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23회

   막내가 내 등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때였으니 나는 여덟살이었겠다. 아기였던 막내는 내 차지였다. 막내는 다 잊은 것 같은데 내 어린 시절에 막내는 붙박이처럼 내 옆에서 울고 있거나 웃고 있다. 막내는 엄마라는 말 다음엔 아마도 나를 부르는 “누우나”라는 말을 세상에 내뱉었을지도. 막내가 나를 향해 누우나……라고 했을 때의 놀라움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옹알이를 하던 막내 아기가 어느 순간 나를 향해 첫말을 터뜨리던 그 순간에 빗방울처럼 퍼지던 기쁨과 설렘은 훗날 작품의 첫 문장을 쓸 때와 같았다. 여덟살이 된 막내를 집에 두고 J시를 떠난 후에도 나는 자주 막내가 나를 향해 첫말을 터뜨리던 그 순간을 생각했다. 그러면 무슨 일로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지곤 했다. 도시에서 불안과 고독에 빠질 때면 자연스레 막내가 “누우나”라고 나를 부르던 순간이 다가왔다. 그러면 사라지는 것 같던 그리움과 설렘이 차오르는 느낌이었으니까. 어느 때는 비관으로 늪에 빠지려는 나를 건져낼 요량으로 일부러 그 순간을 소환할 때조차 있었다. 암전되어 캄캄해진 머릿속 어딘가에 불이 반짝하고 켜지는 것 같았으니까.

 

   ―한번 더 불러봐.

   여덟살 내가 등에 업고 있던 막내를 앞으로 돌려서 한번 더 불러보라고 한다. 아기 막내는 눈을 껌벅거리며 누우나…… 한다. 나는 등에 얼굴을 묻고 자는 막내를 또 앞으로 돌려서 누나……라고 불러봐, 한다. 선잠 깬 아기 막내가 울음을 터뜨린다. 아기 막내는 짜증이 나 울면서도 “누우나” 한다.

 

   한여름이었지 싶다. 집에 있었던 것을 보면 여름방학이었을지도. 아버지가 집을 비우고 있던 때였다. 더워서 우는 막내를 가마니 위에 앉히고 막내의 ‘누우나’인 여덟살 나의 계획은, 가마니를 끌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샛문을 지나 작은집 마당을 통과해 도랑의 팽나무 아래로 가는 것이었다. 작은집 마당을 막 지나려는데 마루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작은아버지가 일어나 앉으며 나를 향해 버럭 화를 냈다. 먼지를 일으키며 다닌다는 것. 작은아버지 말을 듣고 돌아다보니 내가 막내를 앉히고 끌고 온 가마니가 흙 마당에 질질 끌리면서 뿌옇게 먼지를 일으켜놓았다. 먼지 속에 앉아서도 막내는 나를 향해 있다. 작은아버지의 큰 목청에 지레 겁을 먹은 내가 그 자리에서 발을 뻗고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울자 나의 붙박이였던 막내도 와앙,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머리에 수건을 쓴 엄마가 내가 방금 가마니를 끌고 온 길을 부리나케 달려와 왜 우냐고 묻는다. 나는 마루의 작은아버지가 무서워 말도 못하고 계속 울어댄다. 막내는 나를 따라서 나보다 더 큰 소리로 울어 여름 한낮의 작은아버지네 마당은 나와 막내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엄마의 눈이 마루의 작은아버지를 향했다.

   ―야들이 왜 이리 운다요?

   작은아버지는 머쓱해졌다. 엄마가 작은아버지를 향해 큰 소리로 야들이 왜 운다요? 다시 한번 묻는다.

   ―먼지 일으킨다고 좀 했더만 저리 울어쌓네, 형수.

   ―아니…… 헌이가 더운게로 동생 데리고 또랑에 갈라고 그랬는갑만 작은아비가 되어서는 그거 하나 못 봐주고 아를 이리 울리오?

   ―아니…… 긍게 뭔 가마니에 아를 태우고 먼지를 일으킴서 저러고 다니냐고요, 이 한여름에?

   ―헌이 등을 보면 그런 소리 못할 것여. 이 한여름에 동생 업고 댕기느라 어린것 등에 땀띠가 뻘겋게 올라왔는디.

   엄마가 가마니 위의 막내를 번쩍 안아들고 작은아버지를 흘겨보며 집으로 향한다. 먼지를 일으킨 가마니는 작은아버지네 마당에 그대로 두고 엄마를 종종 따라가며 나는 계속 울고 있다. 그뒤로 한동안 사촌들은 우리 집으로, 우리 형제들은 작은아버지네 집으로 건너가질 못했다. 엄마의 화가 풀리질 않았기 때문이다. 고모가 엄마와 작은아버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화해를 시켜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걸로 생각했던 작은아버지는 엄마가 계속 화를 내자 어느날 아침에 우리 집과 작은집이 서로 오갈 수 있게 터놓았던 담을 이어 쌓아버렸다.

   아버지가 돌아와서 담을 보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시절이 좋아지기는 했네, 이런 시시한 일로 싸우고 담도 쌓고 하는 거 보믄.

   형의 말에 작은아버지는 우물이 있는 쪽의 담을 허물고 나에게 이제 막내 데리고 또랑 갈라믄 여기를 통해 가라,고 일렀다. 그렇게 허물어진 담이 지금의 작은 문이 되어 있다. 나쁜 일은 아니었다. 덕분에 작은 문은 도랑 쪽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집 마당을 통해 신작로 쪽으로 나가는 샛길까지 되어주었으니까. 작은아버지네는 그로부터 얼마 후에 읍내에서 쌀집을 해보겠다며 집을 팔아 이사를 했고 옆 동네 사람들이 작은아버지네로 이사를 왔다. 옆집이 작은아버지 댁이 아니었으면 담은 처음부터 당연히 이어져 있을 것이어서 우리 집과 작은아버지네를 막힘없이 통하게 해주던 끊어진 담은 곧 잊혀졌다. 처음부터 그렇게 이어져 있었던 것처럼.

 

   우물이 메워졌기 때문에 옆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도랑 쪽에서 자동차가 옆 마당까지 들어올 수 있기는 했다. 혹시 그걸 위해 아버지가 이 우물을 메운 것일까? 마을엔 여기뿐 아니라 집 안에 우물이 없던 집들이 공동으로 쓰는 우물이 여기저기에 파여 있었다. 상수도시설이 놓인 후에 마을에서 맨 먼저 쓸모없게 된 것은 공동우물이었다. 우물가에 모여서 쌀을 씻고 열무를 다듬고 흙 묻은 감자알을 씻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사람들이 없어도 우물엔 물이 차 있었다. J시에 올 적마다 신작로에서 내려 골목 맨 안쪽에 있는 집에 다다를 때까지는 공동 우물 두개를 지나게 되어 있었다. 상수도가 놓인 후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우물가를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선 저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감나무 잎이 빠져 있기도 했고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할 티끌들이 물 위에 떠 있기도 했다. 그 풍경이 너무나 고요해서 돌을 집어서 우물에 떨어뜨리면 정적에 싸여 있던 우물물에 파문이 일었다. 나중에 우물에 뚜껑이 덮이더니 더 나중에는 우물이 메워지고 없었다. J시는 지명 속에 우물 정 자가 들어갈 정도로 우물이 많은 곳이다. 어디에나 물이 많고 맑은 곳이 J시였다. 가끔 궁금하다. 메워진 우물 속의 물들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 것인지. 집 안에 있던 우물들도 공동우물처럼 다 메워졌는지. 우리 집의 우물엔 뚜껑이 덮여 있다. 아버지는 우물 속에 모터를 장착하고 우물가에 수도꼭지를 설치하고 거기에 호스를 달아 엄마가 우물물을 생활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마당의 수도꼭지를 틀면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우물 속의 물이 호스를 타고 흘러나온다. 마당의 장미나무에 뿌려지기도 하고 바깥에서 돌아와 발을 씻을 때 쓰이기도 한다. 나는 J시의 집에 오면 생각난 듯이 우물 쪽으로 가서 괜히 우물을 덮고 있는 뚜껑을 열어 우물 바닥을 내려다본다. 그 자리에서 아직도 물을 품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나는 메워진 우물 자리에 서서 다시 발로 바닥을 쾅쾅 두들겨보았다.

 

   시멘트로 덮인 저 아래엔 아직 물이 고여 있을까? 우물이 메워진 후 나는 여기를 지날 때마다 옆 사람이 누구건 여기에 우물이 있었는데……라고 웅얼거렸다. 내 혼잣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 여기에 우물이 있었지,라고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물이 메워진 자리에 서 있으면 어린 시절에 우물 턱을 붙잡고 저 깊은 곳을 내려다보던 일이 떠오른다. 이곳의 우물은 집 안에 있던 우물보다 더 깊어 보였다. 우물을 내려다보면 고여 있는 물이 보이지 않고 어둠만 한가득 쌓여 있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이 검푸르렀다. 그 속으로 한번 빠지면 다시는 바깥으로 나올 수 없을 것같이. 그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 우물 앞에서는 나 스스로 두레박을 우물 밑으로 내려뜨릴 생각을 못했다. 내가 그 두레박줄에 끌려 우물 속으로 끌려들어갈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옆을 지나갈 때면 두레박질이 하고 싶어서 우물곁을 맴돌았다. 한번은 논에 나간 아버지가 우물곁에 서 있는 내게 여기 서서 뭣 하냐? 물었다. 나는 아버지 물! 하며 손가락으로 우물가에 놓인 두레박을 가리켰다.

   ―집에 들어가서 마시제?

하면서도 아버지는 내 청을 들어주려고 긴 두레박줄을 우물 아래로 떨어뜨렸다. 아버지가 드리운 두레박이 우물 밑으로 다 내려가서 첨벙 소리를 내기를 기다렸다. 그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물을 마시고 싶은 것보다 그 소리를 듣고 싶었으니까. 어두워서 끝을 내려다볼 수 없으나 저 아래에는 물이 고여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게 첨벙, 소리였으니까. 다시 올라온 두레박 안에 맑은 물이 찰랑거렸다. 이 우물을 들여다볼 때면 헤아릴 길 없는 어둠이 불러온 두려움을 가라앉혀주곤 했던 그 맑은 물. 아버지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두레박 가득 물을 길어주고는 샛문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렇게 깊었던 우물 안을 무엇으로 메웠을까?

   이제 그 맑은 물은 사라지고 없는 것일까? 우물이 있던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다시 도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낮의 공기 속에서 비 냄새가 맡아져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이리저리 하늘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비가 내리려는가. 아버지는 우산 없이 나갔는데. 무심코 텃밭 쪽을 바라보았다. 텃밭 안에 한때 아버지가 소를 기르던 빈 우사가 폐가처럼 서 있었다. 나무를 대서 만들어놓은 울타리는 손으로 밀자 싱겁게 밀렸다. 양쪽을 맞대고 갈고리를 걸어놓았으나 시늉뿐이다. 우사 앞의 밭에는 상추와 아욱과 쑥갓 들이 웃자라 있다. 담벼락을 타고 머윗잎들이 뻗어 있고 한쪽에 부추도 푸르게 펼쳐져 있다. 또 밭에 씨를 뿌리셨네, 엄마의 공간이다. 엄마는 이제는 잘 걸을 수도 없으면서 텃밭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보행기를 밀고 다니면서까지 기필코 씨앗을 뿌린다.

 

   나는 텃밭으로 들어가 우사 안을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