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논쟁과 한국의 과학교육

이상임

이상임 / 서울대학교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 전임연구원, 생물학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금 우리 과학계 전반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는 바로 교과서 진화론 논쟁이다. 2011년 12월 5일에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이하 교진추)가 교과부에 보낸 <2011학년도 고등학교용 과학교과서 개정 청원서>가 올 5월 16일 받아들여지면서 과학의 영역을 종교가 침범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진화론’과 ‘창조론’을 마치 상대되는 개념인 양 사용하는데, 진화론은 과학의 영역이고 창조론은 종교의 영역이다. 둘 다 ‘-론’으로 끝난다고 해서 둘이 비교가 되는 이론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학에서의 이론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지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창조론은 종교의 영역이므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범주가 다른 둘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독교가 과학의 영역을 침범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또 비단 우리나라만의 상황도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에서는 이미 캔자스와 펜실베이니아를 포함한 각 지역에서 기독교 단체들이 창조론에 대한 내용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청원을 냈고, 이와 유사한 사태가 유럽과 영국에서도 벌어졌다. 이를 감안하면 지금 우리의 진화론 논쟁은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고 볼 법도 하다.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어떻게 수습되느냐에 있다. 교진추가 교과부에 교과서 개정에 대한 청원서를 민원으로 냈을 때, 이 업무를 처리한 부서는 수학교육정책팀이다. 수학교육정책팀은 비단 수학뿐 아니라 과학 교육과정의 기본정책을 수립하는 업무를 담당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청원서에 대한 답변을 보면 수학교육정책팀이 한 일은 교과서 집필진의 답변을 받아서 전달한 것뿐이다.

 

고등학교 과학교과서는 정부가 내놓은 ‘집필기준’만 따르면 출판사가 임의로 집필할 수 있고, 수정이나 보완 역시 출판사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교과부에서 출판사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인지는 조금 의심스럽다. 교과부에서 처리한 것을 보면 이 사안을 마치 구청에 횡단보도를 설치해달라는 민원과 유사하게 취급한 듯한 느낌이 든다. 교육은 백년의 큰 계획이다. 어떻게 교과서에 적힌 내용을 수정하는 일이 횡단보도 설치를 결정하는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같은 교과부의 뒤처리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나라 과학계에 아주 깊게 자리잡고 있는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바로 돈 안되는 기초학문에 대한 경시풍조다. 뭔가 상품으로, 의학으로, 인간생활에 이용될 수 있는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면 의의가 없는 연구로 취급받기 일쑤다. 한국연구재단의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0년에 기초연구사업에서 생명과학 분야가 전체 연구비 중 가장 많은 18.5%의 연구비를 지원받았을 만큼 생명과학은 국가의 ‘사랑’을 듬뿍 받는 분야다. 그런데 이중 거의 전부가 분자생물학, 의학 등 응용 분야이고, 생물학 중에서도 가장 기초학문에 해당하는 분류학, 생태학, 진화생물학 분야는 연구비를 받은 경우가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이 세 학문은 비록 인간생활에 응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생물학을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다.

 

균형있는 과학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

 

그런데 오늘날 연구비 측면에서뿐 아니라 점점 더 많은 대학에서 분류학, 생태학, 진화생물학 강의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는 대학교육을 받고 난 전문가라도 이러한 근간 생물학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굉장히 낮을 수밖에 없게 된다. 최근 교과서 개정 논의와 관련해 한 생물학 관련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읽다보면 진화생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심지어는 학계에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화생물학은 분류학, 생태학, 유전학 등의 분야가 합해진 통합적인 성격을 지닌 학문이라 학부과정 중 한학기만 들어서는, 책 한두권만 읽어서는 제대로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대학에서 진화생물학을 배우기도 하고 가르쳐본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진화생물학은 교과서에만 근거해서 강의를 진행하면 학생들의 이해도가 굉장히 낮다. 영상물이나 씨뮬레이션을 활용하고 질문과 대답을 통해 개념을 습득하는 과정이 진화생물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대학교육은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대학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전문가가 양성될 리 없다. 진화생물학의 중요성을 모르고 진화생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가’가 교진추의 청원서를 읽으면 이를 ‘빨리 처리해야하는 민원’이라고 취급하게 될 수 있고, 교과서 개정과 같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학술적으로 충분히 검토해보지 않고 오로지 교진추의 청원에만 근거해서 결정을 내리게 될 수 있지 않은가.

 

다행히 6월 20일 한국고생물학회와 한국진화학회에서 교진추의 청원서에 대한 공식 반박문을 발표했고, 이에 교과부는 교진추의 청원을 받아들였던 방침을 번복하고 학계 전문가의 의견을 다시 물어 반영키로 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과학계에 존재하는 학문적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과학교육이 균형있게 진행될 리 없고 그런 상황 하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2012.6.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