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에 요구되는 ‘제2의 민주화운동’

김종철

김종철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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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국가에서 헌법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정당을 해산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상정치'(normal politics)를 벗어나 ‘비상정치'(emergency politics)의 상황에 있음을 암시한다. 한국의 민주화가 1987년 민주체제의 수립 이후 사반세기만에 비상정치의 상태로 회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동아시아 최고 민주시민의 자부심을 다져온 많은 한국민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실 통진당 해산을 위한 제소는 북방한계선 논쟁이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파동, 이석기 내란음모파동,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 박근혜정부 출범을 전후한 일련의 공안정국을 좌우이념논쟁으로 확대하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원,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이 관여한 광범위한 선거부정에 대한 국기문란 논란이 통진당의 위헌 여부에 대한 논의로 호도되면서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은 민주시민과 야당의 정부비판을 반체제로 겁박하는 유신독재의 망령을 부활시키고 있다.

 

정당해산제도가 오남용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헌법의 최고가치는 자유민주주의이고, 자유민주주의는 독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상이나 정치적 견해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당해산제도는 다원적 민주주의 정신에 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독재를 위해 악용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매우 높은 ‘양날의 칼’과 같다. 이같은 오남용 위험성은 정당해산이 통상의 헌정제도가 효과적으로 지속될 수 없는 비상한 사태에 아주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최후적·보충적으로 행사되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 일명 ‘베니스위원회’가 2000년에 21세기 민주국가의 정당해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당해산에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는 실제적 위험성, 폭력적 수단에의 의존성, 정당 자체의 조직적 관여여부(구성원이나 일부조직의 돌출행위의 불충분성), 과잉금지원칙 준수 등이 필요하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에도 관용의 원칙에 따라 최대한 자제하여 행사되어야 한다.

 

관용의 원칙은 다원적 민주체제에서 국가는 오류 가능성이 없는 절대정당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권력오용의 위험을 가진다는 전제에서 도출된다. 이 원칙은 설사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하는 의혹이 있더라도 헌정질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치적 소수파의 존립을 관용함으로써 다원적 민주주의가 전제하는 가치의 상대주의와 정치적 다양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의 관용은 헌법수호 의무를 방기하고 반체제를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권력의 오류성을 극복하는 더 강력한 정당성를 확보하기 위해 잠재적 위험을 가진 정치세력을 잠정적으로 포용하는 것이다.

 

이런 기준과 조건을 고려할 때, 민주적 기본질서를 구성하는 구체적 요소들에 일부 위해가 되는 행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 다원적 정치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위헌으로 판명되는 정치행위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다반사이다. 이러한 일상적 일탈은 통상의 헌정제도를 통해 교정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추수를 방해하는 참새를 잡자고 대포를 쏘아서는 안된다. 예컨대,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정당해산요건이 충족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동안 차떼기사건, 북풍사건 등 정보기관을 오용한 선거부정 시도가 없지 않았으나 관련 정당을 위헌정당으로 제소되지 않았다는 세간의 지적은 이런 취지에서 일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훼손된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길은

 

이번 통진당 해산제소는 설사 해산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장기화될 여지가 많은 헌재의 심리종결까지 정국을 종북논쟁 구도로 끌고 갈 수 있다는 박근혜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에 하나 헌재의 해산결정이 있다면 그들로서는 더이상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박근혜정부를 장악한 공안파적 시각으로는 정치적 꽃놀이패일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계산과는 달리 이번 제소의 헌법적 문제점이 지적되는 한편 그 정치적 저의가 선거부정 의혹의 은폐에 직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한다면 유신체제가 일거에 종말을 고했듯이 민주주의의 회복은 의외로 성큼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공안정국을 겪으면서 1987년체제로 상징되는 제1차 민주화운동이 결정적으로 간과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바로 정치가 소수 기득권자들에게 독과점될 수 있는 민주적 결핍을 제도화한 선거법과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을 제대로 개혁하지 않은 것이다. 국정원 댓글로 상징되는 선거부정은 경제사회적 기득권세력에 의한 정치독과점(그 반면으로서의 다원민주적 정치의 질식)체제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번 통진당 해산정국도 결국은 선거부정을 은폐하려는 정치적 공세의 일환이자 정치독과점에 기초한 유사독재체제의 산물이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바람직한 대응은 선거부정의 재발방지를 포함하여 다원민주적 정치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전면적 정치개혁, 제2의 민주화운동이어야 한다.

 

2013.11.1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