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 근거한 대북정책’ 시대의 도래

이승환


이승환
/ 6·15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천안함사건 이후,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해 마주 달리고 있다. 이제 어느 한쪽이 굴복하지 않으면 상황이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외신들도 이제는 천안함과 관련된 보도보다는 한반도에서의 위기와 전쟁 발발 가능성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타임》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기〉란 기사를 통해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도했으며, 《뉴욕타임즈》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등 유수한 해외언론들이 서해상의 우발적 충돌과 한국의 대북심리전 방송 재개에 따른 군사적 충돌 등의 씨나리오를 제시하면서, 미국은 동맹국으로서 군사적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기

현재 ‘상상해서는 안되는’ 전쟁의 가능성을 실감케 하는 가장 유력한 씨나리오는 한국군의 대북심리전 방송의 재개와 이에 대응하여 북한이 공언한 방송시설 ‘조준격파사격’이다. 북한의 조준격파사격에 대해 한국군은 즉각 북한의 포격시설에 대한 정밀한 집중 파괴공격을 개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상황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의 영역에 속한다.

정부는 ‘전쟁 불사’의 호전성이 도마에 오르고 이것이 쟁점화되자 대북심리전을 잠정 보류하는 등 잠시 속도를 조절하는 듯하지만, 이제 한반도는 이런 속도조절로 원천적 불안정을 해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어떤 우발적 상황도 ‘전시에 준하는’ 위기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천안함 이후 현재의 한반도 정황이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미 한국군은 북한 포대에 대한 외과적 정밀폭격 씨나리오를 포함, 개성공단에서의 우리 측 인원 억류상황에 대비한 공군력 및 특전사 투입 등 모든 군사대응조처에 대한 검토를 마쳤다고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잊고 살았던 그 ‘평화’의 시대가 이제는 오히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그런 시대로 우리는 접어들었다.

이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 이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그 사용을 제약해왔던 ‘봉인’이 이명박정부 들어 점점 느슨해지고 있는 데 있다. 보수언론들은 사흘이면 전쟁의 승기를 잡을 수 있으니 “국가의 능력을 믿고, ‘확성기 조준격파’ 같은 북한의 협박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감으로 단호히 대처”(중앙일보 2010.5.30)하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원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언명하고 있다.

‘힘의 우위’와 대북정책

국방연구원(KIDA)이 종합전쟁수행능력에서 우리 군이 북한에 비해 열세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것이 2004년인데(남과 북의 전력비교 88:100), 이랬던 군사력 비교가 ‘사흘이면 승리한다’는 식의 자신감으로 갑자기 바뀐 것은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실제 남북의 군사력 균형은 80년대 초에 이미 역전되었고 이후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격차가 확대되어왔다. 결국 천안함 이후 의도적으로 ‘북한의 군사전력과 위협을 과장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국가의 힘을 믿으라는 주문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그동안 ‘힘의 격차’가 급속히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의 무력 사용이 비교적 절제되어온 것은 문민정부 이래 지속되어왔고 특히 참여정부에서 강조된 이른바 안보의 문민화, 국방에 대한 문민적 통제가 상당 부분 뒷받침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문민적 통제의 고리는 풀렸고 위협 해석에 대한 국방부의 독점은 강화되었으며 국회와 언론의 견제기능은 심각히 약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봉인의 약화는 다시 힘의 우위에 근거한 대북정책의 추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힘의 우위를 관철하는 대북정책이 곧 국민의 자존심이고, 그래서 북의 저자세 없는 대북지원은 퍼주기가 된다. ‘힘의 우위의 확인→국방에 대한 문민통제의 약화와 위협 해석의 독점→힘의 우위를 관철하는 대북정책 추진’이라는 순환이 형성되는 것이다.

천안함사건의 전과 후, 무엇이 달라질까

6.2 지방선거의 결과와 상관없이, 선거 이후에는 천안함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외형적으로는 어느정도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안함사건을 둘러싼 논란, 보다 본격적인 사회세력 간의 쟁론은 이제 비로소 시작이라고 보인다. 의제 선택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명박정부가 천안함사건을 한국판 ‘9·11사태’로 만들어가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사건을 요리해가는 이명박정부의 대응과정은 어떤 점에서 매우 놀랍기까지 하다. 천안함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 청와대는 겉으로는 이 사건이 북한과 연관된 것이라는 억측을 배제한다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북한 소행을 전제로 수차례의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통해 전반적 대응 씨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표는 철저한 북한 봉쇄, 즉 국내적으로는 대북화해협력론의 무력화와 국제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북한 분리를 통해 북한 제재의 결정적 국면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명박정부의 이러한 대응이 얼마나 준비된 것이었나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정부 여당 스스로도 대북대응조치의 속도조절에 나설 만큼 여론의 역풍을 의식하고 있고, 또 국제적으로도 한국과 미국의 계속된 설득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안보리 회부 등 한미가 주도하는 대북제재의 흐름에 동참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천안함사건을 앞세워, 결정적인 대북봉쇄를 관철시키려는 이명박정부의 시도는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불행히도 우리는 천안함사건 전과 후가 다르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을, 의미는 다르다 하더라도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천안함사건 이후 정부의 발표와 대북제재 지지에 대한 국민여론조사의 대부분이 응답의 3분의 2를 넘고 있다. 천안함사건 이후 대북화해협력정책의 사회적 기반은 축소되고 지난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천안함사건으로 인해 가라앉아 있던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수면에 떠오르고, 이명박정부가 이를 계기로 힘에 의한 대북봉쇄의 외줄타기에 나선 이상 천안함 이후 한국사회는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깊어지는 시민사회의 고민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시민사회 역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민과 관련하여 조심스럽지만 우선 두가지 지점을 제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당면한 현안으로서 천안함사건에 대한 입장과 대응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시민사회는 천안함사건의 원인 논란 위주의 대응은 피해야 한다고 판단된다. 원인 논란은 침몰사고의 조작설 논란과 직결된다. 물론 원인 논란에 ‘올인’하지 말자고 해서, 제기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 요구조차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도 예단이고, 자료 접근이 철저히 봉쇄된 상황에서 좌초설이나 충돌설을 반복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지금은 원인을 예단하고 이것을 쟁론화하는 것이 아니라, 긴박한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국내외적 호소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남북의 입장이 첨예하게 다른 만큼 중국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남·북·미·중의 공동조사’를 현실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중국이 제안한 공동조사의 수용 전제는 북한 역시 필요하다면 검증에 필요한 모든 자료와 증거 조사에 응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남·북·미·중의 공동조사,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북제재조치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 현단계에서는 가장 적절하고, 이와 함께 시민사회는 군사조치 반대의 호소, 특히 영문자료 등을 통한 국제적 반전 호소의 확대 등에 더욱 힘을 실어야 한다.

위기의 분단체제 극복, 새 ‘버전’이 필요하다

둘째는 현 정부의 ‘힘에 근거한 대북정책’ 추진에 맞서는 시민사회의 대안을 가다듬고 더욱 발전시키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포용정책 2.0’ 논의이다(백낙청 〈‘포용정책 2.0’을 향하여〉, 《창작과비평》 2010년 봄호). 혹자는 ‘포용정책의 종언’을 말하는 판국에 또 다시 포용정책 논란이냐고 타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힘을 앞세운 대북정책’ 시대의 도래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준비는 지난 포용정책을 성찰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진전을 얻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냉전해소 차원을 넘어 분단체제 극복의 비전 위에서 남북연합과 시민참여형 통일과정의 추구를 제시한 ‘포용정책 2.0’의 제기는 천안함사건으로 재충전되고 있는 한국의 분단체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공부 ‘화두’가 된다. 포용정책 2.0 논의는 ‘2.0을 향하여’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정진해야 하는 영역이다. 이 공부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단체제에 대한 감수성’의 확대이다.

분단체제에 대한 감수성의 확대는 한편으로는 “남북연합의 건설작업에 역행하는 정권의 견제”라는 민주개혁의 시야와 통일운동의 결합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남한 해방의 기지로 보는 ‘민주기지노선’ 이래 뿌리 깊게 잔존하는 북 체제 내부의 완고한 이데올로기적 보수성에 대한 비판적 시야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 두 요소는 ‘제3당사자’로서의 한국 시민운동이 ‘시민참여형 국정운영 촉구와 사회개혁과 통일과정의 결합’, ‘남북관계에서 평화, 생태 등 시민운동적 의제의 제기’ 그리고 ‘당국에 의존하지 않는 시민사회 고유의 연대와 외교작업’을 추진하는 존재적 근거가 된다.

2010.6.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