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19회

민규가 하는 일은 간단해 보였다. 먼저 ‘사장’에게서 연락을 받는다. 2년 가까이 일하고 있지만 민규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민규가 아는 건 그의 전화번호뿐이었다. 그쪽에서 민규에 대해 아는 것은 전화번호, 그리고 통장 계좌번호였다. 연락은 언제나 문자메시지로 했다. 새로 가야 하는 곳의 주소와 함께, 시작해야 하는 날짜도 적혀 있었다. 시작 날짜는 대개 문자발송일로부터 3, 4일 후였고, 급하게는 하루 뒤인 때도 가끔 있었다. 그래도 어차피 다 서울 안이었고 대개는 강남권이어서 이동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2주간’이라는 식으로 기간이 명시된 적도 있었지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동 당일에 현관 비밀번호가 역시 문자메시지로 전송되어왔다. 이번 집처럼 보안업체의 카드가 있는 경우에는 카드가 보관된 장소의 위치를 일러주었다. ‘우편함’이라고 적힌 식이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그의 업무의 시작이었다.

그가 처음 만나는 집은 잔뜩 어질러진 상태였다. 누군가 살다 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실내에서 그가 하는 일은 청소였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걸레질을 하고 온 집 안의 유리창과 거울을 깨끗이 닦아낸다. 더러워진 침구를 벗겨내고 벽장에 있는 새 침구로 교환한다. 대청소가 끝나고 나면 그의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그의 일은, 거기에 사는 것이었다. 아니, ‘사는’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연은 생각했다. 산다는 말에는 생활의 냄새가 포함되어 있었다. 밥 짓는 냄새, 세탁세제의 냄새 같은 것이.

민규는 다음 연락을 받을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자신의 짐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신의 자취는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집 안의 바닥과 가구의 먼지를 털었고 이틀에 한번씩은 물걸레청소기를 돌렸다. 욕실을 사용하고 나면 물 한방울 없이 깔끔하게 정리했고, 주방은 사용하지 않았다. 모두 ‘사장’이 지시한 대로였다.

“진짜 배고플 땐 컵라면 정도는 먹어도 돼. 물론 먹고 난 쓰레기는 금방 치워야지.”

“왜?”

“집 보러 오는 사람들이 불쾌할 거 아니야.”

“누가 여길 보러 와?”

“응. 내가 나가 있을 때.”

민규가 출근해 있는 낮 동안 종종 이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 사람들을 데려오는 이가 사장인지 누구인지는 민규도 알지 못했다.

“오빠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미리 문자가 와. 삼십분 후 도착, 이라고. 그러면 내가 나가 있어야지.”

알쏭달쏭한 상황이었다. 그 집을 보러 왔던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한다는 사실을, 민규는 새 집의 주소가 담긴 문자메시지를 받는 순간에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대청소를 하는 것으로 한 집에서의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니까 오빠는 빈집을 지키는 관리인이네? 집사 같은 거.”

지연은 불쑥 말했다. 어쩌다 집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는지 몰랐다.

“응. 그렇게 볼 수도 있지.”

민규가 예의 진지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그럼 전에 살았다는 반포도 그런 집?”

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기가 머물렀던 집들의 동네를 손가락으로 꼽아 보였다.

“대치동, 청담동, 잠실, 삼성동……”

“주인이 다 같은 사람이야?”

민규가 어깨를 으쓱하는 시늉을 했다.

“나도 몰라. 아마 그렇지 않을까.”

“대단하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지연의 입술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민규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냉장고를 열어 대용량 우유팩을 꺼냈다.

“먹는 건 안 되지만, 마시는 건 괜찮아.”

그들은 밤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찬 우유를 마셨다. 맥주나 와인 같은 것이 어울리는 밤일지도 모르지만 민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주 직업이 운전인데, 그러면 안 되지.”

민규는, 지연을 만나기 전에는 저녁 알바를 쉬는 일요일 밤마다 대리운전도 했다고 했다. 이 사람은 굉장히 열심히 사는구나. 지연은 새삼 그런 생각을 했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이 집을 사가는 건가?”

“아니. 렌트. 한달이나 두세달씩.”

“왜 그렇게 짧게?”

“모르지. 음, 예전에 한번은, 깜빡 잊고 내 칫솔을 욕실에 두고 나온 거야.”

지하철을 타고 새집에 가는 중에 알아채서 다시 가지러 갔는데, 그사이 현관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고 했다.

“아무튼 그다음엔 세면도구도 꺼내놓지 않는 게 습관이 됐어. 방심하지 않도록.”

어떤 집에 머물면서 방심하지 않고 사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오래 바라보니, 창밖의 주황색 불빛들이 서서히 눈알을 찔러오는 것 같았다. 지연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검색창에 그 건물의 이름을 입력해보았다. 규모와 면적, 입주일자, 학군, 그리고 매매가와 전세가, 월세가 정보까지 차례로 나타났다. 이 주거용 오피스텔은 올해 초에 입주를 시작했으며 현재 한강조망권 호수의 매매가는 10억이었다.

“십억.”

지연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그 숫자는 도무지 현실의 것 같지 않았다.

“여기가?”

민규가 놀랐다. 검색 한번이면 알 수 있는 사실을 민규가 지금껏 알려들지 않았다는 것이, 지연에게는 더없이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