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여성에게 닥쳐올 재앙의 그림자

정주연

정주연 | 세계화반대여성연대 활동가

노무현정부는 한미FTA가 ‘여성을 위한 고용대책’이 되어 여성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이러한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1990년대 한국에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져온 빈곤과 차별의 현실에 철저히 눈감아버리는 것과 같다. 90년부터 서서히 시작되어 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본격화된 구조조정은 여성의 노동권을 더 값싼 임금의 ‘착취당할 권리’로 만들어버렸고, 양성평등이란 구호는 더 불안정해진 여성들의 처지를 은폐하는 수사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한미FTA가 여성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여러 분석들이 나오고 있고, 그 예상은 그리 빗나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미래를 짐작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확인된 현재를 통해 FTA가 어떻게 여성의 삶을 위협하는지 살펴보면 FTA가 자유로운(free) 것도, 거래(trade)도, 합의(agreement)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FTA의 선두주자이자 10여년의 경험이 쌓여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사례는 좋은 반면교사가 될 듯하다.


부국이든 빈국이든 여성 빈곤화는 매한가지

NAFTA 체결 이후 많은 미국기업들은 세금 혜택이 존재하고 노동기본권 보장 의무가 없으며 저임금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이웃 나라들로 생산시설을 대거 이전했다. 이에 따라 제조업 미숙련노동에 종사하는 미국여성의 실업률이 대폭 증가했다. 실업자 지원프로그램에 지원한 여성의 수는 NAFTA 체결 이전 1만 4천여명에서, 그후 10년 동안 무려 150만명으로 늘어났다. FTA가 자유무역의 허울을 내세운 미국의 자국 보호주의일 뿐이라는 비판에 비추어볼 때 최대 이해당사국인 미국에서조차 실업이 증가하며, 특히 여성의 빈곤문제가 심화되고 노동권 차별이 강화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여성노동의 상황은 어떠할까? 노무현정부는 FTA 농업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에서 보듯 사실상 농업을 포기한 판국에서 써비스산업을 개방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겠다고 표방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포부는 일부 전문직 종사자의 ‘괜찮은 일자리’와 다수의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로 차등화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써비스시장 개방을 통한 여성 일자리 창출’이라는 말은 사회·사업써비스의 보조적 임시직들을 여성 간접고용 노동자로 채우며 저임금화하려는 속내를 감출 따름이다. 최근 논란을 빚은 KTX 여승무원 문제가 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실례다.

지난해 유명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집회로 FTA가 문화다양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지적재산권 협상이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아직 둔감한 것이 현실이다. 한미FTA 8차협상에서 미국은 특허권을 20년 더 연장함으로써 종래의 지적재산권보다 더 강력한 ‘지적재산권 강화'(TRIPs Plus)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렇게 되면 일례로 의약품 접근권 제한 규정에 의해 일반인의 약제비 부담이 폭증하고 정부의 약가통제권이 약화되어 건강보험재정이 불안정해진다. 결국 초국적 제약회사의 이익만 불려줄 뿐 사회적 약자들, 특히 여성들을 심각한 위협에 몰고갈 것이다. 이는 비단 약소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여성에게 해당되는 문제며, 노동권부터 건강권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삶의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강요하는 지적재산권 강화

이처럼 FTA의 부정적인 영향은 당사국 모두에서 계급적·성차별적으로 나타난다. 자유무역주의의 요체인 WTO협정에 지적재산권이 포함된 뒤 1990년~2000년 사이 미국의 제약업계는 브랜드 약의 소비가 403억 달러에서 1조 218억 달러로 3배나 증가함으로써 엄청난 이윤을 거두었다. 이에 비해 빈곤층의 다수인 흑인과 유색인종, 여성 들은 지적재산권에 의해 보호되는 의약품 고가정책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캐나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성 노동자 4명 중 1명이 정부기관이나 학교, 병원 같은 공공부문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NAFTA 이후 급격한 공공부문 사유화로 실업자 또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공공써비스의 축소가 다른 여성들에게 미친 영향 또한 심각하다. 캐나다 정부는 NAFTA 체결 전부터 서서히 공공의료 써비스체계를 민간영리체계로 전환해왔는데, NAFTA 체결로써 사실상 전면적인 사유화로 접어들었다. 이로 인해 빈곤층의 70%를 차지하는 여성의 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기 시작했다.

또다른 사례로 미-태국 FTA를 보자. 미-태국 FTA의 특징은 종자나 의약품 생산에서 미국의 독점적 권리를 위해 특허권을 강제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에이즈 감염자가 많고 성매매 산업이 확산되어 있는 태국 성매매여성의 건강권은 당장 위험수위에 놓일 판이다. 태국정부는 1990년대부터 에이즈 감염자들에게 치료제 보조금을 지급하고 개인당 연간 10만 달러가 넘게 들어가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의약품을 무상으로 나누어주었다. 그후 정부 산하기관인 국영제약청이 저렴한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해 치료대상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태국 FTA의 지적재산권 강화 조항이 관철되면 치료제에 대한 독점적 판매권이 초국적 제약회사들 손에 넘어간다. 태국의 자체적인 치료제 생산이 극히 제한됨은 물론 이에 따라 수많은 이주여성과 성매매여성들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이다.

여성의 이름으로 빈곤과 차별에 맞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일환인 자유무역이 여성의 삶을 위협하는 데 맞서 여성들의 저항도 전세계적으로 점차 거세지고 있다. 빈곤과 차별에 맞선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을 필두로 여성들은 각 국가별·대륙별·이슈별 연대를 통해 저항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앞서 본 태국에서는 2006년 1월 미-태국 FTA 6차협상을 맞아 많은 여성들이 공공의료써비스를 무너뜨리고 안전하고 값싼 의약품을 살 수 없게 만드는 FTA 협상 중지를 강력히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같은해 브라질 여성농민들은 유전자 종자복제를 통해 지역 수자원을 고갈시키고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남부의 한 농장을 점거하고 자본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전세계 농촌여성과 도시 여성노동자들과 연대할 것임을 선언한 바 있다. 한미FTA 협상이 한창인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FTA가 초래할 사회양극화 현상과 성차별적 억압에 대한 여성들의 비판과 저항이 점점 커지고 있다.

며칠 전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기념해 서울역에서 열린 ‘3·8 여성대회’에서는 여성의 삶에 더욱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한미FTA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같은 시간 인근 남산 중턱 하얏트호텔에서는 한미FTA 8차 협상이 진행중이었다.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FTA협상과 이에 저항하는 여성주체들의 투쟁이 한날한시에 벌어진 것이다. 이 우연이 소수에게는 ‘정상을 향한 도전’이지만 다수 민중에게는 ‘바닥을 향한 질주’를 강제하는 FTA의 본질을 절묘히 은유하는 듯했다.

2007.03.13 ⓒ 정주연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