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13회

 
 
 

   2장. 소

 
 

   나는 아버지 곁에서 쓰고 있는 이 글을 어쩌든 완성하고 싶다. 벌써 지우고 있어서 불안하지만.

 

   작은방 책상에 노트북을 펼쳐놓으니 아주 먼 데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쓰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많은 날엔 부엌 식탁에 노트북을 내려놓고 몇 문장씩을 이어 쓰려고도 했다. 작은방의 오래된 내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에서는 가끔 책을 구입한 날짜와 서점과 그때 함께 있었던 친구의 이름들이 발견되곤 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 소식이 끊긴 친구의 이름. 어느날 책장 뒤로 넘어가 있는 얇은 책 한권을 빼내느라 집의 먼지떨이와 아버지의 지팡이와 우산대까지 동원한 적도 있었다. 먼지와 함께 끌려나온 책은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였다. 책의 내용이 까마득한데 용케도 여주인공 이름이 뽐므였다는 기억이 났다. 뽐므는 빨간 사과,라는 뜻이라는 것도 기억해냈다. 뽐므, 빨간 사과, 빨간 사과, 뽐므…… 희미해지고 잊기까지 했지만 나는 뽐므를 사랑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뽐므에게 영향받은 적도 있는 것 같다. 실어증에 걸린 뽐므가 안타까워 먹먹해진 마음으로 저물녘의 하늘을 보고 소롯한 길을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 나는 책에 낀 먼지를 닦고 접힌 페이지를 펼쳐서 책장에 자리를 잡아 꽂아두었다. 뽐므가 기필코 하려고 했던 말들이 생각날 듯 말 듯해서 나중에 다시 읽어보기로 하면서.

 

   며칠 전 새벽에 갑자기 아버지가 니 고모 안 왔냐?고 물었다.

   ―아버지, 누구?

   ―니 고모 말이다.

   나는 할 말을 잃고 침대 위의 아버지를 넌지시 건너다보았다.

   ―누님이 어디 아픈가. 오늘 새복에는 기척이 없구나.

   아버지의 누나, 나의 고모는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 새벽이면 이 집에 왔다. 비가 멎을 때도 꽃이 질 때도 감이 떨어질 때도 눈이 녹을 때도. 고모는 이 집을 떠난 후에도 일생을 새벽에 잠에서 깨면 맨 먼저 아버지가 있는 이 집에 왔다 가곤 했다. 바람을 뚫고 눈보라를 뚫고 새벽비를 맞으며 새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는 그런 고모 때문에 일생을 이 집의 대문을 열어두었다. 고모는 내가 왔다,는 표시로 흠, 소리를 한번 내고 마당을 둘러보고 밤바람에 열린 헛간의 문을 닫고 우물의 두레박에 물을 채워두고 뒤란을 돌아 장항아리들을 살피다가 더 커지지는 않았으면 싶은 담장 위의 애호박을 따고 더 세지지는 않았으면 싶은 담장 밑의 머위 잎을 뜯어서 뒷마루에 올려두고는 다시 흠, 소리를 내며 고모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고모의 새벽 시찰은 이어졌다. 이 집을 떠날 때까지 나는 새벽마다 잠결에 고모가, 왔네, 생각하며 다시 잠에 들곤 했다. 아버지도 엄마도 형제들도 고모의 기척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쩌다 고모가 오지 않으면 모두들 알았으니까.

 

   고모는 팔년 전에 가만히 세상을 떴다.

 

   늙은 사촌이 새벽에 고모의 방문을 여니 세상을 뜨기 전에 담배를 피웠는지 두모금쯤 줄어든 담배 개비가 재떨이 모서리에 얹어져 있었다고. 방문을 뒤로하고 벽 쪽을 향해 누워 있는 고모의 등이 꼿꼿하게 세워져 있어서 잠에서 깨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고. 문을 뒤로하고 벽을 향해 완강하게 세워져 있었다는 고모의 등이 눈앞으로 스쳐갔다. 고모는 끝까지 고모처럼 세상을 떠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훌훌 미련 없이, 다시는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는 듯이. 고모는 대체적으로 공정하고 단호했다. 아니다, 싶은 일과 선을 긋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작가가 된 이후 가족과 친척 중에 내가 가장 많이 기색을 살폈던 이는 고모였다. 가족이 등장하는 글을 쓸 때는 고모의 눈길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고모는 옆으로 긴 눈을 가졌다. 뭔가 마땅치 않으면 J시를 방문한 내 앞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몸을 앞으로 뒤로 갸웃갸웃하면서 작가가 뭣하는 사람이냐? 그 긴 눈을 더 가느스름하게 뜨고 물었다. 질문이 아니라 질책이었다. 나는 뭣하는 사람인가…… 고모의 질책은 매서웠다. 고모가 살아 있었을 때,라고 쓰는데 그리움이 치솟는다. J시에 올 때마다 고모에게 검열을 당하는 기분이었는데도.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마을의 초가들이 헐리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집들이 지어졌다. 아버지도 그때 초가를 허물고 새집을 지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였을 것이다. 내 형제들이 태어났던 초가가 허물리는 날 흙덩이들이 쏟아져내리고 초가 지붕 속에 새알을 낳거나 이미 알을 깨고 나온 새끼들을 기르고 있던 새들이 소스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흙담을 부술 때는 담 속에서 구렁이가 나와 대숲으로 숨어들었다. 초가 어딘가에 서식하고 있던 크고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와 황급히 먼지 속으로 몸을 감췄다. 한두 집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어서 매일 둥지를 잃은 새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기어나온 벌레들에게 팔다리와 뺨을 물렸던 기억. 겨우 비를 가리는 천막이 우물 옆에 쳐졌다. 집이 다 지어질 때까지 엄마는 천막 바깥에 화덕을 세우고 솥을 걸고 밥을 했다. 밤이 되면 나와 여동생은 고모 집으로 잠을 자러 갔다. 고모의 여러겹의 목소리. 고모는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이 세상에 온 사람처럼, 정확히는 고모가 특별히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책 읽어주듯 우리가 모르는 시간 속의 이상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들려주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약초 캐러 갔다가 산에서 백년을 살았다는 사람을 만났는데 거기에선 노루가 아궁이에 불을 때고 뱀이 새끼를 꼬고 있었으며, 손이 열개 달린 부처님과 함께 밥을 먹었다고 했다.

   ―손이 열개여요?

   ―그려, 손이 열개 달렸더라……

   놀란 내 눈을 보며 고모는 깔깔 웃었다. 고모는 이야기꾼. 그 이야기 속에서 할아버지가 약방을 할 때 이 집은 큰 기와집이었고 파란 슬레이트 지붕 집을 짓기 전에 우리가 살았던 초가는 약방 일 배우러 오는 이들이 살았던 곳이었다. 그때는 우리 집 땅이 저기서부터 저기까지아주 넓었으며…… 고모의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고 남아서 나는 J시에 올 때면 그때 고모가 우리 집의 시작이었다고 말한 지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고? 생각하며 휘휘 둘러본다.

   ―그런데 왜 지금은 초가에 살아?

   의아하게 내가 물었을 때 고모는 차천자(車天子) 때문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강일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람도 불러오고 비도 불러오는 사람이었는데…… 모악산에 광제국(廣劑局)이라는 한약방을 열었는데 고모의 할아버지가 그를 흠모하여 따랐으며 고모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가 한약방을 하게 된 것도 그 영향이라고. 고모가 말하는 차천자는 고창에서 난 사람으로 강일순의 제자였다. 스승이 죽자 제자들이 흩어졌으며 차천자는 J시의 입암면 대흥리에 보천교를 세우고 교세를 늘려갔다. 전국에서 입암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고모는 본 것처럼 말했다. 고모는 사람들이 동학에도 패허고 나라도 뺏기고 지댈 데가 없어농게,라고 했다. 차천자가 그 구렁에서 나오게 해줄 것이라고 믿구서는 그를 따랐던 것이제,라고. J시의 입암면 대흥리 일만은 아니었다고. 전국에 교구가 60방주가 있었고 보천교를 우러르는 사람들이 수백만명이 넘었다고. 바로 저그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모는 팔을 뻗어 밤하늘 저쪽을 가리켰다. 바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기라도 한 듯. 그는 어느새 차천자라고 불리었고 폐하,로 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죄다들 고통시럽고 살기 팍팍헝게 새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여, 바랄 것은 새 세상뿐이라서…… 고모는 허탈한 목소리로 봉초를 말아 입에 물었다. 새 세상을 바라는 마음. 새 세상이 코앞에 펼쳐지는 것 같기도 했다는디, 일본 경찰의 체포령도 있었다는디 그것도 피해서 저그 덕유산 어딘가에서 천제도 지내고 국호도 지었다는디…… 당시에 백두산의 목재를 싣고 와서 교당을 지었으니깐 그 세가 어땠는지 더 말해 뭣하겄냐만…… 누구의 말을 전하기라도 하듯 길게 사설을 잇던 고모는 천자등극에는 패하고……에서 멈추고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등을 세웠다. 동학도 새 세상 세우는 일도 거듭거듭 결실 없이 끝났시도 여그 땅이 그런 기운을 지닌 땅이라며 고모는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천자는 J시의 입암면 대흥리에 대규모 교당을 짓기 시작하며 신도들에게 인장과 교첩을 발급했다. 그것이 무어라고…… 고모는 흠, 소리를 내며 꼰 다리를 풀고 돌아앉곤 했다. 그놈의 인장과 교첩을 얻으려고 논밭을 팔아 사람들이 전국에서 입암으로 먼지가 일게 모여들었제. 고모가 그리 말하면 눈앞에 뿌옇게 먼지가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그것이 새 세상으로 들어가는 정표가 되어줄 거라 믿었던거라, 고런 것이 뭔 정표가 되어주겄냐만 의지할 데가 없시믄 고런 것이라도 가지고 있고 자픈 게 사람의 마음이라…… 나는 지금도 궁금허긴 허다. 그때의 그것이 참말 혹세무민에 불과헌 것이었는지 어쩐 것인지…… 그때 줄어든 이 집의 규모는 할아버지가 죽은 후 나누느라 더 작아지고 전쟁 때 더 작아지며 초가만 남게 된 거라고 했다. 그 초가가 허물리고 슬레이트 지붕의 새집이 지어질 때까지 고모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고모집 마루와 방 안엔 벽장이 있었다.

   어느날 닭장 속의 닭이 커다란 알을 두개 낳아서 벽장 속에 두었는데 그 커다란 알에서 호랑이가 태어나 지금도 벽장 속에 살고 있다고도 했다. 전쟁이라든지 난리가 또 나면 그 호랑이가 벽장에서 나와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고. 고모는 왜 호랑이 이야기를 했을까. 고모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우리를 구해주기 위해 거기 살고 있다는데 나는 문 닫힌 벽장만 보면 곧 호랑이가 튀어나와 물어뜯을 것 같아 오줌이 마렵곤 했다. 고모의 얘기를 듣다가 여동생은 잠이 들고 이어 고모가 잠든 후에도 내 귀는 종긋 세워져 있었다. 고모의 이야기가 남긴 여운들 때문에. 끝없이 생각을 하게 하는 고모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 이야기가 듣고 싶어 어서 밤이 와 고모집으로 자러 갈 때를 기다렸다. 책을 읽게 되기 전까지 나는 고모의 이상한 이야기에 붙들려 있었다. 그런 이야기꾼 고모가 공정성을 잃을 때는 아버지와 관련된 일에서였다. 어린 시절에 여동생이 아버지를 닮아 고모가 나보다 여동생을 예뻐한다는 생각을 지니게 할 만큼. 아버지를 닮은 여동생에게 이삐라는 애칭을 붙여 부르기 시작한 이는 고모였다. 지금도 나는 여동생을 이삐야,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 여동생의 애칭이 이삐인 게 부러운 마음에는 고모는 나보다 여동생을 더 예뻐한다,는 내색할 수 없는 서운함이 깃들어 있기도 했다. 고모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렇게 일생을 크고 작은 일 모두에서 아버지 편에 섰다.

 

   아버지는 여태 출가외인을 선산에 들게 하는 법은 없었다,는 문중 사람들의 말을 물리치고 아버지 가묘 위에 새 자리를 잡아 고모를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