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22회

   여동생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들려주는 시였다.

   ―제목이 뭐야?

   다 듣고 나더니 여동생이 물었다.

   ―나의 어머니.

   제목을 듣고는 여동생은 깊은 숨을 쉬었다.

   ―언니 그런데 정말 우족 고은 거 먹으면 살이 찔까?

   ―어째 살찔 거 같은데?

   나의 농담에 여동생은 정말 언니까지 이럴 거야! 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드시디? 이어 묻는 내 말에 응…… 아버지는 한그릇씩 연속으로 드셨는데 설사하셨어, 맥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도 아버지도 근육이 점점 줄어들어, 단백질 섭취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여동생의 목소리가 곁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물김치통을 손으로 쓸어보고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이 집은 나에게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뭘 봐도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인지. 냉장고 문을 닫고 휘둘러보니 한쪽 편에 자전거가 한대 세워져 있다. 냉장고 앞을 떠나 자전거를 향해 걸어갔다. 안장을 덮어놓은 비닐도 뜯지 않은 새 자전거다. 자전거 앞에 달린 것을 아무거나 만져보니 어느 것에서 따르릉, 소리가 났다. 맑은 소리였다. 나는 한번 더 따르릉 소리를 내는 것을 당겨보았다. 따르릉…… 엄마가 없는 집 엄마의 광에 따르릉,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나는 헛간에서 작은 문 쪽으로 걸어나왔다. 아버지는 국악원 모임에 무사히 참석을 했을 것인지. 내가 함께 가겠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싫은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나서려 하자 한사코 거부하기까지 했다. 백운 아저씨하고 함께 가는 것은 괜찮고 나와 함께 가는 것은 무엇이 불편한 것인지 서운할 지경으로. 도랑으로 연결되는 옆 대문을 거쳐 골목으로 걸어나오려다가 옆 대문 바깥쪽 시멘트로 덮인 길을 발로 쾅쾅 두들겨봤다. 지금은 시멘트로 덮여 있지만 오래전에 우물이 있던 자리다. 도랑 쪽에서 고샅을 걸어와 이 우물을 지나야 옆 대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집은 집 안에 우물이 있어서 그 우물물을 길어다 식수로 썼지만 집 안에 우물이 없는 몇집들은 이 우물물을 공동으로 썼다. 그때는 옆 대문이 나 있던 게 아니라 담이 쳐져 있었다. 담을 부수고 옆 대문이 생긴 후로는 신발에 모래가 들러붙었거나 얼굴이 땀범벅일 때는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우물물을 길어서 발에 쏟아붓거나 길은 물을 손으로 떠서 푸푸 세수도 했었다.

 

   이 자리에 있던 우물은 왜 메워버렸을까?

 

   나는 옆 대문과 이어지는 담장을 바라보았다. 담장 안쪽으로는 우리 집이고 담장 바깥쪽으론 옆집이다. 옆집에서 보면 그 반대일 것이다. 나는 시선으로 담장을 쭉 따라가다가 어디쯤에서 멈추었다. 저 자리일까? 담과 담 사이가 이어지지 않고 끊어져 있던 곳. 그게 정확히 어디쯤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옆집이 그때의 집이 아니어서 더욱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아무 쓸모가 없게 된 기억들. 처음부터 옆 대문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옆집이 작은아버지네 집이었다. 작은어머니 말에 의하면 처음 결혼했을 때는 우리 집에서 모두 함께 살다가 밭이었던 옆 땅에 집을 지어 작은아버지네가 이사를 했다고 했다. 그때 기와를 얹은 돌담도 같이 쌓았는데 작은아버지네와는 바로 통할 수 있도록 큰 감나무가 네그루 있던 우리 집 옆 마당과 작은아버지네 옆 마당 사이 3미터가량만 담을 끊고 이어 쌓아서 그 자리는 샛문이 되었다. 그 샛문으로 사촌 사이인 우리들이 참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가을이면 양쪽의 담장 위로 올라가서 익은 감을 따 담기도 하면서.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공간들. 그 샛문 사이로 작은아버지네 부엌이 보였다. 작은어머니가 짚에 불을 붙여 아궁이에 넣는 모습, 국자로 아욱된장국을 뜨는 모습, 밥물을 안칠 때 함께 익으라고 알감자를 넣었다가 꺼내는 모습…… 작은어머니가 끓이는 된장국은 특별히 맛이 있었다. 엄마에게 작은어머니가 끓이는 된장국이 왜 엄마가 끓이는 것과 다르냐고 물었다가 작은어머니가 그리 좋으면 건너가서 살아라 퉁생이를 듣기도 했지. 작은어머니의 된장국이 내게 맛있게 느껴졌던 비밀은 간단했다. 작은어머니는 된장국을 끓이면서 밀가루를 한 숟가락 풀어 넣었다. 그러면 국물이 되직해지면서 감칠맛을 보탰다.

 

   그렇게 어떤 기억은 각인된다. 나는 지금도 입맛이 없을 때 작은어머니의 된장국 생각이 나고 그때면 뚝배기를 가스레인지 위에 얹고 다시마 육수를 붓고 된장을 풀고 애호박을 썰다가 생각난 듯이 밀가루 한 스푼을 육수에 풀어 넣어보니까.

 

   그리고 여름밤들.

 

   아버지는 지금도 밀가루가 재료가 되는 음식은 국수 외에는 입에 대지 않는다. 특히 수제비. 아버지는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제비를 먹었다. 매끼가 거의 수제비였다. 어느날부터 수제비를 먹고 나면 으깨진 수제비가 목으로 다시 넘어와 입안을 메웠다. 한번 생목이 올라오면 온종일 입안에 밀가루 냄새가 고여 있었다. 밀가루도 귀해서 쑥을 캐거나 산에서 벗겨 온 소나무 껍질이나 느릅나무 껍질을 수제비에 섞어 끓여 먹던 때라 나무껍질 사이로 어쩌다가 수제비가 동동 떠다녔다고. 아버지는 그때는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뭐든 먹었다며 살어야 허니까,라고 덧붙였다. 아버지가 밀가루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니 엄마는 자연스레 수제비나 칼국수를 만들지 않았다. 작은어머니는 여름밤이면 수제비를 자주 끓였다. 칼국수는 손이 많이 가지만 수제비는 여름밤에 뚝딱 해낼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이었다. 작은어머니가 큰 양푼에 밀가루를 붓고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반죽을 치댈 때부터 나는 기대에 차서 작은집의 사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러도 가지 않고 사촌들 사이에 끼어서 작은어머니의 수제비가 어서 다 끓여지기를 기다렸다. 작은어머니가 솥뚜껑을 열고 끓는 물에 반죽을 똑똑 떠 넣을 때면 입안에 벌써 침이 고였다. 나는 어서 먹고 싶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상을 펴고 숟가락을 놓아두었다. 부엌에서 수제비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는 나뿐이었을지도. 상 위에 수제비가 오르면 또 수제비야? 투덜거리는 사촌들의 목소리. 상 위엔 반찬 하나 없이 수제비뿐이었다. 어쩌면 작은어머니는 반찬 없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게 수제비여서 그리 자주 끓였는지도. 어쨌거나 나는 엄마는 만들지 않는 작은어머니의 그 수제비가 항상 조금 더 먹고 싶었다. 고명 하나 없이 그릇 속엔 맑은 국물에 수제비만 떠 있었던 그 담담했던 맛. 나는 수제비가 내 그릇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서 아껴가며 먹었다. 사촌들이 반은 남겨놓는 국물이 아까워 얼른 내 그릇에 부어놓기도 하면서. 맛있냐? 물으며 작은어머니가 내 그릇에 수제비를 한 국자 더 퍼주면 배불러 작은엄마, 하면서도 또 다 먹었다. 마늘 찧은 것과 소금만 넣어 간을 맞춘 수제비는 식은 후에도 맛있었다. 작은집 마당에 펼쳐진 덕석 위에 모여서 후루룩후루룩 수제비를 먹던 시간에 같이 있었던 내 사촌들, 형이 언니, 정식이 오빠, 선숙이, 정아, 민자, 완식이…… 수제비 상이 물러나고 우리는 마당에 깔아놓은 덕석 위에 나란나란 누워서 수제비로 채운 배를 여름 밤하늘 아래 드러내놓고 장난질을 쳤다. 누군가 간지럼을 태우고 누군가 발장난을 치고 누군가 웃음을 참지 못해 하지 마, 하지 마…… 소리치며 덕석 밖으로 데굴데굴 구르며.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때라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워 하늘의 별들은 유난히 더 반짝였다.

 

   그 샛문이 사라진 건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