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초가집이 헐린 자리에 새로 지은 파란 슬레이트 집은 어느 해 겨울날 쌓인 눈의 무게를 못 견디고 지붕이 내려앉았다. 봄이 오면 아버지는 지붕을 수리했다. 한번 내려앉은 지붕은 다음해 겨울에 또 내려앉았다. 봄을 기다렸다가 아버지는 지붕을 또 수리했다. 그다음 해 겨울에 지붕은 한쪽이 아니라 거의 반이 내려앉아 집이 비틀려 보일 지경이 되었다. 아버지는 94년에 이 집을 지었다. 나의 첫 장편소설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을 때였다. 거실로 들어오는 현관문이 생겼다. 아버지는 셈을 해보다가 심야 전기와 기름보일러를 같이 설치했다. 거실에는 소파가, 안방에는 침대가 놓였다. 새집인 것은 맞는데 아버지는 집의 위치와 방의 모양을 똑같이 설계했다. 새집은 여전히 서향이었고 방이 들어선 자리도 대문의 위치도 똑같았다. 아궁이를 사용했던 시절에 재소쿠리를 대고 아궁이 속의 검은 재를 긁어 담아서 쌓아놓던 잿간이 소용없어져 옆의 헛간과 트는 통에 헛간이 넓어졌을 뿐이다. 마당이 내다보이는 헛간에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세워놓았다. 여름이면 마당에 내놓았던 평상이 겨울이 되면 헛간에 놓이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여름에도 헛간의 그 자리는 평상 자리가 되었다. 평상에는 사람이 앉는 게 아니라 안으로 들여놓으려면 손이 필요한 것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껍질을 벗겨야 하는 마늘 단이나 논물에 들어갈 때 신는 긴 장화나 감을 딸 때 쓰는 대나무 장대 같은 것들. 아버지나 엄마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잠깐씩 헛간 평상에 엉덩일 붙이고 앉아서 덧말들을 나누다 가기도 했다
아버지는 나중에 헛간과 터져 있던 잿간 자리에 엄마의 요구대로 따로 문을 달고 벽에 칸을 쳐서 허드레 살림을 쌓아놓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곳은 곧 엄마의 광이 되었다. 엄마는 그곳에 냉장고까지 들여놓고 큰 통에 물김치를 담아 넣어두거나 찹쌀고추장을 작은 통에 나눠 따로 담아놓았다. 서울에서 자식들이 오면 한통씩 나눠주는 게 엄마의 일이었다. 깻잎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한편에 깻잎으로 만든 여러 종류의 음식이 담긴 통들이 들어 있기도 했다. 깻잎김치, 깻잎조림, 된장에 박아두었다가 꺼내놓은 깻잎절임. 안으로 들어가서 냉장고를 열어보자 고추장이며 된장 들을 나눠서 넣어놓은 통들이 가득이었다. 한칸엔 커다란 물김치통에 또 한가득 물김치가 들어 있었다.
이 물김치군.
물김치통을 보자 나는 여동생이 엄마와 벌였다는 실랑이가 생각나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다리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된 후 여동생은 엄마를 위해 우족을 고아서 J시에 들고 왔다. 엄마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힘들게 뭔 이런 것을……이라고 했지만 엄마로서는 당황스러웠을지도. 여태 자신이 음식을 만들어 날라다주었는데 역으로 딸이 음식을 만들어 들고 오는 상황이 낯설었을지도. 엄마가 우족 고은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긴 했다. 엄마는 한두끼는 여동생이 떠주는 대로 먹다가 나중에는 물김치하고만 밥을 먹었다. 여동생은 엄마! 하고 불렀다. 엄마가 왜? 하는 눈으로 여동생을 보았다.
―정말 이러기야?
자신이 만들어온 우족탕을 먹지 않는 엄마가 서운한 여동생의 눈에 눈물까지 고였다.
―물김치만 먹기야?
엄마는 물김치가 시원하고 맛있다,고 했다. 엄마의 말에 여동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부엌 바닥에 철버덕 주저앉았다.
―아니 왜 영양가도 없는 물김치만 먹어? 우족 고은 거 드시라고요! 내가 저거 만드느라고 열몇시간을 가스불 앞에 서 있었는데 왜 물김치만 먹어!
엄마는 처음엔 놀라서 쳐다보다가, 아니 나는 뭐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내 마음대로 못 먹냐? 대꾸했다. 그러자 여동생은 아예 발을 뻗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엄마에게 소리쳤다.
―내가 저 물김치통을 내다가 밭에다가 다 뿌려버릴 거야!
여동생이 J시에 다녀와서 전하는 엄마와의 실랑이를 듣고 있다가 그래서? 물김치를 밭에다 뿌리고 왔냐? 물으니 여동생은 그렇다는 얘기지 뭐 내가 진짜로 그렇게 했을까봐서…… 대답하면서도 웃지는 않았다. 여동생은 자기가 만들어온 우족탕을 엄마가 먹지 않는다고 발을 뻗고 울고 나니 민망했겠지. 팽하니 엄마 앞을 지나서 작은방으로 들어가 앉아 있었을 것이다.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본 듯이 말해?
내가 웃었다. 아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러니까. 엄마는 작년에 부엌에서 매생이전을 부치다가 주저앉아 일어나지를 못했다. 셋째오빠의 차에 실려 와 강남의 정형외과에 입원해서 허리 수술을 하고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두달을 요양원에서 보냈다. 지금도 엄마는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가만가만 걷는다. 눈물을 글썽이며 작은방 책상에 앉아 있는 여동생에게 갈 때도 엄마는 보행기를 밀고 갔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어째 속이 쓰렸는디 니가 해온 우족탕을 두끼를 먹었더니 속이 따뜻하고 편안해졌다며 입이 나온 여동생을 달랬다고 했다. 여동생의 표정이 풀어지자 엄마는 사실은 제대로 걷지를 못하니 운동이 부족한데다 기름진 거 계속 먹으면 살찔까봐서 물김치를 먹은 거라고 고백했다고. 아이쿠, 싶었다. 아니나 다른가. 그래서 뭐랬니? 내가 묻자 여동생은 속사포로 엄마에게 내쏘았다고 했다.
―무슨 살이 쪄? 그래서 물김치만 먹어? 물김치가 염분이 많아서 더 살쪄! 아무렴 내가 엄마한테 해로운 음식 해가지고 왔겠어, 뭘 알지도 못하면서……
여동생은 울적한 목소리로 언니, 엄마한테 내가 왜 그러지? 물었다. 왜 내가 엄마한테 말을 그따위로 하지? 나 그런 사람 아니잖아?라고도 했다. 그렇긴 하다. 나라면 모를까, 여동생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동생이 길동에서 약국을 운영했을 때 그 약국에 가본 적이 있었다. 내가 약국에 도착했을 때 약을 지으러 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약국 조제실 옆에 작은 방이 딸려 있었다. 여동생의 일이 끝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 기다리기로 했다. 약국에서 나누는 대화가 방 안에까지 들렸다. 처음엔 여동생이 약을 지으러 온 사람들과 얘기를 많이 한다고만 생각했다. 나중엔 대체 무슨 얘기를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지? 싶어서 가만 귀를 기울였다. 여동생은 약을 지으러 온 사람들에게 약은 응급처치일 뿐이라며 약에 깊이 의존하지 말고 몸이 스스로 자생력을 갖도록 꾸준히 해야 하는 운동을 권유하고, 속탈이 난 사람에게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속탈에 대한 설명을 조곤조곤 하고 있었다. 목소리 굵은 어떤 남자가 지난번에 고마웠다면서 자기는 도장을 파는 사람인데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거라며 여동생에게 도장을 선물하는 소리도 들렸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데리고 와서 젊어서는 집에도 잘 안 들어오더니 지금은 저렇게 나만 졸졸 따라다녀서 약도 함께 지으러 왔다고 혀를 차며 할아버지 흉을 보는 소리에 이거 할아버지 드시게 하라면서 마실 것을 내주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여동생에게 여유가 생기기를 기다리다가 약을 지으러 온 사람들과 도란도란 조곤조곤 얘기하는 여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벽에 기댄 채 잠이 들어버렸다.
여동생에게 엄마라서 그랬을 거야,라고 하려다가 엄마한텐 그래도 되는가? 싶어져 무심코 시 읽어줄까? 물었다.
―시?
―응 시.
―무슨 시?
―브레히트의 시.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를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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