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이 도시에서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보자마자 집이 어디냐는 물음을 쉽게 했다. 지연이 느끼기에 그것은 함부로 쏴보는 무딘 화살촉 같은 것이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는 무심코 어머니가 새아버지와 살고 있는 지방 소도시의 이름을 댄 적이 있었다.
“어머 너무 멀다. 거기서 여기까지 다닌다는 말이야?”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한 것은 초콜릿을 같이 팔던 아르바이트 동료였다. 강남역에 위치한 유명한 제과점이었다. 제과점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점포 앞에 임시 판매대를 설치했고, 지연은 판매원으로 닷새간 고용되었었다. 아르바이트 인원은 총 네명이었는데 조를 짜 시간대별로 둘씩 짝을 지어 일을 했다. 지연과 파트너가 된 여자는 그녀보다 두살이 많았다. 보자마자 나이를 물었고, 지연의 나이를 알자마자 반말을 썼다. 그리고 두번째 질문이 저것이었다.
“아니, 지금은 서울에 있어요.”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여자는 다시 지금 서울에서 사는 동네를 물었다. 그런 사소한 사항을 궁금해하는 정도는 자신에게 부여된 당연한 권리라는 듯이.
“여기서 가까워요. 영동시장 있는 데에요.”
“그래? 거기가 논현동인가?”
지연은, 아마도 그럴 거라고 자신 없게 대답했다.
“거기 비싸잖아. 자기 부자인가봐?”
그때의 지연은 그런 느닷없는 반응 앞에 아직은 어리둥절했고, 그래서 손사래를 쳤다.
“부자 아니에요…… 그냥 친구 집이라서.”
“아아.”
여자는 그제야 호기심 어린 표정을 거두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지만, 친구 집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지연에게 기꺼이 자신의 집을 제공해줄 만한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지연이 살던 집은 말하자면 셰어하우스였다. 방 두개인 작은 빌라에 다섯명이 함께 지냈다. 큰방은 이층침대 한개와 매트리스 한개가 놓여 있는 3인실이었고, 작은방은 이층 침대 한개가 놓인 2인실이었다. 한달 분 월세만큼의 보증금만 내면 지낼 수 있었다. 지연은 3인실의 매트리스에서 지냈고, 다섯명 중에서도 가장 싼 월세를 냈다.
호수는 101호였지만 반지하층이었다. 관리인은, 그곳이 지하가 아니라 반지하임을 무척 강조했다. 공동현관에서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의 개수가 열개뿐이라는 것이다.
“여기 2층도 같은 사장님 물건이라 내가 관리하는데 여기랑 거기랑 월 10씩 차이나요. 겨우 계단 몇개인데 말이에요. 아가씨가 경제적으로 잘 선택한 거야.”
지연은 가만히 있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늙수그레한 그 남자는 공동생활의 이런 저런 규칙을 알려주었다. 이 집에는 잠만 자고 나가는 아가씨들이 절반, 낮밤이 바뀐 일을 하는 아가씨들이 절반이라 했다. 그러니 집에 들어온 이상 낮이고 밤이고 무조건 조용히 해야 한다고 했다. 타인을 데리고 오는 행위는 절대금지이며, 공용 냉장고에서 다른 입주인의 음식을 꺼내먹는다거나 공용 욕실에서 다른 입주인의 샴푸를 사용한다거나 하는 문제는 퇴실 사유라고 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반지하라 시원하고 좋은 점도 있지만 습기는 좀 있어요. 빨래가 잘 안 마를 수도 있으니까 웬만하면 빨래는 여기서 널지 말고 길 건너 빨래방을 이용하라고.”
입주인들 사이에 빨래 너는 문제로 다툼이 잦다고, 전에 있던 아가씨 둘도 그 문제 때문에 싸우고 둘 다 나가버렸다고 부연했다.
“그 있잖아. 팬티나 브라자 같은 거, 그런 거 화장실에다 널어놓고 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남자의 느물거리는 말투에 지연은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을 느꼈다.
“알아서들 조심해야지.”
그러나 지연은 그 앞에서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관리인 사내가 나가고 혼자 남겨지고 나서야 지연은 이 빌라의 지하 1층과 2층 두채의 집을 소유하고 월세를 받는 그 사장님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그때 그 집에서 네 계절을 보냈다. 모든 것이 다 불편했지만 한가지만은 나쁘지 않았다.
“집이 어디에요?”
아무렇지 않게들 물어오는 물음들에, 아무렇지 않은 척 ‘논현동’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 사람들이 처음 만난 이에게 그런 것을 왜 묻는지, 어떤 답을 듣고 나서도 ‘아, 거기’라고 하고 마는 까닭은 무엇인지 여전히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준비한 대답이 평균점수 이상 되는 것임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연은,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어디 살아요?’라고 묻는 사람이 되어갔다. 누군가 왜냐고 물었다면, 아무 뜻도 없다고 답했을 것이다.
“오빠 집은 어디에요?”
지연의 질문에 민규는 잠시 망설였다.
“음, 반포예요, 지금은.”
“아, 거기. 새 아파트 많은 데.”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고개를 살짝 까딱이는 민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대화가 끊겼다. 지연은 어쩐지 한마디 덧붙여야 할 것 같았다. 장난스러운 어감을 강조하려 애쓰며 그녀는 말했다.
“되게 부자인가봐요.”
민규가 픽 웃었다. 지연이 처음 보는 민규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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