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아르헨띠나 한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수교 60주년을 맞아

송지영

송지영

2022년 10월 30일 아르헨띠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실리아(Sicilia) 광장에서 ‘제3회 한상 길거리 한식 마켓’(Hansang Street K-Food Market)이 열렸다. 한인 요식업, 식품산업 관계자들의 모임인 ‘한상’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시(市)정부가 함께 개최한 이날 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김밥 떡볶이 어묵 떡꼬치 만두 잡채 등 한국의 길거리음식을 즐겼다. 이 행사는 11월 1일부터 8일간의 ‘한국음식주간’으로 이어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러 한국음식점을 통해 다양한 한식문화가 아르헨띠나 사회에 소개됐다.

 

아르헨띠나에서 한국음식은 인기가 많다. 필자가 만난 현지 사람들은 한식을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한 ‘건강한 음식’이자 반찬이 풍성한 ‘나눔의 음식’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그 덕분인지 지난 2021년 10월 아르헨띠나 상원은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지정했다. 아르헨띠나에 처음 갔던 2001년만 해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한국에 고유한 언어가 있는지, 한국에서 무엇을 먹는지, 아직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살고 있는지 등의 질문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20여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뀐 셈이다.

 

한국에서 아르헨띠나로 가기 위해선 비행시간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 중 하나인 아르헨띠나에서 한국음식이 인기가 있는 것은 한국정부나 케이팝스타가 부른 한류 열풍 때문만도 아니다. 그 저변에는 오랜 기간 이곳에서 한국음식을 지켜온 한인들이 있었다. 1960~70년대 맷돌과 항아리를 이민 짐에 실어 와서 두부와 장을 만들던 한인들은 아르헨띠나에서 구할 수 없는 식재료를 공수하고 만들어내면서 한국음식을 지켜왔다. 아르헨띠나에 석화 굴과 부사 사과를 보급한 것도 바로 한인들이다. 한국음식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한인사회에 전해지기도 한다. 버리는 소뼈를 한인들이 갖다 고아 먹어서 이제는 정육점에서 돈을 받고 소뼈를 팔게 되었다는 이야기, 바닷가에서 한인들이 조개를 잔뜩 줍는 바람에 조개 채취가 금지되었던 일, 냄새나는 은행을 길에서 잔뜩 주워 택시를 탄 어머니에 대한 일화에는 낯선 땅에서 익숙한 맛을 구하기 위해 열심이었던 아르헨띠나 한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다가오는 11월 2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한국문화의 날’ 행사가 3년 만에 대면으로 개최된다. ‘한국문화의 날’은 아르헨띠나 한인들이 추석을 즐기고 한인사회의 단합을 다지기 위해 1989년에 만든 ‘민속의 날 교민대제전’을 기원으로 하며, ‘추석 축제’ ‘한가위 축제’ 등을 거쳐 ‘한인의 날’로 불리다가 2017년부터 ‘한국문화의 날’이 되었다. 2013년부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시가 주관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셀레브라(Buenos Aires Celebra, 아르헨띠나에 사는 다양한 종족집단의 문화, 역사, 정체성 등을 공유하기 위해 시정부가 만든 축제)에 이름을 올려 한인만의 행사가 아닌 시의 축제로 자리매김하기도 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에는 5만여명이 참여하는 등 큰 규모로 이어져왔다.

 

축제가 열리는 아베쟈네다(Avellaneda) 거리는 중남미 최대 의류 도매상가가 조성된 곳으로 아르헨띠나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장소이자 그들의 역사가 담긴 상징적인 공간이다. 아르헨띠나 한인사회는 1965년 8월 17일 배를 타고 부산을 떠나 10월 14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아르헨띠나 1차 계약이민단 77명을 이민사의 시작으로 여긴다. 아르헨띠나 남부 리오네그로(Río Negro)주 뽀모나(Pomona)시에서 농업에 종사할 목적으로 왔던 1차 계약이민단은 경작이 불가능한 척박한 환경에 대해 전달받지 못했던 탓에 결국 대도시로 이주했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그들은 주로 옷 공장에서 일감을 받아 와 가내 봉제 일을 했다. 이후 한국정부는 해외 식량기지 건설의 꿈을 갖고 지속적으로 한인 이민자를 아르헨띠나에 보냈지만, 한국과 크게 다른 농업환경에서 집단 이민생활은 쉽지 않았고 대다수는 도시로 이주해 의류산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어 1985년 4월 「한-아간 한국이민 송출 및 접수절차에 관한 의정서」가 체결되면서 투자 이민자들이 대거 이주해 한인들의 의류산업이 급격히 발전했고, 지금은 아르헨띠나 중저가 의류시장을 대표하고 있다.

 

아르헨띠나 한인사회에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르헨띠나는 지난 시간 수많은 정치적·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아르헨띠나 한인은 새로운 위기에 놓였다. 특히 2020년 3월부터 12월까지 내려진 봉쇄조치로 인해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팬데믹 이전부터 어려웠던 경제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코로나19로 한층 심해진 아시아인 혐오와 인종차별은 한인들을 위축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아르헨띠나 한인사회는 의외의 행보를 보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취약계층을 위해 식료품과 마스크를 기증하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방역 성금’ 모금운동을 진행하여 아르헨띠나 정부기관 및 병원에 방역물품을 지원했다. 여러 한인단체들도 나서서 한인 취약계층과 빈민지역에 식료품, 생필품, 의료용품 등을 전달했다. 아르헨띠나 한인 2세 청년들은 SNS를 중심으로 ‘CoreaSeUne’(한국이 함께한다) 캠페인을 벌이며 마스크와 의료용 모자를 제작해 아르헨띠나 병원에 기증했다. 한인들은 이웃을 돕는 서로를 자랑스러워했으며, 현지 관계자들로부터 물자가 부족해 어려운 때 큰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시간 고된 시기를 겪어내며 쌓아온 아르헨띠나 한인들의 저력을 볼 수 있었다.

 

올해는 한국과 아르헨띠나가 수교를 맺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11월 25일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기억의 박물관’에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린다. 남미 최초로 설치되는 것인데, 여기에도 아르헨띠나 한인사회의 노력이 있었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역사를 꾸준히 기록해왔고, 『아르헨티나 한인 25년사』 『아르헨띠나 한국인 이민 40년사』 『아르헨띠나 한인이민 50년사』 등 재외한인사회 중 가장 많은 이민사를 편찬했다. 앞으로 이들이 써나갈 60년사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는 아르헨띠나 ‘한국문화의 날’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팬데믹으로 힘들었던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하나가 되는 시간을 보내기를 지구 반대편에서 진심으로 바란다.

 

 

송지영 / 문화인류학자, 강원대 강사

2022.11.15.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