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해외의 선진 공영방송이 시사하는 점

김진웅

김진웅 / 선문대 교수, 언론인권쎈터 정책위원장

흔히 언론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와 더불어 ‘제4부’라고 한다. 특히 공영방송은 여론형성의 중추적 기관으로서 그 존립이 법적으로 보장된 ‘사회적 제도’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KBS사태, 〈PD수첩〉 사건 등 최근 공영방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상은 이를 무색하게 한다. 비록 군부정권의 시녀로 태어났으나 30여년간 모진 풍파를 견뎌내고 국민의 방송으로 진화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것이 진정 착각이었던 것일까. 기존의 공영방송의 이념이나 씨스템이 너무 허약했던 것은 아닐까.

일반적으로 공영방송은 공익성을 지향한다고 한다. 공익성은 공영방송 외에도 모든 방송, 신문에 부여된 의무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익성=공영방송’의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양자의 관계는 밀접하다. 그리고 공익성은 통치권력과 상업성 두가지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정권의 이익을 대변할 경우, 이는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제4부’로서의 권한을 포기하고 행정부에 편입되어 시녀로 기능하는 것을 뜻한다. 여론형성의 공론장이 아닌 ‘여론조성’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준높은 공영방송은 정치권력의 영향력을 뿌리치는 것은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정부에 비판적 여론의 각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공익성의 핵심, 독립성과 非상업성

지난 2003년, 이라크전쟁을 옹호하는 블레어정부를 비판하는 보도로 BBC는 영국의 ‘국익’은 물론, 나아가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BBC는 자국민뿐 아니라 세계인들로부터 더욱 신뢰받는 방송으로 명성을 높였다. 또 독일 공영방송 ARD의 시사보도프로그램(Monitor)은 매번 정부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장면들을 방영하곤 한다. 심지어 연방총리의 모습을 코믹한 캐리커처로 만들어 풍자하는 영상들은 단골 메뉴에 속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국민적 시각에서는 통렬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집권당 측에는 심히 불쾌한 감정을 솟구치게 함은 물론이다. 예산을 삭감한다느니,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토록 압력을 행사했다느니, 민영화 한다느니 등의 논란이 해외의 공영방송에서도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정부비판적 논조와 연관이 깊다.

공익성의 두번째 의미이자 조건은 반(反)상업성이다. 이는 주로 사적 소유․운영 금지, 상업광고 금지를 통해서 구현되기 때문에 BBC, ARD, NHK 등은 이러한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다. 어느 독일 비평가가 얘기했듯이, 방송은 빵을 준 자를 위해 연주하는 법이다. 따라서 자본(가)의 이해관철을 차단하는 것은 이들의 빵을 받아 먹지 않는 것이다.

기실 독립성, 비상업성은 소수 특권집단의 권한이 공영방송을 통해 투영되는 현상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공익성은 다양성 또는 소수자 권익 보호라는 이념으로 이어진다. 대통령, 방송종사자, 남녀노소, 빈부귀천, 강자와 약자 등 누구나 동등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또 써비스를 받을 수 있는 평등권적 자유권을 구현코자 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목표이다.

공영방송은 정치권력의 펀치에 맞서야

외형상 우리나라 공영방송도 이러한 지향목표나 제도적 장치 등을 오래전부터 갖추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KBS이사회, 시청자위원회 등이 공적 통제기구로, 그리고 다양한 공적 써비스 원칙들이 방송법을 비롯한 법률로 명시되어 있다. 이를 보면 선진국 공영방송보다 뒤떨어질 것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번에 절실하게 느꼈듯이,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청와대의 강펀치 한방에 허물어지는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 공영방송치고 정치권력의 펀치를 맞지 않으며 존립하는 경우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온갖 압력에도 흔들림이 없는 강건하고 맷집있는 체력을 견지하고 있는 외국 사례와,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 경우가 차이날 뿐이다.

진정한 공영방송의 구축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한마디로 공익적 에너지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한 사람의 초인적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다수의 힘이 결집된 집체성(集體性)에서 발산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구현된다는 것은 다양한 공적 통제기구에 진정한 국민의 대표가 참여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리하여 이들과 국민들의 의사가 상호 교감을 형성해야 한다. 예컨대 〈PD수첩〉 징계를 결정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결정이나, KBS 사장 해임을 결의한 KBS이사회의 결정이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의 공적 통제는 위장된 거짓행위이고, 허위적인 것이다.

따라서 독일 공영방송은 80여명에 이르는 사회 각계각층의 대표자로 ‘방송위원회’를 구성하는가 하면(의회모델), 영국은 10명의 다양한 인사로 ‘BBC트러스트(최고 규제감독기구)’를 구성토록 하고 있다(엘리뜨모델). 독일 방송위원회는 정치·경제·종교·사회·문화·노조 등 가능한 한 다양한 단체가 직접 파견한 대표자들이 모여 방송에 관한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즉 사장 선임에서 프로그램 편성정책까지 결정하는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정부의 영향력 행사가 불가능하다. 또 방송위원회는 각 주 단위의 공영방송사 단위로 구성되어 있어서 소외계층 없이 고르게 다양한 써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영국 BBC는 공익성을 가장 중시하여 BBC트러스트가 공식적으로 ‘공익의 수호자'(guardian of public interest)임을 명기하고 있고, 이에 걸맞게 각 지역대표 및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로 구성하여 공익을 구현토록 하고 있다. 관습법적 전통이 강하여 비록 여왕이 트러스트위원을 임명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사장 선출을 비롯한 규제감독권한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행사한다. 또 위원 중 네명은 각 지역단위로 구성되어 있는 시청자위원회 대표를 겸하도록 하여 시청자의 의사가 투영되는 소통씨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명심할 것은 이러한 통제기구는 물론 공영방송의 사장, 기자, PD 등은 우리의 대리인이요, 변호인이라는 사실이다. 소유구조(공적 소유), 운영방식(공적 지배기구), 운영재원(수신료)이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구현되는 현실이 아니고 설계도일 뿐이다. 외국의 저명한 공영방송은 설계도대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공영방송의 진정한 민주화를 희망한다

공영방송의 관건은 시민들이 방송을 자신과 감각적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이는 단순히 수동적인 상태의 공적 써비스를 받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시청자위원회 구성, 수신료 사용권한 등을 국민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가시적 차원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에 집중된 이러한 권한을 각 지역으로 이양하는 지역분권화가 시급하다. 특히 전국민의 수신료를 거두어 서울 본사에 바치는 ‘현대판 조공체제’를 더이상 지속해서는 안된다. 독일처럼 각 지역별로 수신료를 배분하는 방안도 공영방송의 발전을 위해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내적 변화 없이는 ‘청와대―KBS사장’ 핫라인의 위력은 지속될 것이다. 다음, 또 그다음 정권에서도…… 업(業)을 끊고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나라 공영방송에 절실하다. 영국 BBC가 존경의 대상인 것은 사장이 어느 지배정권의 후광하에 선출되었든 관계없이, 일단 취임하면 정치적으로 독립하여 시청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내적 변화나 민주화가 이 수준까지 승화될 그날은 언제일까.

2008.9.3 ⓒ 김진웅

* 〈창비주간논평〉에서는 이명박정부의 언론통제와 방송장악 시도를 계기로 촉발된 공영방송에 대한 논의를 네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앞서 정연주 KBS 사장 해임사태를 다룬 강형철 교수의 〈KBS사태에 중립지대는 없다〉가 게재되었으며, 앞으로 우리 언론현실에서 공영방송이 맡아온 역할과 지향점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공영방송이 공기(公器)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칼럼을 실을 예정입니다. ―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