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24회

   한때 이 우사에는 아버지가 기르는 소들이 칸칸마다 빽빽하게 있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아버지는 융자를 받아서 소를 늘렸다. 엄마는 빚을 내는 것을 꺼려했으나 아버지는 정부의 권장사항이니 잘못되기야 하겠느냐 생각했다. 잘못돼도 정부가 하는 일이니 책임을 져줄 것이라고. 빚을 내서 늘린 소이긴 했어도 우사에 가득 찬 소를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뿌듯했다. 양친을 잃고 외조부에게 송아지 한마리를 받아오던 어린 날의 가난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는 해가 뜨기도 전에 우사의 문을 열고 소들을 깨웠다. 뒷다리를 접고 엉거주춤 앉아 있던 소들은 이른 아침과 해 저물녘의 아버지 기척을 알아보았다. 아버지가 검은 장화를 신고 우사에 들어서면 소들은 아버지가 반가운지 우우― 소리를 내며 붉은 혓바닥을 내밀었다. 소들의 입김으로 곧 우사 안은 더워졌다. 소들에게 아침밥을 먹이려는 아버지의 부산한 움직임과 사료와 여물을 받아 씹기 시작하는 소들의 열기로 우사 안에 가득 차던 생기. 건장한 소의 다리들이 툭, 탁, 툭탁 소리를 내며 우사 안에 공명음을 만들었다. 소는 사료도 여물도 그냥 삼키지 않는다. 오래 씹고도 다시 뱉어내 되새김질을 한다. 그러느라 소의 입들은 끊임없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사료 부대를 뜯어 수십개의 여물통에 사료를 부어 여물과 섞고 물통에 새 물을 부어주고 소의 뒷다리들 사이에서 소똥들을 긁어내 한쪽에 쌓았다. 아침마다 아버지의 몸에서는 소똥 냄새가 났다.

 

   아버지의 몸에서 나던 소똥 냄새는 한때 우리들의 등록금이 되었다. 여름과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아버지는 우시장에 소를 내다 팔아서 우리의 등록금을 마련했다. 아버지는 마루에 앉아 소똥 냄새 나는 손으로 이것은 셋째, 이것은 헌이 거…… 돈을 나누어 등록금을 맞췄다. 혹여 서울로 가져가는 사이에 잃어버리기라도 할까봐 아버지는 끈 달린 헝겊 전대에 돈을 단단하게 싸서 여민 뒤 허리에 매어주었다. 방학이 끝나 그걸 허리에 차고 기차를 타면 전장에 나가는 것처럼 비장해지곤 했다.

 

   아버지는 큰오빠와 나만 이름을 불렀다. 둘째오빠를 둘째, 셋째오빠를 셋째라 부르면서 넷째인 나는 넷째라 하지 않고 큰오빠와 같이 이름을 불렀다. 여동생은 별명으로 불렀고 막내는 막내라고 했다. 아버지가 자식들 중 가장 의지하는 이는 누가 봐도 큰오빠다. 우리 가족 중에서 그걸 모르는 이는 없다. 아버지가 큰오빠를 부를 때는 자식을 부르는 것 같지가 않다. 친구를 부를 때와 같은 우정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큰오빠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미안하다,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거 내가 해야 헐 일인데……라는 말. 아버지가 나를 넷째라 하지 않고 큰오빠처럼 이름을 부를 때면 나는 얼른 접고 있던 다리를 펴곤 했다. 구부정하게 굽히고 있던 등도 반듯이 세웠다. 뒤축을 접어 신고 있던 운동화를 바로 신었고 나도 모르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단정히 했다. 나는 아버지의 넷째가 아니라 독립적인 “헌이”였으니까. 아버지가 넷째 대신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건 정확하지는 않으나 집을 떠난 후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헌이는 걱정할 것 없다, 헌이는 약속을 지킨다, 헌이가 그렇게 말했으면 맞는 말이다,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 긍정적인 말들의 영향은 작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말대로 걱정을 끼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벅찬데도 약속한 일은 지키려고 했다. 아버지가 그리 말했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알면서는 타인에게 틀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텅 빈 우사에 놓인 시멘트로 만든 여물통과 그 옆의 작은 물통 자리들이 유물같이 느껴졌다. 사료와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소들의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한데, 수우욱, 소리가 나도록 혓바닥을 내밀어 물을 빨아 먹는 소리도 들리는 듯한데, 여물통과 물통엔 흙먼지와 지푸라기들, 비닐조각 같은 것들만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높은 천장에서 내려온 거미집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터널 같은 그물망이 무지개 빛깔을 띠기도 했다. 얼굴에 팔에 거미줄이 끈끈하게 들러붙었다. 바람 통하라고 뚫어놓은 우사 천장 아래의 나무 창틀에 낡은 천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바람 통하라고 뚫은 것이나 한겨울 바람은 소들에게 너무 강해서 그 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쳐놓았던 것을 걷어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우사 안에서 걸어나오다가 울타리 옆의 폐가를 흘깃 쳐다봤다. 아버지가 우사 가득 소를 기르게 되었을 때 아버지를 돕던 웅과 낙천이 아저씨가 살던 곳이다. 방 한칸에 부엌만 딸린 곳이었으나 웅과 낙천이 아저씨가 차례로 그곳에 기거할 때는 훈기가 가득했던 곳이 곧 허물어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겨우 지상에 붙들려 있었다. 부엌 쪽엔 아예 문이 부서져서 안이 들여다보이고 옆집 담장까지 보였다. 웅은 저 아궁이에 고구마나 감자 때로는 처마 밑에 손을 넣어 잡은 참새를 구워 먹었고 낙천이 아저씨는 아궁이에 솥을 걸어 소들에게 먹일 소죽을 끓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딱 하나였다. 아버지 말밖에 듣지 않는다는 것. 덩치가 산만 하고 귀가 어둡고 셈을 할 줄 몰랐던 청년 웅과 몸집이 작고 머리카락은 세고 늘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걸었던 낙천이 아저씨는 엄마 말도 듣지 않았다. 특히 웅은 아버지가 이거 이거를 하라고 일일이 지시해주지 않으면 어디서든 드러누워 잠을 잤다. 밭이나 논이나 어느 때는 지붕 위에 올라가 햇볕을 받으며 자서 대개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웅의 얼굴이 다 떠오르다니. 나는 큼, 소리를 내보았다. 웅이 처음 우리 집 대문을 들어서던 때까지 기억이 나다니. 웅은 셋째오빠 또래였다. 웅이 우리 집에 살러 들어온다고 했을 때의 엄마 얼굴. 엄마는 아버지에게 내동의 웅이 우리 집에 온다고요? 확인차 물었다. 엄마가 알고 있는 웅이 그 웅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엄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속 터지네, 그 웅이 어떤 아인지 몰라서 그러요?

   얼굴까지 붉어지며 웅이 집에 오는 것을 반대하는 엄마 말에 아버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아를 데리다가 뭘 허겠다 그러요?

   아버지가 침묵하자 엄마는 목소리를 높여 아버지를 불렀다.

   ―호랭이 아버지!

   그제야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말귀 좀 못 알아들으면 어쩌간디?

   ―……

   ―힘은 쓰잖은가.

   ―……

   ―내가 전쟁 통에 웅이 집에 진 빚이 있어 그랑게 더 말 마소.

   ―그런다고 누가 알어주기나 하간디요?

   ―알어주라고 그러는 거 아니네. 웅이 조모한테 부탁을 받지 않었으면 모르까 청을 받었는디 모른 척은 못햐.

   ―당신은 잊어버릴 일은 좀 잊어뿔고 살어요. 뭔 그르케 하나하나 다 기억을 허고 그것을 다 갚어야만 헌다요?

   ―갚는다고 갚을 수 있는 일이간?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믄 그거는 하믄서 살라고 하는 것뿐이네.

   웅의 할머니가 웅의 손을 붙들고 우리 집 대문에 처음 들어설 때 웅은 할머니 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덩치가 커서 뒤에 서 있어도 웅만 보였다. 인자 이 아저씨 말만 들으면 되어, 알겄냐? 웅은 멀뚱히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버지가 웅의 등을 두들겨주자 웅은 머리를 긁적이기만 했다.

   ―웅이 좀 잘 부탁허요. 야가 사람같이만 사는 꼴을 보믄 내일 눈감어도 원이 없겄는디. 이대로는 눈을 못 감제, 내가. 집에만 있어놔서 어쩔랑가 모르겄지만…… 영 말귀도 못 알아듣고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먼 내가 도로 데리러 올 것잉게 부담 갖지 말고 좀 데꼬 있음서 세상 사는 법이나 좀 알으켜주소.

   아버지는 내가 뭘 가르칠 게 있을랑가요, 하며 웅을 데리고 우사에 갔다. 웅의 할머니가 아버지를 가리키며 이제 이 아저씨 말만 들으면 된다고 해서였을까. 웅은 아버지 곁을 떠나 읍내에 도장 파는 집으로 옮겨갈 때까지 아버지 말이라면 무엇이든 실행에 옮겼다. 웅은 부지런히 아버지 뒤를 따라다니며 사료를 챙기고 여물을 만들고 물을 길어오며 아버지와 함께 우사의 소똥을 긁어냈다. 때로 웅은 나무를 다듬어 사람들의 이름을 새기는 일에 골몰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대체 웅에게 어떻게 했길래 웅이 당신 말은 다 듣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내가 한 일이 없네, 그냥 송아지 한마리가 네 것이다, 했을 뿐이네, 했다. 나는 이제 폐가가 된 방 문고리를 잡아당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