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논쟁의 건설적 의미

최태욱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김상곤 경기도 교육감(과 그에 맞선 김문수 경기도지사) 덕분에 학교 무상급식 문제가 6월 지방선거의 핵심 정책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대부분의 야당들이 무상급식제 도입을 선거공약으로 채택한 반면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이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에도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의원 같은 무상급식 찬성파가 상당수 존재하고 있어 이 문제는 (마치 세종시 문제가 그러하듯) 정당의 위계구조 아래 매몰되고 마는 단순한 성격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사회의 개입 또한 적극적이다. ‘희망과 대안’은 지방선거에 임할 야5당이 공동정책과제의 하나로 무상급식제의 단계적 확대를 채택할 것을 주문했고, 서울 지역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이 결성한 ‘서울시 친환경 무상급식 추진 운동본부’는 지방선거에서의 낙선운동, 학교급식법과 서울시 조례 제·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 대규모 토론회 개최 및 자체 광고를 비롯한 정보확산운동 등을 통해 무상급식제 실현에 기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같은 ‘무상급식 시민운동’은 서울만 아니라 대전과 강원, 전남, 전북 지역 등 전국으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복지강화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

필자와 같이 복지강화야말로 가장 중요한 시대적 요청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보기에 무상급식 논쟁은 모처럼 벌어진 매우 건설적인 논쟁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이 논쟁을 통해 복지강화라는 시대적 과제가 공론화될 수 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정당 간 그리고 정당 내부에서의 논쟁이 격화되면서 복지담론에 대해 무지 혹은 무관심했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보편주의 복지’와 ‘잔여주의 복지’ 혹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중 어느 것이 옳은가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보라. 이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을 주눅 들지 않게 민주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 키우려면 마땅히 보편적 복지에 해당하는 무상급식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고히 형성되고 있지 아니한가.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며 상품이 아니라 가치라는 인식이 다른 영역으로도 확산되고 공고화될 수 있다. 주거, 교육, 의료, 일자리 등의 영역에서도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시민들도 나눌수록 커진다는 ‘나눔의 예술’을 차츰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복지국가 건설의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정책중심 선거, 정당정치 발전에 기여할 토대

둘째, 정책경쟁 중심의 선거 및 정당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진부한 얘기지만, 선진정치의 핵심은 정책경쟁이다. 우리도 하루빨리 지역 및 인물 중심의 전근대적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돼왔던 터이다. 이때 무상급식 문제가 지방선거의 쟁점으로 부상한 것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정당 간 그리고 정치지도자 간에 치열한 정책경쟁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다행히 그 가능성은 상당하다.

예컨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구도를 보라. 현직에 있는 한나라당의 오세훈 시장과 김문수 지사는 무상급식 실시에 대해 별 의견이 없거나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공식 입장을 따르는 셈이다. 그러나 같은 당이지만 원희룡 의원은 적극적인 무상급식 찬성론자이다. 정책경쟁이 당내에서 붙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당론이 찬성인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거기에 당내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한명숙 전 총리와 이계안 전 의원, 그리고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는 김진표 의원과 이종걸 의원 등은 찬반이 아니라 내용과 방법의 문제에서 경쟁해야 한다.

당내 경쟁 이후에는 정당 간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원희룡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가 될 경우 그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를 비롯한 여러 야당 후보들과 정책의 질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종걸 의원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상당히 세련된 수준의 복지정책 강화방안을 갖고 있는 심상정 전 의원을 비롯한 여러 야당 후보들과 다시 맞서야 한다. 이 몇겹의 정책경쟁 구도를 잘 살리면 이번 지방선거는 모처럼의 정책선거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은 바로 복지정책이지 아니한가. 복지정책 중심의 선거정치 활성화는 복지국가로의 길을 열어준다.

진정한 ‘복지세력’을 가려내는 시금석 

셋째, 종국에 그것은 ‘복지세력’의 형성 및 확산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복지세력은 두 수준에 걸쳐 존재한다. 하나는 정치권이며,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이다. 마치 개발독재시대를 겪으며 정치권과 시민사회 양쪽에 점증적으로 늘어났던 ‘민주화세력’이 힘을 합쳐 마침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루어냈듯, 이 두 수준에서의 복지세력 증대는 복지국가 건설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권의 (현재 및 잠재적) 복지세력이 누구인지는 금번 무상급식 논쟁에서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그러하다는 것은 굳이 이번 논쟁을 통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지만,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특히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물론 한나라당 혹은 보수세력 중에도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언뜻 생각나는 현직 의원들만 열거해도 원희룡 의원 외에도 김성식, 남경필, 박근혜, 정두언, 정태근 의원 등이 있다. 최근에는 박세일 교수, 윤여준 전 장관, 인명진 목사 등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중도보수 원로들이 ‘대한민국 국민비전 2020’을 출범시켜 사회양극화 해소와 복지 확대 등을 외치고도 있다.

사실 복지가 진보세력의 전유물은 결코 아니다. 세계 최초의 복지국가를 만들었다는 비스마르크도 보수 정치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정확히 볼 필요는 있다. 말로만 복지를 외치는 건지, 아니면 진정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건지. 무상급식 문제는 그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진보와 중도보수의 초당적 협력이 필요할 때

진정한 복지세력 정치가라면 경쟁과 함께 상호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자신이 주도하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복지강화를 위해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협력을 통해 이뤄야 할 핵심과제는 물론 시민사회의 복지세력을 늘려가는 일이다. 시민사회의 복지세력은 복지의 ‘맛’을 본 시민들의 수효가 늘어갈수록 강대해진다. 일단 맛을 보면 더 요구할 뿐 웬만해선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 시작되면 복지정책의 범위와 정도는 시간이 갈수록 넓고 깊어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복지국가로 가는 경로이다. 그렇다면 복지세력 정치가는 그가 누구든 복지의 맛을 보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자신의 협력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 점에서 ‘무상급식 연대’를 제안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원희룡 의원 지지발언을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비록 당은 다르나 같은 복지세력 정치가가 후보로 나와야 최종적으로 누가 당선되든 복지제공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에서라면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의 복지세력들도 원희룡 의원의 당내경선 승리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해봄직하다. 비록 제한적이나마 초당적 협력관계 형성이 요망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복지세력들도 적극 나설 때이다. 당내 중도파 모임인 ‘통합과 실용’이 원희룡 의원의 무상급식 공약에 공감하고 지원키로 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또한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부친의 그 꿈을 이어갈 의향이 있음을 시사한 박근혜 전 대표나 ‘국민비전 2020’의 중도보수 원로들의 역할도 기대된다. 그들 스스로가 한국의 복지세력 형성 및 확산을 얼마나 염원하는지 알릴 수 있는 기회이다.

일단 지방정치 차원에서 학교급식이라는 극히 제한적인 정책영역에서라도 복지담론이 넘쳐나고, 복지정책 중심의 선거정치가 이루어지며, 그 결과 복지의 맛을 보는 시민들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것은 분명 우리 사회의 복지세력 형성에 기여한다. 물론 중앙정치 차원에서 더 빠른 시간 안에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방안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정치 및 사회경제 제도의 개혁 등을 요구하는 지난한 일이다
. 그것은 중장기적 과제로 추진해가되 당장은 무상급식 논쟁의 건설적 의미를 찾아내고 그와 관련된 소기의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할 때이다.

2010.3.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