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와 진보적 자유주의

최태욱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최근 미국정부가 공식적으로 한미FTA 수정 문제를 제기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야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이참에 우리야말로 재협상에 적극 나서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7년 6월에 타결된 FTA 협상에서 우리보다 훨씬 유리한 내용을 챙겨간 미국측이 추가적으로 더 큰 이득을 가져가기 위해 자동차 분야 등에서 재협상 요구를 해왔다면 그걸 기회삼아 우리도 다른 분야에서 우리측의 불리함을 수정하자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재협상론을 대하면서 필자는 특히 다음 두가지 얘기를 하나씩 하고 싶어졌다. 하나는 FTA 같은 대외경제정책 추진과정에서 국내협상의 중요성이며, 다른 하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요즘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취할 입장에 대해서다.

 

국내협상 없는 국제협정의 부당성

 

사실 미국측의 도발이 아니었을지라도 한미FTA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결코 종결된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든 다시 크게 터질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닌 채 단지 수면 아래 잠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근본적으로 이 협정은 ‘민주성 결핍’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국가들 간의 국제협상은 (특히 그것이 대외경제정책의 영역에 속한 것일 경우) 사전에 당사국 내부의 국내협상을 거치고 그 국내협상의 결과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어야 비로소 그 효과가 안정적으로 담보될 수 있다.

 

정부간 협정이 공식적으로 체결됐다 할지라도 해당 협정문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국내비준을 얻어야 하는바, 국내비준이란 결국 국내협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국제협정의 내용이 국내협상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공감대를 벗어난 범위에서 (오직 정부간 수준에서만의 합의로) 타결됐을 경우 그 협정이 국내비준을 획득할 가능성은 대체로 그 벗어난 정도에 비례하여 낮아진다. 국회 또는 사회 일반 차원에서의 저항과 반발이 그만큼 클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미FTA는 (미국은 아니겠지만 한국에서는 분명히)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국내협상 과정 자체가 생략되거나 경시된 채 정부에 의해 거의 일방적으로 강행추진된 국제협상의 결과물이다. 급작스런 협상개시 발표 이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의 기간 내내 한국사회에서는 그 어떤 FTA 사례와도 비교가 되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문제제기와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끝까지 국내협상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국내협상을 이렇게 무시한 한미FTA가 국내비준 과정을 순탄하게 통과할 리는 어차피 만무했다. 그리고 민주주의 수호 차원에서라도 그리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러던 차에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맞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참에 재협상 혹은 재검토를 하자는 주장은 충분히 정당하다.

 

이 문제에 관한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이 궁금해지는 까닭은 ‘민주정부 10년’의 탄생이나 운영, 그리고 연장 노력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정치가의 상당수가 최근 진보적 자유주의 이념으로 스스로를 재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 중에서는 공식적으로 이 이념을 내걸고 있는 손학규 대표와 천정배 최고위원 외에도 김영춘, 이인영, 정동영 최고위원 등이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 원장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아예 당의 공식 이념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같이 지난 10년간 정권을 잡았던 자유주의 세력의 대표주자들이 이제 앞다퉈 진보적 자유주의로 자신의 진보성을 강화하고 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한미FTA 체결은 바로 민주정부 10년의 작품이 아니었던가. 진보적 자유주의로 거듭나겠다는 이들 민주정부 참여인사들은 과연 한미FTA 재협상론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마땅한 것일까?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념적 뿌리



진보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로 구성된 이념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만인평등사상에 의거하여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핵심 가치로 강조한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효과적인 정치참여가 법·제도적으로 보장돼야 시민 모두가 평등하게 각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이념이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기본 이념이기도 하므로 진보적 자유주의의 진수는 사회적 자유주의 사상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시장에서의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기조로 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정부 혹은 사회에 의한 시장 조정과 개입 필요성을 강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대다수인 사회경제적 약자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빈곤, 실업, 대자본가의 횡포, 공공재 부족 같은 시장의 실패인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시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필수라는 것이다. 결국 진보적 자유주의는 민주적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는 이념인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시장만능주의에 해당하는 ‘자유주의 우파’ 이념인 신자유주의에 정면 대립하는 ‘자유주의 좌파’ 이념인 것이다.

 

그런데 한미FTA는 매우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통합협정이다(졸고 〈대통합민주신당의 정체성 결핍〉, 《창비주간논평》 2008.1.22 참조). 게다가 상기한 바와 같이 심각한 민주성의 결핍 문제도 안고 있다. 한미FTA가 지금의 내용 그대로 발효된다면 한국의 사회경제는 ‘미국형’ 신자유주의체제로 전환돼갈 것이 거의 확실하다. 거기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사회적 시민으로서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우리 시민들이 그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하는 수 없다. 그러나 한미FTA는 민주적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체결된 오직 ‘정부만의 협정’이 아니던가.

 

한미FTA 재협상, 순리대로 풀면 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수호와 시장만능주의 거부를 통해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사회적 자유를 보장함을 핵심 목표로 삼아야 할 진보적 자유주의 정치가에게 지금의 한미FTA는 마땅히 재협상 혹은 재검토 대상이 되어야 할 협정일 뿐이다. 다행히 이인영, 정동영, 천정배 등 앞서 언급한 진보적 자유주의자 중의 상당수가 한미FTA 전면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는 이들도 여럿 있다. 혹시 여권에 속해 있다든가 하는 현실정치적 제약상황에 놓여서라면 거시적 시각에서 그러한 입장은 충분히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으로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혹시 한미FTA를 추진하고 체결한 민주정부의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이 일종의 심리적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면 거기서 과감히 벗어나라고 제언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한미FTA의 추진과 체결은 신자유주의의 위기로 판명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전의 일이다. 당시의 한국 정책결정권자들에겐 아직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고, 그러니 ‘잘나가는’ 것으로 보이는 미국경제가 마냥 부러워 보였을 것이며, 따라서 한미FTA를 통해 미국모델을 도입함으로써 써비스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자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결정이었다. 정책판단에는 실수가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 바뀌고 실수가 발견될 때 지체하지 말고 시정하는 일이다.

 

또한 당시의 집권당에 비해 지금의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은 이념적으로 보다 진보한 정당임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 민주당은 지난 10·3 전당대회에서 기존의 ‘중도개혁’ 노선을 삭제하고 ‘보편적 복지’를 강령에 포함시키는 등 자신의 진보적 성격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국민참여당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선명한 이념정당으로 발전해가려는 것은 앞선 언급한 대로이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 태어난 이 두 정당에 속한 정치가들은 마땅히 과거와 다른 보다 진보적 정책행위를 수행해가야 한다. 그것은 칭찬받을 일이지 비난받을 일이 전혀 아니다.

 

부디 진보적 자유를 꿈꾸는 이들답게 자신의 과거로부터도 자유롭기를 바란다. 한번 자유롭기로 작정하면 한미FTA 재협상 혹은 재검토 문제는 그저 민주주의 원칙에 의거하여 순리대로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이미 미국의 집권 민주당은 그 해법을 채택하고 있지 아니한가(졸고 〈한미FTA의 민주당식 해법〉, 《창비주간논평》 2008.6.18 참조).

2010.10.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