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어서 자라.
내가 등 뒤에서 내쉬는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아버지가 나직하게 말했다.
―아버지도 어서 주무셔요.
―헌아.
어서 자라고 하더니 아버지가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
―예.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하고 있냐?
나는 그 독서실에서 계속 이어 쓴 중편소설로 등단을 했다. 투고 마지막 날에야 우체국에 가서 펀치로 300매쯤 되는 원고지에 구멍을 뚫어 검은 끈으로 묶었다. 그때까지도 제목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우체국 직원에게 봉투를 내밀기 전에야 “겨울우화”라고 써 넣었다. 스물두살 때의 일이었다. 작품을 투고하면서 당시 직장이던 출판사 사무실의 전화번호를 연락처로 적기가 싫어서 오빠 집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러고는 매일 오후 네시쯤 올케에게 전화를 걸어 별일이 없는지 물었다. 갑자기 매일 전화를 하는 나에게 올케는 늘 무슨 일요? 하고 되묻다가 어느날 다른 대답을 했다. 문예…… 뭐라고 하는 곳에서 전화가 왔었다고. 연락을 해달라며 전화번호 하나를 알려줘서 적어뒀다며 바로 불러줘서 나도 얼른 손바닥에 받아 적었다.
J읍의 아버지에게 등단 소식을 알렸을 때 아버지는 등단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좋은 일이냐고 물었다. 좋은 일이었던가. 좋은 일이냐고 묻는 아버지 말에 선뜻 대답을 못했다. 전화통화 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쓰는 전화가 이장 집에 한대 있었다. 도시로 나간 이들은 급한 일이 있으면 이장 집으로 전화를 걸었고, 이장은 전화를 받으라며 마이크에 대고 전화를 받을 사람을 호출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어느 집에 누구에게서 전화가 왔는지 다 알았다. 아버지는 닭모이를 주다가 혹은 시월이었으니 들판에서 추수를 하다가 혹은 우사에 있다가 내 전화를 받기 위해 달려왔을 것이다. 등단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좋은 일이냐고 묻는 아버지의 숨찬 목소리에 말문이 막혀 나는 움찔한 채 서 있었다. 빨리 대답해야 했다. 벌써 아버지 숨소리에서 전화비 많이 나올 것을 걱정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나는 도시의 공중전화 부스에 서서 수화기를 다른 손으로 바꿔 쥐고는 시골의 아버지에게 외치듯이 말했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고요, 제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에요, 아버지.
그 이후론 아버지에게 내 마음에 대해 말해본 적이 없다.
―잘 안 되냐?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여태와는 달리 아버지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잠을 자다가 느닷없이 사라지거나 눈물을 보여 당황시키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살다보면 안 될 때도 있는 것이지. 아니다. 뜻대로 안 될 때가 더 많은 법이다.
―……
―잊지 않으면 돼야. 니가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잊지 않으믄.
―……
―매일이 죽을 것 같어두 다른 시간이 오더라.
―……
―봄에 모판에 볍씨를 뿌릴 때는 이것이 언지 자라서 심고 키워서 추수를 하나 싶어도 하루가 금세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잠이 언제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잠든 기억은 없고, 잊지 않으면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잊지 않고 있으면 다른 시간이 온다는 아버지의 말을 소처럼 되씹으며 계속 이어지는 아버지의 나직한 말을 알아 들으려고 애쓰다가 어느 순간 아버지의 옅은 코골이 소리를 들은 것 같기는 했다. 어느 결에 눈을 떠보니 아버지 침대가 비어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집 안의 불이란 불을 다 켜고 일단 현관 바깥으로 나와 아버지! 아버지! 부르며 헛간 문을 열어보고 장독대로 가보고 우물가에도 가봤으나 아버지는 없었다. 잠들기 전 긴 줄에 휴대전화를 달아 아버지 목에 걸어두었다는 생각이 나서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작은방 쪽에서 들려왔다. 번번이 잠자리에서 사라진 아버지를 집 안에서 찾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먼저 현관 바깥으로 뛰쳐나갔는데 정작 벨소리가 들리는 곳은 작은방이었다. 나는 벨소리를 따라 작은방 문을 열어보았다. 아버지가 책장 아래 맨바닥에 누워 있었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 쓴 에세이를 스크랩해둔 패널을 가슴 위에 올려둔 채로. 아버지 목에 걸린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리는데도 아버지는 기척 없이 누워 있었다. 새집을 지어도 이 방은 작은방으로 불렸다. 겨울엔 아랫목에 청국장을 띄우거나 메주를 발효시키기 위해 벽에 못을 치거나 가지가 많은 나무를 들여놓고 가지마다 메주를 매달아 보자기로 덮어놓았던 방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이 지상에서 사라졌으나 아버지는 두번 새집을 지을 때마다 방향도 구조도 비슷하게 잡았다. 특히 작은방의 위치는 창가에 서 있으면 대문이 내다보이는 것까지 같아서 그 방에 있으면 새로 지은 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창문의 크기나 위치도 같아서 창가에 서 있으면 저절로 어린 시절을 보낸 날들이 떠오르곤 한다. 청국장이 뜨고 있는 아랫목 이불 속에 내 발을 밀어 넣고 엎드려서 삶은 고구마를 까먹다가 깜박 낮잠에 들었던 일. 선잠에서 깨어나 머리카락에 들러붙어 있는 으깨진 고구마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할 수 없이 고구마가 붙은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내기도 했다. 그 아랫목에 엎드려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 집에 책이 많이 있을 리도 없었을 텐데 나는 왜 그 집의 그 방을 생각하면 거기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책을 보다가 얼굴을 들어보면 밖에 눈이 내리고 있기도 했다. 눈이 오네…… 얼른 창가로 다가가 마당에 쌓이는 눈을 내다보던 일. 그 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마당에 소복이 쌓이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송이들이 하나하나 글씨처럼 느껴졌다. 흩날리던 글씨들이 마당에 내려앉으며 서로 결을 이루어 문장을 이루고 드디어는 책이 되어 쌓인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한번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사나흘씩 장설로 이어지는 그 눈더미들이 차갑고 위험하다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눈 속에 있는 게 따뜻하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마루 밑의 강아지들이 죄다 마당으로 나와 쌓인 눈 위에 오목하게 파인 발자국을 내는 걸 바라보다 나도 눈 속으로 나가 새하얀 눈 위에 드러누워 눈 사진을 찍기도 했다. 눈이 오고 난 뒤에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지면 지붕에도 쌓인 눈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을 새도 없이 또 눈이 내리면 고드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몸집이 커져 왕고드름이 되었다. 왕고드름은 칼같이 생겨 칼고드름이라고도 불렀다. 집집에서 자라나고 있던 남자아이들은 자주 그 칼고드름을 꺾어들고 패를 갈라 싸움을 벌였다. 누가 이기든 남는 건 쌓인 눈 위의 어지러운 발자국들과 손에 쥐었던 칼고드름이 녹아내린 물뿐이었지만 싸울 땐 치열했다. 얼어붙어 있던 지붕 위 눈과 칼고드름이 녹기 시작하면 봄이 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낙숫물이 처마를 타고 마당으로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듣던 방.
나와 내 형제들이 이 집에서 묵게 될 때마다 피로한 몸을 눕히고 잠에 들었던 방에 아버지가 있었다.
내가 전화를 끊자 아버지의 휴대전화 벨소리도 사라졌다.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가슴에 얹어져 있는 패널을 책장 앞에 세워두고 가만히 아버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는 자면서도 울고 있었다. 이마에 손등을 얹은 채로. 이미 말라붙은 눈물자국 위로 눈물이 흘러 아버지 광대뼈를 타고 내리다가 입가 쪽으로 흘러들기도 하고 콧대 쪽을 타고 내리기도 했다.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 왜 우시는 거예요? 혼자 웅얼거렸다. 내 혼잣말은 작은방 안으로 공허하게 흩어졌다. 아버지 몸피가 이렇게나 작아졌는가, 싶지만 않았다면 아버지를 흔들어서 아버지 대체 왜 우시는 거예요? 따지고 싶었다. 윗목에 놓인 이불을 펼쳐서 아버지 몸을 덮어주고 베개를 목 밑으로 넣어주다가 나는 영양이 다 빠져나가 얄팍해진 아버지 어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말해지지 않은 무엇이 아버지 심중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인가.
아버지는 어느날의 바람 소리, 어느날의 전쟁, 어느날의 날아가는 새, 어느날의 폭설, 어느날의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로 겨우 메워져 덩어리진 익명의 존재. 아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내가 아버지 이마에서 손등을 내려주려 하자 아버지는 잠결에 다시 손등을 이마에 얹었다. 작은방의 아버지 곁에 가만히 누워 발을 뻗어봤다. 아버지의 정강이뼈와 내 무릎이 부딪혔다. 살집이라곤 전혀 없는 아버지의 정강이. 왜 우느냐고 아버지를 다그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고 허무와 두려움이 밀려들어 아버지처럼 내 이마에 손등을 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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