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통신뉴스사의 경찰 출입 기자가 단신 기사를 송고한 것은 오전 11시쯤이었다. 그것은 삼십분 뒤, 포털사이트 뉴스 섹션의 사회 카테고리 주요기사로 노출되었다. 순식간에 백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사회 곳곳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
추천수가 가장 많은 댓글의 내용이었다. 뒤이어 추천수가 높은 댓글은 ‘명탐정 김전일 출동해주세요’였다. 곧바로 인터넷신문사들 몇군데가 기사 원문을 그대로 받아썼다. 오후가 되자 관련기사들이 다수 쏟아져 나왔지만 첫 보도 내용에서 크게 발전한 것은 없었다. 유력정치인 아들의 배임 횡령 문제가 인터넷을 달구던 무렵이었다.
이틀 후 국과수의 지문과 디엔에이 감식 결과가 나왔다. 그사이 유족이라고 나타난 이는 없었다. 이틀 사이 네티즌의 관심도 유력정치인 아들로부터 영화배우의 파혼스캔들로 옮겨가 있었다.
운전자는 김민규(27세, 경기도 의정부시), 그 외 남성 변사체는 남재현(36세,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으로 밝혀졌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데에 수사력이 모아졌다.
*
분유를 타고 있는데 계속 전화벨이 울렸다. 지역번호 031로 시작되는 번호였다. 박복선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받지 않았다. 처음 휴대전화기라는 것을 소지한 이래 줄곧 그래왔다. 낯선 이의 호출은 성가시거나 위험했다. 보이스피싱 전화도, 사채업자의 끄나풀에게서 걸려온 전화도, 피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젖병에 뜨거운 물을 붓다 잠시 멈추고 한손으로 전화기를 조작해 벨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다.
뜨거운 물을 마저 붓고 찬물을 섞어 젖병을 힘껏 흔들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이렇게 뒤섞여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면서. 소서에 누운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박복선은 본능적으로 거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둥그런 카메라가 어김없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득달같이 달려가 아기를 안아 올렸다. 어르는 시늉을 하면서 주방으로 데리고 갔다. 싱크대 앞은 CCTV의 사각지대였다.
집안 다섯군데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입주한 것은 아니었다. 아기의 부모는 시터 직거래 사이트의 구인광고에 분명히 밝혀두었다. 내 아이처럼 돌봐주실 분 모십니다, 주 5일 입주, 6개월 여아 전담, 40평 아파트, 엄마아빠 바쁨, 집에서 식사 안 합니다, CCTV 괜찮은 분만 연락주세요. 마지막에 붙은 단서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러기엔 앞의 조건들이 퍽 매력적이었다.
숨어 있기는 남의 집이 최고라고 말해준 사람은 교회의 여성 쉼터에서 만난 경순 언니였다. 주중에는 신도시의 맞벌이 부부 집에서 아이 보는 일을 하고 토요일이면 쉼터로 오는 사람이었다. 박복선의 사연을 궁금해하는 눈치를 보이기에, 때리는 남편을 피해 도망 나와 있다고 둘러댔다. 쉼터 사람들도 대충 비슷하게들 짐작하고 있었다. 전화를 걸자, 아기 엄마로 짐작되는 젊은 여자가 즉시 면접을 보러 올 수 있겠느냐고 했다. 지하철을 내려 언덕 위로 한참 걸어 올라가니 30층은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은 아파트 몇채가 모인 단지가 나타났다. 23층의 거실에서는 통유리창 너머 아랫동네가 환하게 내려다보였다. 이 안에 들어 있으면 정말로 아무도 자신을 찾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아기의 부모는 말투나 태도가 조심스럽고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박복선으로서는 거의 접해보지 않은 유형이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기껏해야 우리 민철이 또래일 텐데, 공부는 잘했겠네, 이런 집은 전세로 얼마쯤 할까, 그녀는 속으로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경력은 어떻게 되는지 아기 아빠가 물었다. 두살짜리 아이가 있는 집에 들어가 4년을 봐주었다고, 자신은 원래 정이 많아 조건 따라 여기저기 옮기지 못한다고, 그 집이 미국에 나가게 되어 할 수 없이 그만두었다고, 미국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도 여기 가족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박복선은 대답했다. 경순 언니가 들려주었던 다른 도우미들의 사례를 한데 모아 머릿속에 넣어두었을 뿐인데 그런 이야기가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인상이 참 좋으세요.”
아기 엄마가 말했다. 박복선은 쑥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살면서 여러번 들어온 말이었다. 어글어글하면서 상냥한 눈매 덕분이었다. 천하에 게으른 도박꾼이던 아버지가 남겨준 유일한 유산이었다. 자신이 세 아이들에게 물려준 유일하게 바람직한 것이기도 했다. 처음에 그녀를 믿었다가 나중에 피해를 본 이들이, 그렇게 착한 얼굴을 하고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고 분개할 때면 그녀는 혀를 쏙 내밀고 싶어졌다. 믿어달라고 강요한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었던 건, 믿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을 뿐이다.
싱크대 앞에 선 채 아기의 입에 젖병 꼭지를 물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하고서 아기는 실리콘꼭지를 쭉쭉 빨았다. 박복선은 손등으로 아기의 눈물을 닦아냈다. 아기의 표정이 금방 편안한 인상으로 바뀌었다. 인간이 나이가 들면 변한다는 말은 틀린 것 같았다. 지금껏 그녀는 어린 아기를 좋아한 적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존재의 그 무구함이 두려웠다.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도착했다. 아기 엄마였다.
“재인이 잠들었나요? 오후에 또 비가 내린다니 창문 다 닫아주세요.”
CCTV에 왜 보이지 않느냐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이었다. 에이씨. 박복선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동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당연히 아기 엄마인 줄 알았다. 미처 번호를 확인하지 못한 채 얼떨결에 받아 든 건 실수였을까, 운명이었을까. ‘경찰서입니다’라고 저 너머의 남자가 말했을 때 황급히 끊었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남자는 김민규를 아느냐고 물었다.
“김, 민규요?”
그 이름을 처음 듣는 것처럼 박복선은 의아하게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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