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길에 위화가 보여주는 것들

이욱연

이욱연 | 서강대 교수, 중국현대문학

세계 출판시장에서 중국작가 위화(余華)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중국에서 160만부가 팔린 그의 신작 《형제》(전2권)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23개국에서 올해 하반기와 내년 초에 줄줄이 출판될 예정이다. 세계 출판계는 왜 위화에 주목하는가? 작가 자신은 지난 5월 28일과 30일 열린 연세대와 서강대 강연에서 이렇게 풀이했다. 자신이 시대를 잘 만난 덕이라고, 중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특히 내년 뻬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서 그 특수 때문에 자신의 소설이 세계적으로 잘 팔리고 있다고 했다. 겸손이랄 수도 있지만 일리도 있다. 중국문학 전반에 대해서 예전보다 관심이 높아졌고, 중국 밖의 사람들이 중국을 들여다보는 창으로 위화의 소설을 읽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실 위화의 소설, 특히 장편소설은 한결같이 중국현대사가 배경이다. 《허삼관 매혈기》는 마오쩌둥 시대가 배경이고, 신작 《형제》는 상권이 문화대혁명 시기를, 하권이 개혁개방 시대와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를 다루고 있다. 위화는 종종 마오 시대와 개혁개방 이후의 두 시기를 각각 ‘수녀의 시대’와 ‘창녀의 시대’라고 정의하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두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컨대 위화 작품의 세계적 특수는 중국 밖에 있는 사람들이 중국을 더없이 효과적으로, 그것도 재미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창문 역할을 하는 것과 맞물려 있고, 위화 스스로도 그것을 의식하면서 창작하기도 한다.
  

독특한 서사전략과 개성적 인물 제시가 관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위화가 세계인들에게 중국과 중국인을 보여주되 자기만의 고유한 서사를 통해 개성있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세계문학에서 위화의 문학적 개성은 단연 그의 독특한 서사에 있다. 위화는 세계와 사람을 표현하는 자기만의 고유한 서사방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위화는 초기에는 형식실험을 추구하는 단편을 썼다. 그런데 요즘에는 장편만 쓴다. 그는 단편과 장편은 전혀 다른 별개의 장르라고 말한다. 장편을 쓴 뒤로 그는 자신이 독재자에서 민주주의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단편을 쓸 때는 소설 속 인물들을 지배하였지만 장편을 쓰면서는 인물이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변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의 인물들은 스스로 말하고, 작가는 그것을 중계하고, 독자는 그 중계방송을 듣는다. 그의 소설을 읽는 우리는 독자인 동시에 청자이다. 작가는 흡사 저 옛날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기이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늘어놓던 설서인(說書人) 같다.

그의 소설은 이야기, 특히 사람 이야기이다. 그의 소설은 범박하게 말하면 이른바 ‘전'(傳)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푸꾸이전(富貴傳)이고 《허삼관 매혈기》가 허삼관전(許三觀傳)이라면 신작 《형제》는 리꽝터우전(李光頭傳)과 같다. 위화는 오로지 그의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이 세 사람을 창조했다. 이들 주인공은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삶에 대한 낙관과 웃음을 잃지 않는다. 숱한 역사적 고난과 굴욕 속에서 피를 열세번이나 뽑으면서도 삶을 포기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세상의 모순을 추궁하면서 그것과 대결하지 않는다.

순응적 운명론과 낭만적 현실관의 한계

그의 소설을 중국과 한국의 독자들은 매우 친숙하게 받아들인 반면 서구 독자들이 낯설고 불편하게 여겼던 것은 인물들의 이런 특징 때문이다. 위화 소설의 인물들은 근대인들, 근대소설 속의 인물들이 아니다. 세계의 숨은 진리를 찾기 위해, 혹은 세계와 대결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문제적 개인들이 아닌 것이다. 물론 이는 위화 소설의 독보적 장점과 가능성이지만 치명적 약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에서 인물들이 정치적 원인으로 초래된 재난을 운명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이거나 현실을 과도하게 낭만적으로 대하여 결국 정치성이 약화되는 것 등은 서사 자체에서 유래하는 약점이자 한계이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과 한계까지 포함하여 창조된 인물들이 진짜 중국인이고 그의 소설에만 나오는 독특한 인간형이라는 것을 인정받으면서 위화 문학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아큐가 루쉰(魯迅)의 소설에만 있듯이, 위화의 인물들은 그의 소설에만 있는 중국인임을 세계문학이 인정한 것이다.

동아시아 전통서사의 재발굴로 창조적 장편시대를

위화가 이처럼 자기만의 서사세계를 구축하는 데 토대가 된 것은 현실의 모순 앞에서 작가 스스로 기꺼이 사회적 책임을 자임하는 태도, 그리고 동서양 서사전통에 대한 폭넓은 학습과 체화라고 할 수 있다. 위화는 카프카, 가르시아 마르께스, 보르헤스, 포크너 등을 거치면서 《산해경》과 《수신기》 등의 중국 전통서사, 넓게는 동아시아 전통서사를 재발견했다. 서구의 서사를 통과하면서 동아시아 전통서사로의 창조적 귀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 역사와 현실에 대한 부단한 관심이 서양 현대와 중국 고전을 통합한 서사와 결합하면서 탄생한 위화의 문학세계는 결국 세계문학의 숲에 우뚝 섰다.

최근 우리 문단에 ‘장편소설 대망론’이 한창이다. 한국문학이 침체를 깨기 위해서는, 또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장편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우리 장편소설이 세계로 나아갈 때 과연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20세기의 모더니즘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 같은 이미 고전이 된 서사로는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라는 이중의 과제가 중첩된 복잡한 한반도의 현실을 감당할 수 없으며 세계문학에서 한국문학의 개성을 확보하기에도 역부족이 아니겠는가? 만일 그러하다면 한국 장편서사의 선택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지에 대해 한국문학의 길 한켠에 놓인 위화의 서사가 나름대로 하나의 참고가 되지 않을까?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망라하여서!

2007.6.5 ⓒ 이욱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