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민규의 대답에 지연은 의아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 땅에서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저들과 나는 무엇이 다른가? 어떻게 다른가? 왜 다른가? 어릴 적부터 그녀는 늘 그런 질문들을 곱씹으며 살아왔다. 지연은 공단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의 소도시에서 자랐다. 비좁은 골목 안에 고만고만한 다세대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놀이터는 없었고, 공터가 있었다. 누군가 건물을 올리려다 실패한 자리였다. 건물을 올리려다 실패한 사람은 빚에 내몰려 자살했고, 주인이 사라진 빈 땅을 놓고 여러명의 채권자들이 소송을 벌이고 있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공터를 차지하기 위해 무리 지어 싸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의 부모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바빴다. 장사를 나가거나, 일당벌이를 하러 나가야 했다. 그 동네의 아이들은 ‘일을’ 다음에 이어지는 동사가 ‘하다’가 아니라 ‘나가다’라고 자연스레 인식하며 자랐다. 지연도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봄, 뒷자리 여자아이가 잃어버린 연필이 지연의 사물함에서 발견되었을 때, 그 사물함에서 여러 아이들의 분실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을 때, 담임은 내일 아침 당장 어머니를 모셔 오라고 했다.
“아침, 몇시에요?”
“너 등교할 때. 여덟시 반이나 아홉시에.”
“못 오세요, 그때.”
“뭐? 왜?”
막 교대를 졸업하고 임용된, 승무원처럼 단정한 단발머리에 귓불에는 작게 반짝이는 금빛귀걸이를 하고 다니던 담임은 당황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새벽에 일을 나가시니까요.”
“몇시부터?”
“저도 잘 몰라요. 저는 자고 있거든요. 아마 네시 반이나 다섯시나 다섯시 반쯤일 거예요.”
그 무렵 지연의 어머니는 새벽마다 근처 공장에서 청소를 했다.
“그럼 몇시에 오실 수 있지?”
“모르겠어요. 너무 바빠서.”
그 무렵 지연의 어머니는 공장 청소가 끝나면 식당에서 서빙과 설거지를 했다. 그 일이 끝나면 근처 병원에서 청소를 했다. 담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다 대고 차마 ‘오실 수 없을 거예요’라고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차피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담임의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잘 못 키워서 죄송하다고. 정말 면목이 없다고. 그런데 제가 너무 바빠서 학교까지 갈 수 없으니 선생님이 대신 혼을 좀 내달라고.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끔 아주 정신이 확 들게 혼내달라고. 매를 때리셔도 좋다고.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다음날 그것을 지연에게 전해주며 담임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지연아, 선생님 생각은 달라. 우리 지연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담임이 물기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면 하교하면 쭉 어른이 안 계셨던 거니? 혼자 있었던 거야?”
“혼자 있는 거 아니에요. 언니도 있고 동생도 있어요.”
“그러면 아침밥도 저녁밥도 항상 너희끼리 차려 먹는 거야?”
담임이 그녀의 손등에 자신의 손바닥을 포갰다. 담임의 손가락은 길고 하얬다. 네 번째 손가락엔 가느다란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랬구나. 선생님이 몰라서 미안해.”
지연은 반 아이들 전체 앞에서 도둑질을 들켰을 때보다 훨씬 더 센 강도의 모멸감을 느꼈다. 그날 저녁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여느 때처럼 언니가 저녁 먹게 밥상을 닦으라고 했다. 언니는 뚝딱뚝딱 이런저런 것들을 잘 만들었다. 프라이팬 속에 든 것은 김치 덮밥이었다. 통조림참치와 신 김치를 볶아 밥 위에 부었다. 언니는 그것을 삼등분하여 공평하게 나눠주었다. 반찬은 계란프라이였다. 노른자가 반쯤 터진 제 몫의 계란프라이를 내려다보다가 지연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화였다.
그날 밤, 귀가한 어머니는 지연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전에 받은 담임의 전화 같은 것은 다 잊은 것 같았다.
“아 죽겠다.”
그러곤 세수도 하지 않고 발도 씻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누웠다가 곧 잠이 들었다. 지연이 이불을 덮어주었다. 어머니의 낮게 코고는 소리를 곁에서 들으며 지연은 오래 잠들지 못했다.
지연은 민규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콧날이 오뚝하고 콧대가 곧발랐다. 선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다른 사람이구나. 그것이 지연이 민규에게 이끌리게 된 결정적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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