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14회

   그제 저녁 무렵에는 아버지가 참이는 어디 갔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이 세상에 없는 고모를 찾을 때는 놀라서 넋이 나가는 기분이었으나 참이는 어디 갔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저녁으로 만든 닭죽을 아버지 앞으로 밀어놓았다. 아버지의 행동에 당황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나는 들여다보고 있던 노트북을 닫으며 침착하게 아버지는 농담도 잘하셔? 참이, 죽었잖아요, 했다.

   ―참이가 죽었냐? 언제?

   ―그건 아버지가 더 잘 알지. 생각해보세요.

   아버지는 닭죽을 앞에 놓고 생각에 잠겼다.

   ―사월 열엿샛날에 죽었다.

   ―그러니까요.

   ―저기 앉아 있는 것만 같은디?

   ―어디다 묻었어요?

   ―마당에……

   ―다 아시네 뭐.

   대꾸하는데 가슴이 저릿했다.

   ―알지. 내가 그거도 모르간. 살았으믄 해서 그맀지. 참이가 이거 잘 먹거든.

   아버지가 내가 끓여 내놓은 닭죽을 가리켰다. 앵무새가 닭죽을 먹기도 하는가? 나는 물끄러미 닭죽을 내려다봤다.

 

   여동생에게 아버지의 상태를 전하자 수면장애 때문에 더 그런다며 J시의 병원에 다녀오라고 일렀다. 예약은 자신이 전화로 해놓겠다면서. 여동생의 예측대로 의사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이렇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젊은 날부터 수면장애를 앓아왔다고 하자 의사는 편히 잠을 이룰 수 있는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손을 씻으러 간 사이에 내가 의사에게 아버지가 자꾸 눈물을 흘리고 몽유병을 앓는 사람처럼 밤에 잠자리를 비우고 세상 떠나고 없는 사람을 찾을 때도 있다고 하자 의사는 조심스럽게 아버지 나이를 물었다.

   ―기억력 저하는 자연스러운 일이긴 합니다만.

   손을 씻고 돌아온 아버지에게 의사는 함자가 어떻게 되세요, 물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외자 이름을 대면서 의사에게 이름을 왜 묻냐고 되물었다. 의사는 자녀분은 몇이세요, 물었다. 4남 2녀인데 그건 또 왜 묻소? 아버지는 의사의 질문마다 대답을 하면서도 꼬박꼬박 왜 묻냐고 되물었다. 의사는 웃으면서 어제는 어디를 다녀오셨어요? 물었다. 아버지는 속에서 올라오는 노여움을 누그러뜨리는 표정으로 비가 많이 올 거라고 해서 선산에 갔었다,고 대답했다. 어제 아버지가 선산에 갔었던가? 나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저녁 후에는 먹는 약을 깜박 잊어버려 자다 깨서 약을 먹었다고 의사가 묻지 않은 말까지 보탰다. 아버지는 의사가 묻는 대로 주소를 또박또박 대고 전화번호를 말하고 7이 일곱번이면 몇이냐고 묻는 질문에 바로 49라고 대답했다. 날짜와 요일을 정확히 대던 아버지는 이제 피곤하니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의사는 인지능력엔 문제가 없는 것 같다며 혹 눈물을 흘리는 것이 마음에 걸리면 신경정신과에 예약해주겠다고 했다. 신경정신과? 나는 대답을 마친 후 조용해진 아버지가 신경 쓰여 가족들과 상의해보고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의사는 낮에 잠을 많이 자면 밤에 자지 못하니 낮 시간을 잘 활용해서 산보를 하거나 이야기를 많이 나눌 것을 권했다. 눈물은 우울감과 결부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때로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실컷 하고 나면 나아지기도 한다고. 내가 처방전을 사진으로 찍어 여동생에게 보내며 이 약들을 아버지가 먹어도 되느냐 문자메시지로 물었다. 여동생은 아버지가 평소에 먹는 약에 최근에 치과에서 조제한 약까지 같이 먹고 있는데 서로 충돌하는 약이 있다며 자신이 다시 살펴서 밤에 주무실 수 있는 약을 찾아보겠으니 약은 짓지 말라는 답을 보내왔다.

 

   ―내가 이상하냐?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아버지가 물었다.

   ―늙은이가 이상헌 짓 하면……

   나는 얼른 아버지 말을 가로막았다.

   ―젊은이들도 아프면 병원 가는 거예요, 아버지. 나도 아프면 병원 가요.

   대꾸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이제 나도 젊은이 축에 들지도 않는데, 싶어서.

   ―그 말이 아니잖어.

   ―……

   ―치매 검사를 받게 하고 싶냐?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이미 해봤다.

   ―해보셨어요? 언제요? 왜 말씀 안 하셨어요?

   ―그게 중하냐?

   ―……

   ―진단은 그리 안 나왔어도 패치를 붙이고 있다. 해될 것이야 있겄나 싶어서.

   ―……

   ―내가 뭔 짓을 하는지도 모름서 살믄 그게 사는 것이냐. 치매라 허믄 다 정리헐 참이었는디…… 두번은 못할 일이더라. 두시간도 넘게 왜 이런 것을 묻나 싶은 것에 죄다 답을 혀야 혀.

   ―죄송해요, 아버지.

   아버지가 스스로 치매 검사를 받아봤다는 말에 나는 침울해졌다. 가족 누구에게서도 아버지가 치매 검사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치매 검사를 받으러 갔을 아버지.

   ―헌아.

   ―예.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

   ―앞으로만 나아가다가 절벽 앞에 서 있을 수도 있제. 뒤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시믄 거그로 돌아가도 되는 것이고.

   ―……

   ―그 일은 니 잘못이 아니다. 이런 말이 뭔 소용인고 싶다만.

   ―……

   ―니가 몇해째 집에도 안 오고 아비로서 암것도 못허게 하니…… 그것도 니 뜻이니 내색을 안 할라고 했다만…… 너무 오래 슬퍼허믄 그아도 애가 닳아 갈 길을 못 가고 떠돌지 않겄냐. 언진가 소 새끼 한마리가 젖을 빨다가 미끄러져 다리가 분질러져서 주저앉더만 너무 오래 그러고 있더니 걷는 법을 잊어버리고는 앉은뱅이가 되더라.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더 늙으먼 이 말을 안 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