리지만 이번 사태는 이대만의 일도 아니고 평생교육단과대학 문제만도 아니다. 물론 서울의 유수대학에서 발생한 일이고 평생교육단과대학 설치를 둘러싼 이견에서 비롯되었다는 특수성이 없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크게 보면 이 사태는 한국 대학 일반에 만연된 심각한 병폐에서 비롯된 일이자 그것을 드러낸 징후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대학의 병폐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겠지만, 이번 사태와 직결된 한국 대학의 위기증상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오늘날의 한국 대학이 학문공동체로서의 활력을 상실하고 타율적이고 수동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대학이 제 기능을 하려면 구성원 사이에 민주적인 소통구조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대학교육이 목표하는바 비판적 사고력의 훈련과 학문적인 창의성의 발휘는 이런 자율성을 바탕으로 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와서 정부의 대학개입이 노골화되면서 대학 내부의 민주적 거버넌스는 거의 와해되다시피 하였다. 대학의 주체가 되어야할 학생뿐 아니라 대학운영의 축인 교수사회의 발언권조차 위축될 대로 위축된 반면 행정본부의 권력은 커질 대로 커져 있다. 오죽하면 작년 한 국립대 중견교수가 대학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본관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했겠는가.

 

대학의 자율성 실종과 쌍생아처럼 맺어진 문제가 대학들을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는 교육부의 대학정책이다. 과거의 독재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대학을 억압했다면, 지금은 재정지원을 무기로 정부 주도의 획일적인 평가를 통해 대학들을 줄 세우는 방식으로 통제한다. 운영비를 국고에서 지원받는 국립대는 물론이고 재정기반이 취약한 사립대의 대다수는 정부의 재정지원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한정된 대학지원예산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대신 대학들끼리, 전공들끼리, 교수들끼리 상호경쟁하게 만들고 ‘선택과 집중’ 논리를 내세워 상위순위에 몰아준다. 마치 군대식 선착순에 흡사한 이같은 정책을 통해 대학과 교수 들의 순응을 강요한다. 최근의 대규모 재정지원사업인 프라임(PRIME)이나 코어(CORE) 사업은 산업수요 위주의 대학개편을 강제하는 방편으로 재정지원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대 사태의 진정한 의미

 

더구나 학령인구 감소로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시기에 이같은 교육부의 통제와 대학의 순응주의가 맞물려 한국의 대학들이 죽음을 맞았다는 자조가 만연해 있다. 교수들도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이나 ‘대학의 죽음’에 맞서는 교육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대신 자신의 밥그릇부터 챙기는 데 익숙해졌고 진정한 연구보다 보여주기식 실적 쌓기에 급급하다. 이번 이대 사태도 비단 평단사업에 대한 이견만이 아니라 프라임이나 코어 같은 사업에서 보여준 대학당국의 일방행정에 불만이 누적된 결과다. 이 두 사업은 대학의 구조개편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들과의 협의가 필수적임에도 많은 대학들에서 그렇듯이 이대 또한 재정수입을 앞세우며 정부정책에 맹종하는 한국 대학의 병폐를 그대로 답습했던 것이다.

 

앞으로 이대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요구대로 총장이 사퇴한다거나 아니면 학생들의 해산과 징계로 사태가 정리된다고 해서 끝나지 않을 문제가 제기된 점이다. 이대의 반납과 무관하게, 그리고 평생교육기관을 대학의 단과대학으로 만드는 발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평단사업 자체는 계속 추진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부가 재정지원사업을 통한 대학 통제의 관행을 중단하고 대학들을 획일화하여 줄 세우는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이같은 사태는 언제라도 되풀이될 것이다.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자 등록금으로 대학재정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대학의 주체임에도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소외되어왔다. 학생주체가 대학과 교수들의 순응주의를 뚫고 대학의 병폐를 본격적으로 문제 삼고 나섰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번 이대 사태의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 회장

2016.8.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