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문제의 ‘민주당식’ 해법

최태욱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정치학

민주당이 FTA 문제에 대하여 의회 차원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한미FTA를 포함하여 현재 정부가 다른 국가와 체결한 모든 무역협정을 전면 재검토하도록 의무화하고 필요하면 재협상에 나서도록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의회는 각 무역협정이 국익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체결되었는지를 포괄적으로 점검하여 그렇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에게 해당 협정의 재협상 계획을 의회에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한미FTA처럼 정부간에 이미 체결된 무역협정일지라도 그 내용에 ‘하자’가 있다고 의심될 경우 정부는 의회의 비준동의안 처리과정 이전에 다시금 그 협정 내용을 (재협상을 통해) 수정 혹은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FTA처럼 거의 모든 사회구성원의 이해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민감한 대외경제정책을 다룰 때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때 민주당의 이번 결정은 충분히 칭송받을 만한 일이다. 아쉬운 것은 이 민주당이 우리의 민주당이 아니라 미국의 민주당이라는 점이다.

미국 민주당과 비교되는 한국 민주당

적어도 한미FTA에 관한 한 이같은 법안은 사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의 의회에서 발의됐어야 마땅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유력 대선주자인 버락 오바마를 비롯한 미국의 민주당 의원들이 한미FTA 재협상을 거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차와 섬유 등 몇몇 특정 분야에서의 협정 내용이 미국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해당 산업의 노동자들이 입게 될 피해이다. 그러나 그들은 (쇠고기협정이 체결된 이후로는) 농업과 써비스업 전체 그리고 자동차와 섬유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거기서는 모두 미국에 유리하기 때문일 게다. 결국 오직 극소수 분야에서의 상대적 불리함만을 이유로 이미 체결된 협정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식대로 한다면 재협상 요구는 한국 쪽에서 더 강력하게 제기됐어야 한다. 불리하기로 말하자면 한국이 훨씬 더하기 때문이다. 농업은 말할 것도 없고 써비스업에서도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미국에 비해 크게 열등하다. 농업과 써비스 자유무역에서의 한국의 손해는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양국 관세율을 비교할 때 제조업에서도 한미FTA는 한국의 대미 수출보다는 대미 수입을 훨씬 더 큰 폭으로 증대시킬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와 섬유는 한국의 수출이 더 늘 수 있는 그야말로 예외적인 극소수 분야에 해당할 뿐이다. 게다가 협정문에는 한국 측에 불리한 투자자-국가 제소권, 비(非)위반제소권, 래칫(rachet) 조항 등의 독소조항도 가득하다. 그런데도 재협상 요구는 오히려 한국이 아닌 미국의 민주당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의 민주당을 미국의 민주당과 비교해 바라보자면 참으로 민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민주당 지도부가 그 작은 손해마저도 보지 않으려고 재협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사이 한국 민주당은 예컨대 당대표라는 이가 나서 한미FTA 조기비준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다닐 정도이다. 심지어 당내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쇠고기 재협상 문제만 풀어주면 한미FTA 비준 처리에 관한 민주당의 적극적 협조가 가능하리라는 무책임한 언사마저 흘러나온다. 쇠고기협정과 달리 한미FTA는 전혀 불공평하거나 불리하지 않은 협정이라는 확신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인 것은 아직 한국 민주당의 한미FTA 당론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조만간 민주당 지도부도 새롭게 구성되리라는 점이다. 현재 민주당은 18대 국회 등원문제로 시끄럽다. 물론 국회는 언젠가 개원돼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한미FTA 비준동의안은 어떻게든 다뤄져야 할 것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민주당이 언젠가 등원을 한다면 그때는 반드시 한미FTA 문제에 관한 해법은 가지고 가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의 민주당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싶은 몇가지가 있다.

한미FTA 문제를 헤쳐나갈 민주당식 해법

첫째, 정부간에 이미 체결된 한미FTA의 내용을 국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점검하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명박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기조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보다 한미FTA가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신자유주의화를 어느 정도 촉진시킬 것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대책은 과연 적기에 마련 가능한 것인지 등을 철저히 분석하고 가려내야 한다. 둘째, 그러한 점검 결과, 한미FTA의 발효로 인해 사회양극화의 심화, 비정규직의 증대, 공공성의 훼손 등 신자유주의 폐해들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미국 ‘민주당식’ 해법의 채용도 불사해야 한다. 즉 정부에 대하여 재협상 요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예의 ‘민주당식’ 해법을 염두에 둔다면 미국 의회에 앞서 우리 국회가 비준동의안을 먼저 통과시켜주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단 국회의 비준과정이 끝나면 협정의 모든 내용은 법적 효력을 갖게 되며, 따라서 우리 정부는 더이상 내용의 일부 변경조차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18대 국회에서 한미FTA 문제를 이런 방식대로 풀어간다면 그것으로 민주당은 재기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쇠고기정국’과 맞물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는 현상황에서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민주당이 선명한 당 정체성에 기초한 ‘이슈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부터 민주당이 앞장서 쇠고기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해내고 그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왔다면 현정부로부터 이반된 민심은 상당부분 민주당으로 옮겨왔을 터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전혀 그리하질 못했고, 그 결과 지지층 확대는커녕 기존의 지지자들로부터도 “차려진 밥상도 못 떠먹느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부와 구별되는 선명 야당의 기조를

민주당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한미FTA 비준과정에서 한국판 ‘민주당식’ 해법을 구사함으로써 ‘FTA정국’을 형성하고 그것을 자신의 우위로 이끌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신자유주의 정부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선명 야당의 정책기조를 확립하고, 그 기조 위에서 한미FTA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치며, 그를 통해 협정이 불리한 것으로 판단되면 재협상의 구체적 방안까지도 포함한 획기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쇠고기협정보다 한미FTA의 내용은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따라서 그 문제점들을 일일이 파악해내어 국민에게 쉽게 이해시킴으로써 각각을 사회적 현안으로 만드는 일(아마도 이 과정에서는 우리 사회의 뛰어난 네티즌들의 도움이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대안까지 마련해내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이 사는 길임은 물론 이 나라의 지나친 신자유주의화를 억제하는 길이라면 그에 드는 비용은 얼마든지 기꺼이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2008.6.18 ⓒ 최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