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대통령의 시간을 위하여

강경석
강경석

강경석                                

한반도 남북은 여전히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문법까지 제대로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에서 예상 못한 북의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연이은 대남성명 등으로 이는 새삼 분명해졌거니와 굳이 남북 당국자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한반도 주민 누구나 다음 두가지 물음을 제기해봄 직하다. 남북 가운데 상대의 문법에 더 무지한 쪽은 어디인가. 그것은 정말 모르기 때문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부인하려 들기 때문인가. 후자는 물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포함한 질문이 될 것이다.

 

북이 이미 실행했거나 실행을 예고한 일련의 조치들과 대남 비난의 표현 강도로 볼 때 당장의 상황 반전은 어차피 쉽지 않다. 남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단들도 크게 제약되었는데 그 자체가 북이 의도한 바다. 이 틈을 비집고 수구보수 세력의 대북압박-북한 붕괴 시나리오가 슬그머니 준동하지만 마땅한 수단도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던져보는 지지층 내부용 메시지라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안다. 더이상의 상황 악화를 제어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쪽이 상식에 준할 것이다. 이런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불가피해져버린 당분간의 냉각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자세를 가다듬는 일이 우선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된 김여정 담화문(6.17)을 진지하게 독해해볼 만하다. 하노이 ‘노딜’ 이후의 남북관계와 상호 이해의 현실을 반영하는 ‘역설의 거울’로서 이만한 문건이 나온 적은 없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담화문의 표면적 핵심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김정은 위원장을 모독하는 내용의 대북전단 살포를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것, 둘째는 남측 정부가 ‘친미사대주의’에 포획된 나머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전혀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다. 도를 넘는 비판적 수사들을 제외하고 메시지만 보면 그리 불합리한 지적이라고 하긴 어렵고 별도의 저의를 습관적으로 의심하기보다 문면에 드러난 비중을 존중해 읽는 일이 일차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첫째와 관련 “판문점선언 2조 1항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방송과 삐라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할” 것이 명기되어 있음에도 대북전단 살포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요지인바, 여론 분열을 의식한 남의 정치적 일정들을 감안하더라도 2년이면 상식적으로 너무 긴 시간이 지체된 셈이다. 사후약방문 격으로 벌써 빛을 잃은 데다 입법절차가 야기하는 지루한 소모전을 무릅쓰더라도 구체적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오히려 풀기 쉬운 문제일지 모른다. 문제는 오히려 두번째 사항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바와 같이 훌륭했던 북남합의”라는 표현에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북의 평가가 또렷이 담겨 있다. 그리고 “북남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실무그룹≫”이라는 대목에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그들의 상황인식이 담겨 있다. 소위 한미워킹그룹이 남북협력사업의 마디마다 제동장치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은 최근 남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남북 당사자들 간의 관계 진전과 소위 한미공조를 비롯한 국제공조의 조화가 이상적일 순 있지만 현실에서 양자는 꾸준히 상충해왔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들이 지속되어왔다. 그런데 그것은 글자 그대로의 상충이라기보다 한미공조 우위로 수렴되어온 편이라는 것이 북의 진단인 셈이다. 이러한 문제는 진작부터 남에서도 상당수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이 담화문이 김여정 부부장 명의로 발신되었고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 보류를 지시(6.24)함으로써 양자의 역할분담이 뚜렷해졌다. 미국 또한 연임 위기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과의 여전한 친분을 과시하고 있는 트럼프와 고압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실무그룹 간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다. 그에 비해 남의 외교, 안보, 통일 부처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편이다. 남북협력 사업의 진전과 비핵화를 통한 북미관계 개선의 양대 과제가 상호작용하는 관계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를 단일과제로 접근할 경우 어느 쪽으로든 남의 주체적 행동반경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면에서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해 보인다. 한미워킹그룹의 해체가 대미 관계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통일부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식 등으로 외교, 안보, 통일 사이의 기능과 위상을 재편함으로써 태세를 재정비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남아 있는 대통령의 시간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번 담화문에서 문면에 드러난 메시지 이상으로 중요해 보이는 것은 “(남측의―인용자) 그 꼴불견 혼자 보기 아까워 우리 인민들에게도 좀 알리자고 내가 오늘 또 말폭탄을 터뜨리게 된 것”이라는 담화 발표의 이유를 제시한 대목이다. 북 특유의 강도 높은 비판적 수사들은 “우리 인민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선대의 핵-경제병진노선을 과감히 폐기하고 경제건설총력집중노선을 채택한 북이 남측 대통령의 평양연설까지 열어주며 “우리 인민들”에게 던진 희망의 메시지는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 국면의 지속으로 상당 부분 희석된 것이 사실이다. 3대세습의 독재체제라고 말하면 주민들의 생활상의 요구들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북의 인민들을 무슨 꼭두각시처럼 생각하는 데서 모든 오류가 시작되는 것이다. 왕조시대에서조차 민중이 오직 노예이기만 했던 역사는 없었다.

 

그러나 북의 언어에는 “우리 인민들”만 있을 뿐 남의 촛불시민들에 대한 고려가 없거나 희박하다. 남북 당국이 당사자로서 주체적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면 그 주체성의 토대가 되는 남북 주민들에 대한 동시 고려는 필수다. 이는 “우리 인민들”의 장래를 위해서도 교정되어야 할 타성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미래를 위해 새로운 노선을 담대하게 선택했다면 “우리 인민들”을 새로운 언어와 문법의 장으로 견인할 책임도 있으며 그것을 남측 촛불시민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남측 순서다. 남북 주민들의 어긋난 문법들을 동시에 고려해야 할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남아 있는 대통령의 시간은 오직 그러한 책임을 얼마나 감당해내느냐에 의해 그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강경석 / 문학평론가

2020.6.24.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