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회담 그 이후

손열

손열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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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일본 프로축구 J리그에서 사상 첫 무관중 경기가 실시되었다. 앞선 8일 우라와(浦和) 레즈 써포터가 사간 도스(鳥栖)와의 경기에서 내건 인종차별적 현수막 때문이었다. 이틀 후 미국 주도로 열린 헤이그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일본과 미국은 중국이란 시끄러운 관객 없이 경기를 치르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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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오꾜오신문의 저명한 만화가 사또오 마사아끼(佐藤正明)의 그림(좌측, 京都新聞 2014.3.25)에서 보듯이 태극기를 든 시 진핑(習近平) 주석은 위안부 소녀와 안중근 의사를 동반하고 한국을 응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만나기 싫은데 등 떠밀려 회의에 나간 만큼이나 난처한 순간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 일변도 외교를 넘어 미·중 두 초강대국과 함께 잘 지내는 균형외교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역을 치르는 현실을 맞았다. 미국이 원하는 한일관계 개선 사안은 동북아의 복잡한 국제정치 구도 속에 자리하고 있다.

 

도전받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e)이란 슬로건 하에서 이 지역에 점증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거대한 시장으로 등장하고 있는 경제권에 깊이 관여하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는 또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란 골치 아픈 지역으로부터 커다란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는 지역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중국이 태평양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는 국내 중국위협론에 적극 대응하는 측면과 함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수출을 배가하고 고용을 획기적으로 창출하겠다는 경제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은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중국의 두자릿수 군비증강률에 대응하여 예산압박 속에서 축소(retrenchment)정책을 추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동 등에서 전개해온 군사력의 상당부분을 동아시아로 집중시키고 있다. 중국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밀어내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는 판단하에 군사적 균형을 취하는 한편 동맹국과 군사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2011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아시아 개입의 6대 행동원칙으로서 동맹관계의 강화, 중국을 포함한 신흥대국 관계의 심화, 지역다자기구에의 적극참여, 무역과 투자의 확대, 광역의 군사배치, 민주주의와 인권의 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특히 동맹강화는 첫손에 꼽히는 원칙이다. 이런 점에서 한일관계 악화는 미국의 재균형전략의 첫번째 원칙을 훼손하는 사안이다. 두 핵심 동맹국이 서로 반목하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이다.

 

동아시아의 독특한 국제질서

 

여기서 미국의 고민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독특성에서 나온다. 동아시아는 세력배분 구조 변화에 따른 국가간 근대적 경쟁과 갈등을 겪는 동시에, 근대 이행기 일본의 식민지 제국주의 굴절을 겪으면서 역사인식을 둘러싼 정체성의 갈등을 겪고 있다. 이 두 층위가 복합되면서 경제적 협력이 전략적 경쟁에 의해 저해되고, 나아가 역사인식의 차이에 따라 갈등이 증폭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역사문제, 그리고 역사문제화한 영토문제로 중일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미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2010년 여름 센까꾸(尖角) 해역에서의 충돌을 시작으로 갈등이 증폭되면서 군사적 대치 형국까지 연출하는 위험한 상황에 이르자, 미국 당국자는 중일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전망하면서도 해양의 평화 유지를 위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은 ‘강한 일본’이 자국의 영향력 공백을 적절히 메워주기를 바라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켜 미중간 협력적 관계, 이른바 신형대국관계와 양립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끌고 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미국의 개입수단은 여의치 않다. 명시적으로 일본편을 들 경우 중국과의 신형대국관계가 훼손될 것이고, 엄정한 중립을 지킬 경우 일본의 독자적 군사대국화란 위험을 안게 될 수 있다. 오랫동안 패권국으로서 행사해온 힘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일관계 복원에 대해서도 미국의 영향력은 보기보다 신통치 않다. 미국은 역사문제로 말미암아 ‘한·중 대 일본’이라는 대립구도가 형성되는 상황을 우려하여 양국관계 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역사문제 대립을 한국이 생각하듯이 아베정권 등장 이래 일본의 우경화에 따른 결과로 보기보다는 ‘민족주의 대 민족주의’의 구도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정보보호협정(GSOMIA) 승인 불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천황 비판을 거쳐 우파적 아베정부의 출범으로 심화되었다는 인식을 배경으로, 전략적 관점에서 아베정부가 적당한 조치를 취하면 한국정부도 화해의 길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은연중 비판해왔다.

 

지역다자외교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작년 12월 아베총리의 야스꾸니 신사 참배로 인해 한일관계 악화의 책임이 한국보다 일본에 더 크다는 인식이 미국 내에서 확산되고 따라서 일본을 압박하리라는 한국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은 양국 모두에게 강력히 관계개선을 요구해왔다. 양국은 4월 오바마 대통령 방문을 무기로 한 미국의 압력에 밀려 한·미·일 3자회담을 받아들였으나 내심은 달랐다. 일본은 정부 내 강한 한국 불신감, 그리고 아베총리의 야스꾸니 방문에 ‘실망’했다는 미국의 발언에 오히려 ‘실망’했다고 응수하는 우익적 분위기가 여전하고, 한국 역시 지난 2월 13일 한국을 방문한 케리 국무장관의 ‘한일 양국은 역사문제를 뒤로 미루고 한반도 비핵화 등을 다루자’는 제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반복적으로 비난한 것처럼 일본에 대한 불신이 조금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분명 중국에 유리하다. 중국은 역사문제의 전략적 유용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번 헤이그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한·미·일 회담에 앞서 한중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한일관계에 쐐기를 박고자 했다. 이는 역사문제를 고리로 한 ‘한·중 대 일본’ 구도로 일본 및 미국의 전략을 흔들고자 하는 것으로 한국에 묘한 전략적 딜레마를 가져다주고 있다.

 

미·중 양국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온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이 밉지만 중국의 한국 편들기도 미국의 눈치가 보여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일간, 한일간 갈등을 완화시키고 지역의 안정을 유지할 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한편으로 미국과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중·일 모두를 함께 엮어야 난처한 상황을 돌파하여 공생의 길을 갈 수 있다. 한국은 중견국으로서 한·중·일 협력이나 동아시아 협력과 같은 지역다자제도를 건축하는 데 상상력을 발휘하고, 강대국간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여 이들을 모이게 하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이러한 동북아 국제정치 속에서 조심스럽게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은 한국에 지역다자외교 전략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4.4.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