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박성우

박성우 / 시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안쪽. 깜장 치마에 깜장 양말 깜장 구두 신고 조문 온 앞줄의 여자아이가 운다. 엄마 아빠 손 잡고 운다. 사내아이의 거침없는 울음소리도 두어줄 뒤쪽에서 보태진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와 ‘합동분양소’ 사이에 쓰인 ‘정부’라는 글씨는 같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유독 커 보이는 건지. 그 커 보이는 글자는 어쩜 이리도 초라하고 공허해 보이는지. 한숨을 내쉬다가 눈가를 손등으로 슬며시 닦는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들이 휴지조각이나 손수건으로 짠 물기를 훔치고 있다. ‘세월호’와 ‘정부’와 각자의 ‘나’를 오가는 분노와 무기력과 환멸, 층층이 올려 진 영정사진을 올려다보는 것도 머리 숙여 조문을 하는 것도 염치없고 미안하다.

 

초췌한 얼굴이다. 눈에는 투명한 물방울이 아슬아슬 맺혀 있다. 가까스로 서 있는 유가족의 다리는 위태로워 보이나 손에는 호소문이 들려 있다. 섬세하게 떨리는 손이 조문객에 호소문을 내민다. 하고픈 말이 너무 많은 입은 차라리 마스크로 가렸다. 앙다문 입을 가린 흰 마스크가 흘러내리는 물을 빨아들인다.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린 물은 분명 피눈물이나, 핏기 없는 낯빛에서 나오는 물이기에 탁할 수조차 없다. “저희 아이를 보러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시작하는 호소문을 받아든 사람들은 슬프고 분한 표정을 감추며 글썽인다. 몇몇은 애써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본다. 조문객들은 몇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조문행렬은 점점 길어진다.

 

가만히 있던 그들은

 

나라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과 정부는 책임지고 재난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해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가. 유가족과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무기력한 대통령과 무능한 정부를 막연히 지켜봐야만 했다.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는 말을 굳이 청와대가 나서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걸 굳이 반복해서 강조하지 않아도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못 된다는 사실쯤은 인지하게 되었다.

 

“와 헬리콥터다.” 벽을 바닥 삼아 버티던 아이들은 구조헬기가 떴다는 것도, 해경이 배를 타고 사고현장에 도착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속보가 떴다는 사실까지도 직시하고 있었다. 허나, 구조될 거라 굳게 믿고, 가만히 있던 그들은 목숨을 잃었다. 하다못해 동네 개울에 빠진 아이도 누군가 나서서 구해야 살려낼 수 있는 법이거늘, 나라는 국민을 기만한 채 수수방관했다. 뭐 하나 제대로 손쓰지 못했다. 일분일초가 시급한 상황에서 회의하고 우왕좌왕 보고하고 근엄한 얼굴을 카메라 앞에 내밀다가 귀한 목숨 다 내주었다. 실종자를 수색하던 민간 잠수사는 의료진이 현장에 배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몇번인가 시도하던 ‘충격 상쇄용 기사 아이템 개발’까지도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다.

 

대통령의 두번째 진도방문이 있었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실종된 세월호 희생자 구조를 위한 방문이 아니라 실종된 대통령의 지지율을 찾기 위해 진도를 방문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뢰는 이미 깨졌고 세월호 참사가 명백한 인재라는 것 외에는 아직까지 뭐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진 바도 없다. 정부는 유가족이나 국민의 안위보다는 대통령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태도다. 대통령의 안위를 걱정하려거든 제발 ‘티’ 나지 않게 마음으로만 하시라.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그 많던 국회위원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생명보다 귀한 게 무엇인가

 

“생명보다 귀한 게 무엇입니까.” 유족들은 합동분향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한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을 요구하는 서명에도 돌입했다. 정부는 실종자 한명 구해내지 못했고, 비탄에 빠진 국민들은 이름을 보태며 특검을 촉구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청소년들과 시민은 거리로 나왔다. 추모 촛불은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애도의 글을 적은 노란 리본은 묶을 곳이 없을 정도다. 다 큰 아이들이 무서워서 잠들 수 없다며 베개를 들고 엄마 아빠가 있는 방으로 온다고 한다. 충분히 살려낼 수 있었는데 죽게 내버려두고는 미안하다고 말하면 다인가? 하는 탄식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일선 학교 교사에 의하면 세월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 대신 병원으로 향한다 한다.

 

정부의 도움 없이 차려진 소도시의 분향소에 다시 들른다. 이팝나무 꽃이 고봉밥으로 퍼진 작은 우체국 앞에는 ‘희망 촛불’이 켜져 있다. 바닥에는 ‘302 기억할게’라는 글씨가 타오른다. 사망자와 실종자 302명을 잊지 않겠다는 뜻. 그러나 이 숫자조차도 또,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자식새끼가 겨우 밥 한끼 굶어도 억장이 무너지는 게 어미의 마음이거늘 불시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 팽목항에는 평소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피자 치킨 과자 우유 음료 같은 것들이 놓여 있다. 우왕좌왕하다가 꽃피지도 못한 목숨을 죄 놓친 나라, 이건 나라도 아니다. 이게 정녕 나라라면 이 나라는 과연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유가족과 국민들이여, 일어서려면 끼니들 잘 챙기시라.

 

2014.5.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