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앞날이 걱정되는 이유

이동걸

이동걸 / 한림대 교수, 전 한국금융연구원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중앙은행은 법적으로 독립성이 보장돼 있고 중립성·자율성·자주성이라는 개념으로 특징지어져 있다 (…) 이것은 훼손될 수 없는 중앙은행의 가치이고 이를 지키지 못하고서는 결코 우리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정확하고 또 지당하신 말씀이다. 김중수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식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총재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나한테는 왜 그렇게 공허하게 들릴까. 아마도 바로 며칠 전 그가 내정자 시절에 내뱉은 속내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국은행도 정부다.” “한국은행이 정치적으로 독립한다는 것은 맞지만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 “통화정책을 포함한 모든 경제정책의 최종 결정은 대통령의 몫이다.” 일부 언론이 전한 그의 과거 발언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서약이라고 비판받았다. 또한 중앙은행의 위상과 금융통화위원회의 역할을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지적도 들었다.

신임 총재의 헛갈리는 ‘한은 독립’ 발언
 
맞다. 한국은행도 넓은 의미에서는 정부의 일부다. 그러나 국회와 법원이 넓은 의미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일부를 구성하면서 좁은 의미의 정부, 즉 행정부와 3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듯이, 한국은행도 경제정책 수행에 있어서 정부와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자주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누가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되느냐를 두고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독립성과 자주성을 잃고, 한국은행 총재가 대통령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하여 ‘통화신용정책부 장관’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도 뻔하다. 통화신용정책이 중립성을 잃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물가안정 기조가 흔들리면서 국민의 안정적인 삶이 위협받을 것이다. 투기가 재연되어 건전한 기업투자도 저해되는 등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기반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나라에서나 행정부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중앙은행과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중앙은행은 독립적으로 자율성을 갖고 장기적인 경제안정 유지를 책임져야 한다. 이는 비단 특정 국가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정부의 한국은행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항상 문제가 되어왔는데, 여기에 덧붙여 이명박정부의 경우 단기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경향이 특히 강하고, 70년대식 한국은행 장악 미련 또한 매우 집요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많은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재경부차관을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시키는 전례가 없는 일을 무모하게 감행할 정도이다.

대운하 추진, 4대강사업, 감세 등에서 보았듯이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한 몰아치기식 정책 집행, 747에 대한 끝없는 미련과 선거를 의식한 무리한 경기부양 따위를 볼 때 이명박정부가 한국은행을 장악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MB의 성과주의, 한국은행마저 덮칠까

지난 4월 9일 김중수 총재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렸다.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14개월 연속 연 2%로 동결하는 결정을 내렸다. “소비가 가계소득의 증가와 심리개선에 힘입어서 조금 회복되고 있고 설비투자는 수출호조에 따른 생산확대의 영향으로 비교적 큰 폭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면서도 “민간 자생력이 회복될 때까지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기획재정부는 그 이틀 전인 4월 7일 소위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1/4분기 성장률 7% 안팎 전망’ ‘3월 취업자 30만명 증가 예상’ ‘3월 수출 35.1% 증가’ ‘1월 산업생산 36.9% 급증’ 등 온통 장밋빛 수치를 내놓으면서 “우리 경제지표가 크게 개선되는 등 전체적인 회복기반이 강화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은행도 이런 흐름에 맞춰 12일 우리 경제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0.6%포인트 상향하여 4년 만의 최고수준인 5.2%로 조정했다. 내년에는 세계경제의 회복세 영향으로 4.8%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작년 12월과 비교할 때 세계경제 회복이 더욱 뚜렷해지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교역 신장세도 확대될 전망”이라고 보고 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루는 우리 경제가 잘나간다고 자랑하기에 바쁘고, 다음날은 불안하니까 저금리 기조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하고, 또 그 다음날에는 회복세가 뚜렷해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위기 이전 수준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하니 도대체 이 정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김중수 총재가 이끄는 한국은행의 앞날도 예측이 되지 않는다.

갈피 못 잡는 경제전망과 금리정책

김총재도 경제학자 출신이니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에는 정확한 상황인식에서부터 정책의 실행, 정책 효과의 발생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시차가 있다는 것을 알 터이다. 그러니 정책집행의 타이밍을 놓치면 그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그동안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조만간 폭발하기 시작하면 우리 경제의 안정기조가 흔들릴 것이고, 한번 안정기조가 흔들리면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 터이다.

2/4분기부터는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2/4분기 후반부터 수요 과잉과 비용 인상이 혼합된 복합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유가와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이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현 시점을 인플레이션이 막 시작하는 단계로 봐야 한다는 시장의 의견에 점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통령의 심부름꾼인가 국민의 심부름꾼인가

김총재는 대통령의 심부름꾼이 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심부름꾼이 될 것인지 마음을 정해야 한다.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정치인이다. 선거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대통령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써서라도 계속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생활의 안정과 우리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서서히 출구전략을 가동시킬 것인지 정해야 한다.

김총재는 취임사에서 “한국은행이 권위를 쌓아 외부에서 한은의 말을 귀 기울이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 방법은 알고 있을 터이다. 기대해봐도 될까?

2010.4.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