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16회

   나는 아버지가 언제나 농사일에는 서툰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으나 내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는 열네살에 송아지를 기르고 열다섯에는 소의 힘을 빌려 논과 밭을 가는 쟁기질의 명수가 되었다. 아버지는 열다섯에 이제 소가 되어가는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걸었다. 아버지는 그때의 일을 꽤 세밀히 기억했다.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지면서 송아지는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냇가로 데리고 나가려면 송아지가 자꾸 다른 집 마당으로 들어가거나 냇가와는 반대 방향인 철길 쪽으로 가려 해 풀이 많은 곳에 부려놓는 일에 점점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말을 잘 듣던 송아지가 막무가내로 뛰기 시작하면 소년 아버지는 힘에 부쳐 소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두들기거나 송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긋하고 자유롭게 냇가를 걸어다니던 일을 송아지의 해찰로 더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의 외조부는 아버지를 다시 불러 다래나무로 만든 코뚜레를 내밀며 소의 코에 코뚜레를 거는 법을 가르쳤다. 아버지는 외조부가 내민 코뚜레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송아지를 바라보았다. 이제 소가 되어가는 송아지가 커다란 눈망울을 끔벅이며 소년 아버지를 마주했다. 다래나무로 만든 코뚜레의 끝은 무엇이라도 뚫어낼 것처럼 날카로웠다. 코뚜레가 뚫고 들어갈 소의 코를 만져보았다. 코와 코 사이의 말랑한 살이 부드러웠다. 아버지의 가슴에 고통이 밀려들었다. 코를 뚫어 코뚜레를 걸어놓으면 송아지는 꼼짝없이 자신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집의 운명에 자신이 따를 수밖에 없듯이. 소가 되어가는 중인 송아지와 자신의 처지가 같아 보여 소년 아버지는 손을 내밀어 송아지의 코만 문질렀다. 한동안 아버지는 외조부에게 받은 다래나무로 만든 소 코뚜레를 방문 앞에 걸어두고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날 더 실해진 송아지가 냇가의 물속에서 노는 오리를 발견하고 한순간 풀밭을 벗어나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송아지가 헤엄을 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는 송아지를 따라 물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송아지는 소년 아버지보다 헤엄을 더 잘 쳤다. 아버지가 송아지를 끌어내오는 게 아니라 송아지의 힘에 이끌려 점점 물속으로 깊이 빠지게 되었다. 물이 목까지 차올라 위협을 하자 아버지는 결국 송아지를 놓고 혼자 물속을 헤엄쳐 나왔다. 송아지는 무엇 때문에 오리를 따라가려 했을까? 놀란 오리가 푸드덕 날아오를 기세로 물살을 타고 재빠르게 시야에서 멀어지자 송아지는 허우적거리며 오리를 따라 떠내려갔다. 냇가를 따라 아버지도 발을 동동 구르며 송아지를 따라갔다. 들판에서 일하던 동네 사람들 몇이 그 정황을 보고 있다가 달려들어 물속에서 송아지를 끌어내주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문 앞에 걸어두었던 다래나무 코뚜레를 꺼냈다. 작은아버지는 송아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는 동안 소년은 잠시 자기 손에 들린 코뚜레를 내려다보았다. 송아지의 코를 뚫은 다음에 송아지의 목 양쪽에 댈 가는 나무로 된 목대와 그걸 매어둘 끈 우넘기가 바닥에 놓여 있는 것도 바라보았다. 양푼 속에 담긴 흰 소금도. 이 단단한 것이 소의 연약한 살을 뚫고 들어가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광경이 떠올랐다. 코청을 뚫어 코뚜레를 건 다음에 목대를 송아지의 뺨에 달고 우넘기로 묶어둘 것이었다. 결박당한 송아지는 커다란 눈망울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막 떠오른 아침 햇빛이 송아지의 눈에 어룽졌다. 소년이 다가가자 송아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소년은 돌아서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누나와 동생에게 집으로 들어가라고 일렀다. 자신이 송아지의 코뚜레를 뚫는 모습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소년은 송아지의 고통을 덜어주려면 정확하게 한번에 뚫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뚜레 끝을 불에 달궈 소독을 마친 후에도 소년이 망설이자 작은아버지가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으나 소년은 코뚜레를 내주지 않았다. 내 송아지이니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므로.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땅을 딛고 있는 발바닥에 힘을 주었다. 소년은 코뚜레의 날카로운 끝을 결박당한 송아지의 코청에 박고 힘을 주었다. 코뚜레가 송아지의 코청을 뚫고 나올 때 손이 떨려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송아지가 내뿜는 더운 입김 속에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눈을 떠보니 송아지의 코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송아지의 몸부림에 핏방울이 소년의 얼굴에 튀었다. 소년은 누나가 가져다놓은 양푼 속의 흰 소금을 한움큼 집어 외조부가 일러준 대로 송아지의 코에 뿌렸다. 뚫린 코에 소금이 닿자 쓰라린지 송아지는 두발로 땅을 치고 일어서려 하면서 울부짖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소년은 뚫린 송아지의 코청에 다래나무 코뚜레를 걸고 목대를 송아지의 귀 뒤로 넘긴 뒤에 우넘기로 단단하게 묶었다.

 

   이후 소는 온전히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열네살에 양친을 잃은 아버지는 열다섯에 인근의 논과 밭을 거의 혼자서 쟁기질했다. 아버지는 남의 밭과 논에 쟁기질을 해주고 품삯을 받아 고모에게 주었다. 쟁기질해달라고 부탁받지 않았어도 아버지는 미리 알아서 쟁기질을 해놓았다,고 했다. 허락도 안 받고요? 내가 묻자 아버지는 어차피 모 심을라믄 쟁기질은 해야 쓰니까…… 했다. 내가 남의 집 논 허락도 안 받고 쟁기질해놓고 나중에 삯 안 주면 어쩔라고? 하자 아버지는 사람들이 그러든 안 햐,라고 했다. 그때그때 바로 못 주고 추수한 뒤에 나락으로 줄 때는 있어도 안 주든 안 햐,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버지 표정으로 봐서 아무래도 쟁기질해주고 삯을 못 받은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누가 삯을 안 줬어요? 물었을 때 아버지는 기억에 없다,고 했다. 기억에 있는 것 같은데도 아버지는 더이상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이틀 새에 부모 여의는 것을 다 본 사람들잉게…… 내가 소 끌고 논에 들어가 쟁기질을 하면 잘 갈아놔라, 했지 누가 쟁기질해놓으라고 했냐고는 안 하더라. 지금같이 다 따지고 셈하는 야박한 세상은 아니었응게. 글고 안 주면 할 수 없는 일이제, 어쩌긋냐.

 

   줄포로 시집을 가기로 되어 있던 고모는 부친을 여의고 우는 열네살 소년이었던 아버지에게 내가 너랑 함께 살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켜 아버지 옆에 남았다. 혼인식은 올렸으나 줄포로는 일년 후에 가기로 하고.

 

   오래전 이 집에서 어린 고모는 자신보다 더 어린 남동생 둘의 밥을 짓고 담장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호박씨를 묻고 빨랫줄에 옷가지를 빨아 널었다. 추운 겨울날엔 새벽에 일어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큰솥에 데워서 세숫대야에 찬물과 섞어 팔꿈치로 온도를 살펴서 내주고 겨울이면 언 신발을 불가에 세워 녹여주었다. 밤에 세 사람은 등불 켠 방의 벽에 손가락으로 동물 그림자를 만들며 놀았다. 개를 만들어 짖게 하고 독수리를 만들어 날려 보내고 말을 만들어 광야를 달리게 했다. 밤이 깊어지면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가운데에 고모를 두고 각각 등을 돌리고 잤다. 아버지는 열네살에 어두운 벽을 응시하며 이제 나는 이 집의 가장이라 이 집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양친이 없는 집이어도 열네살 소년, 아버지는 종손이었다. 제삿날이면 아버지의 작은아버지들과 작은어머니들, 당숙과 당숙모 들이 바가지에 쌀을 담아들고 와 윗목 한편에 나란나란히 두고 묵을 쑤고 두부를 만들고 전을 부치고 닭을 잡아 양다리를 묶어 삶아서 제사상에 올렸다. 아버지는 겨우 열네살에 부친에게 물려받은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송아지의 코를 뚫어 코뚜레를 걸었을 때 송아지가 허공을 향해 음매 소리를 내지르며 눈물을 흘리던 것을 생각했다. 이 집이 자신의 코에 구멍을 뚫고 코뚜레를 걸어놓아서 자신은 이제 이 집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송아지가 정말 울었어요? 묻자 아버지는 눈이 큰게로 눈물방울도 뚝뚝 떨어지더라,고 했다.

 

   아버지의 누나, 나의 고모는 끝내 남동생들만 두고 줄포로 갈 수는 없어서 나는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줄포 사람 고모부가 마을로 들어왔다. 내가 운전을 배워 처음으로 J시에 차를 운전해 왔을 때다. 자동차 뒷자리에 아버지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나갔다가 격포로 들어가는 먼지 이는 해변에서 ‘줄포’라 표기해놓은 이정표를 읽게 되었다. 지금의 곰소만은 옛날에는 줄포만으로 불렸다. 줄포는 어느 쪽이든 산이 급하게 꺾이는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산기슭과 닿는 물의 수심이 깊어서 줄포 주변으로 어항이 발달했다. 어부들은 조기와 새우 들을 잡아들이고 어획량이 풍요로울 때 남은 것으로 젓갈을 담갔다. 나는 운전을 하다가 아버지에게 “아버지, 이 줄포가 그 줄포예요?” 물었다. 때로 오랜 시간들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서사를 겅중 건너뛰어 이런 엉성한 질문이 통하는 관계가 가족이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맞다, 이 줄포가 그 줄포”라고 대답했다.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용해진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줄포 사람, 고모부는 반은 어부이고 반은 농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