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사건으로 보는 시민운동사』

정현곤

시민운동, 다시 정치 상실의 시대와 마주하다
-차병직 『사건으로 보는 시민운동사』, 창비 2014

 

 

sagun‘이것이 나라인가?’ 권력감시를 주된 미션으로 일해온 시민단체에 이것만큼 치명적인 질문이 있을까? 세월호참사의 무게감은 그만큼 컸다. 2014년에 한국사회는 부도덕한 기업이 활개치고 국가는 무책임했으며 언론은 정도를 잃었다. 게다가 야당은 무능했다. 304명의 죄 없는 죽음은 이런 사회의 희생자다. 시민단체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오늘의 이 참담한 현실이 시민운동사의 가장 근접한 역사라면 도대체 시민운동은 어떤 공덕을 쌓았다고 기록해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 차병직은 “세상은 바뀌었는가?”를 묻는다. 그는 상전벽해와 같이 변했다 하더라도 되풀이되는 산적한 과제를 보노라면 바뀐 것은 달력뿐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8면). 그러나 우리는 그가 ‘시인처럼 사색하고 소설가처럼 인내하면서’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세상을 제대로 바꿀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가슴들을 얘기하고 있음을 안다. 1인시위를 상상했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발견했으며 인사청문회를 강제한 그들 시민의 얘기를 통해 현실을 넘어갈 상상력과 의지를 얻고자 한다.

 

시민의 권리가 곧 권력감시의 무기

 

이 책은 시민운동사에 올린 참여연대 20년의 주요 장면을 다룬다. 책이 기록하는 사건들은 두개의 맥락을 가진다. 권력감시와 권리의식이 그것이다. 천안함사건에 대한 합리적 의심의 제기나 이라크 파병 반대, 낙천·낙선운동의 경우라면 권력의 반발이나 탄압이 예상되어 상당한 긴장감이 요구된다. 이럴 때는 시민단체가 먼저 온전히 그 하중을 견뎌야 한다. 반면에 시민의 참여를 통해 찾아가는 권리운동에서는 처음부터 시민이 함께하기에 뭔가 다르다. ‘봄이 주총(주주총회)의 계절’이었던 시절에 시민들이, “돈으로 떵떵거리던 기업이 시민 감시꾼들에게 혼쭐이 나는 계절”(53면)을 만끽했다는 표현에서 약간은 흥겨운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권리가 권력감시를 위한 무기가 되는 지점에서 이 둘의 관계가 돌처럼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그 예는 정보공개운동과 천안함사건이 만난 지점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참여연대가 천안함사건을 둘러싸고 국방부와의 싸움에서 사용한 권리는 정보공개청구권이었다. 사건 직후인 3월 31일과 조사결과 발표 후인 5월 31일 두차례에 걸쳐 공개청구로 국방부를 압박했다. 국방부가 뭔가를 숨기며 거짓을 말했기에 정보공개청구는 실질적인 압박이 되었다. 서해상에서 남북 군사충돌이 빈번하던 그 시기에 북한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국가의 손끝을 부여잡는 일, 그 엄청난 용기의 바탕은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시민의 작은 권리였던 셈이다.

 

한편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2000년 낙천·낙선운동의 경우는 현재를 읽는 데 유효하다. 그때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정면승부”(89면)라는 시대규정이 나왔고, 부패, 반인권의 지표가 ‘시민 대 정치’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결국 대상자 중 47%가 실제 낙천했다. 정치의 의미가 국가경영이라 본다면 2000년의 이 운동은 1987년 민주항쟁의 주역인 시민들이 다음 과제로 선택한 새로운 미션임을 알 수 있다. 폭력의 도구로서의 국가 이후 다시 국가를 위치 짓는 시민의 행위였던 것이다.

 

정치의 상실 속에서 시민운동의 방향은?

 

2011년 10월 우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다시 ‘시민 대 정치’의 구도가 재현됨을 보았다. 그때 박원순은 ‘시민후보’였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컸던지 안철수라는 정치신인이 모든 정당의 지지를 능가하는 성원을 받고 있었다. 당시 박원순과 안철수는 연합하여 승리했다. 어찌된 역사였을까?

 

여기에는 상식과 교양, 염치조차 없는 MB정부가 1차적 요인이었다. 국가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대통령을 제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때는 부패보다 무능이 문제였다. 당시 상황은 민주화운동 시기의 ‘시민 대 국가’ 구도는 아니었다. 집회와 시위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전민항쟁의 시대가 아니었다. ‘시민 대 정치’이되 형편없는 국가 문제가 중심이었기에 대안이 필요한 시대였다.

 

그때 정당 영역이 먼저 무너져내렸다. 진보정당은 2012년에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분열에 더해 반도덕성으로 더이상 미래가 될 수 없었다. 2000년 낙천·낙선운동이후 정치 활성화에 힘입어 원내에 진출했지만 끝내 시민과의 소통을 이루지 못했다. 민주당은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엄청난 갈망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렴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정치의 상실이었다.

 

2014년에 시민은 다시 국가와 맞서 있는 듯하다. 정치 상실의 시대를 무엇으로 넘을 것인가? 2000년의 낙천·낙선운동 이후 14년이 보여주는 그대로 ‘시민 대 정치’의 구도 안에서 잡초처럼 자라나는 이 퇴행적 구조부터 해명해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완결적 의미로 지난 20년을 그린 책이 아니다. 그것은 참여연대가 올해 9월로 20년을 쌓은 후 이제 겨우 청년이라 말하며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매는 의미와 같다. 그렇다면 오늘의 의미는 뭔가? “진취성을 잃지 않는 합리적인 사회의 마음”(8면), 곧 시민운동의 존재 그 자체다.

 

 

정현곤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2014.10.2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