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25회

   이 방이었다.

 

   아버지가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웅에게 “웅이의 송아지”라는 글씨를 반복해 쓰게 하던 방. 아버지가 직접 써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버지는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그 앞에 웅을 앉게 하고 “웅이의 송아지”를 반복해서 쓰게 했다. 그리고 읽게 했다. “웅이의 송아지”. 웅은 천자문을 외우듯이 “웅이의 송아지”를 입에 달고 다녔다. 드디어 어느날 웅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도 빈 곳에 “웅이의 송아지”라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나무를 잘라 대패질한 뒤 웅이의 손에 끌을 쥐여주고 거기에 “웅이의 송아지”라는 글씨를 파게 했다. 웅으로 하여금 글씨가 파인 자리만 먹물을 들이게 하자 “웅이의 송아지”라는 글씨는 문패의 글씨처럼 선명해졌다. 아버지는 웅이 직접 나무 양쪽에 구멍을 뚫게 하고 파란색 노끈을 달아 팻말을 만들어 송아지의 목에 걸게 했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웅의 얼굴은 늘 상기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송아지 목에 걸린 팻말을 가리키며 웅에게 읽어보라 했다. 웅은 목청을 높여 “웅이의 송아지”라고 똑바르게 외쳤다. 그렇게 우사의 송아지 한마리에게 “웅이의 송아지”라는 팻말이 걸렸다. 웅은 팻말에 글씨를 새기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부지런히 아버지 뒤를 따라다니며 사료를 챙기고 여물을 만들고 물을 길어오고 소들이 간밤에 싸놓은 똥을 쇠스랑으로 긁어내던 웅은 자주 나무를 다듬어 사람들의 이름을 새기는 일에 골몰했다. 아버지는 웅에게 아버지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글과 한문으로 써주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글자들을 웅에게 가르쳤다. 나중에 웅은 아버지가 부친으로부터 배운 사서삼경을 앞에 놓고 읽고 있었다. 아버지는 웅에게 앞으로 살아가려면 마을을 떠나서 읍내로 가야 하며 그러려면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일렀다. 읍내에는 할 일이 많고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집을 살 수도 있다고.

   웅이 떠난 후 낙천이 아저씨가 이곳으로 왔을 때도 엄마는 아버지에게 낙천이 양반이 우리 집에 와서 산다고요? 아버지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낙천이 양반이 뭘 할 줄 안다고 그러요!

   ―……

   ―나보고 낙천이 양반 수발 들라는 것이요, 시방?

   그는 동네 아이들조차 낙천이, 낙천이…… 부르며 놀리는 대상이었다. 그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아무 데서나 드러누워 잤다. 그를 집에 들이겠다고 하자 엄마가 화들짝 놀라 반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불만을 토로하는 엄마에게 낙천이 아저씨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읍내 다리 밑을 주거지로 삼고 지내던 사람들이 천변 기획정리로 어디론가 흩어져야 했을 때 남은 사람이 낙천이 아저씨였다. 그는 천변에서 봄바람에 떠밀린 듯 마을에 들어와서 들일이나 남의 집 일들을 해주고 살았다. 한집에 오래 있지도 않았다. 떠돌이처럼 이 집에 일년 저 집에 일년 이렇게 살던 낙천이 아저씨는 홀연히 마을을 떠나서 한동안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그가 어디를 다녀오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그는 어느덧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버려진 사람처럼 술에 취한 채 아무 데서나 자는 사람이 되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하는 게 아니라 몸이 허약해 한두잔만 마셔도 취하는 이가 낙천이 아저씨였다. 그에게 가족이 있는지 그가 마을을 떠나 있을 때는 어디에서 지내다 오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낙천이 아저씨를 수통스러운 데가 있는 사람이라며 끼고돌았다. 수통? 중학생 때이던가? 아버지가 낙천이 아저씨를 두고 표현하는 ‘수통’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사전을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사전엔 부끄럽고 가슴 아픈 데가 있다,라고 써 있었다. 엄마는 사람을 두려거든 짱짱한 일꾼을 둬야제 당신은 어찌 맨날…… 하다가도 아버지가 대꾸 없이 마당이나 대문이나 감나무를 말없이 쳐다만 보자 집에 닭 한마리를 들여도 뒤치다꺼리는 내 차지라 그런 거 아니요, 하면서 물러섰다. 엄마가 물러서자 아버지는 낙천이가 지 일은 지가 하게 해보겠다고 엄마에게 약속했다. 난리 통에 내가 인민군한테 소 뺏길까봐 밤에 소 끌고 읍내 경찰서로 가면 그때 다리 밑에서 낙천이 아저씨가 아버지 옆으로 와서 함께 있어줬다는 것이 아버지 말이었다.

   ―또 난리 때 이야기요?

   엄마는 듣기도 싫다는 듯이 수건을 다시 쓰고 뒤꼍으로 가는 것으로 낙천이 아저씨가 집에 들어오는 일을 수락했다. 웅이 떠난 자리에 낙천이 아저씨가 오고 그때는 송아지가 아니라 황소의 목에 “김낙천”이라는 팻말이 걸렸다. 웅과 낙천이 아저씨는 소들에게 여물을 주고 물을 갈아주면서 자주 “웅이의 송아지”나 “김낙천”이라는 팻말을 걸고 있는 송아지와 황소 앞에 서 있곤 했다. 내가 밥때가 되어 엄마 심부름으로 웅이나 낙천이 아저씨를 부르러 우사로 가면 웅이는 가끔 송아지 내 거, 하면서 해맑게 웃는데도 낙천이 아저씨는 물끄러미 황소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년쯤 웅이와 함께 소를 기르던 아버지는 웅을 읍내의 도장 파는 집으로 보내 우사를 떠나게 했다. 나라 하는 일을 보니 소 기르는 일은 희망이 없다면서. 농부들로 하여금 빚을 내서 우사를 짓게 하고 소를 대량으로 기르도록 한 정부가 외국 소를 대거 들여와서 소값이 폭락했을 때였다. 우사에 소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웃음이 많아진 아버지의 얼굴이 한꺼번에 십년은 늙어버렸던 때였다. 도장 파는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였다. 나무에 글씨 새기는 일을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아버지는 웅이 거기 가서 일을 열심히 배우면 뭔가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웅이 어디서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아버지에게도 중요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아버지가 글을 가르쳐본 것은 웅이 처음이었으니까.

   웅이 집을 떠나던 날 웅의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연신 고맙소잉, 참말로 고맙고만이라오, 했다. 웅의 손에는 “웅이의 송아지”라는 팻말을 건 소의 고삐가 쥐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웅과 웅의 할머니에게 지금 소를 팔지 말 것을 당부했다.

   ―소값이 개값이랑게요.

   지금이 지나고 시절이 좋아지면 그때 팔라고 했다. 웅이 소를 끌고 대문을 나서서 골목을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버지는 우두커니 서서 바라봤다. 아궁이 불에 구운 참새를 내게 불쑥 내밀어 나를 뒤로 자빠지게 했던 웅은 어쩌다 읍내에서 나를 만나면 헌아! 아무 데서고 이름을 크게 외쳤다. 웅이 나 놀라라고 불쑥 내미는 불에 구운 참새는 털이 벗겨진 채로 까맣게 그을린 것이었다. 털만 벗겨졌을 뿐 형체가 그대로여서 나는 매번 기겁을 하곤 했다. 웅이 가까이 다가와 또 불쑥 구운 새를 내밀까봐 나는 웅이 내 이름을 부르면 기겁을 하며 걸음을 빨리해 웅으로부터 멀어졌다.

 

   황소의 목에 걸어준 “김낙천”이라는 팻말도 낙천이 아저씨를 붙잡아놓는 것에 별 소용이 닿지 않았다. 여동생이 결혼을 했을 때 초롱꽃이 방울방울 달린 차렵이불을 결혼선물로 가져와 우리를 놀라게 한 낙천이 아저씨는 어느날 홀연히 우사의 거처를 떠났다. 그는 아버지에게조차 떠난다는 언질을 주지 않았다. 그가 인사도 없이 사라질 무렵에는 소값이 전의 팔십 퍼센트나 폭락해 있던 때였다. 논에 벼를 심는 대신 우사를 지어 소를 기르던 마을 사람들을 따라 아버지도 소값을 보상받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군청과 읍사무소로 향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가 경운기에 올라타면 낙천이 아저씨도 따라 탔다. 아버지가 소몰이 투쟁에 앞장선 사람들이 나눠준, 미국은 농축산물 수입개방 압력을 철회하라,는 플래카드를 우사에서 데리고 나온 소 등에 두를 때 낙천이 아저씨가 이쪽저쪽 끝을 잡아주었다.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J시를 벗어나 시위 현장인 진안으로 향할 때 낙천이 아저씨도 피해를 보상받아야 한다,는 플래카드를 두르고 따라나섰다.

   ―나도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줄은 몰랐어야……

   전쟁을 겪은 아버지는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너무나 절박헌게로 말을 해야 쓰겄다는 생각에 나서긴 했어도 앞장서게는 안 되더라.

   소를 끌고 나가 시위를 했어도 아버지에겐 소가 중요했다. 시위가 끝나면 아버지는 소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트럭을 불러 소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어도 결국 아버지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김낙천”이라는 팻말을 단 황소와 일곱마리의 소만 남기고 한마리에 70만원씩의 손해를 보고 소를 팔았다. 아버지는 그때 등이 확 굽어버렸다. 아버지는 등이 굽었으나 아버지에게 함께하자고 찾아온 마을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소값 폭락의 울화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사에 가득 차 있던 소를 팔자 우사는 조용해졌다. 낙천이 아저씨는 아침마다 남은 소들에게 밥을 주고 텅 비어 있는 우사 저쪽을 둘러보다가 어느날 사라져버렸다. 우사의 소가 여덟마리뿐이라 낙천이 아저씨가 집을 떠났어도 아버지가 특별히 아쉬운 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낙천이 아저씨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가 어디든 찾아갔다.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진 셋째오빠가 집을 나갔을 때 찾아다니던 때처럼. 낙천이 아저씨의 행방은 묘연했다. 황소라도 데리고 나갈 일이지…… 낙천이 아저씨를 찾으러 갔다가 낙담한 얼굴로 돌아온 뒤엔 우사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황소 목에 걸린 “김낙천”이라는 팻말을 씁쓸하게 바라보던 아버지.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폐가의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텅 비어 있을 줄 알았던 방 안엔 버려진 물건들이 선반과 바닥에 빼곡하게 차 있다. 거미줄은 우사에만이 아니라 방 안에도 있었다. 갑자기 잡아당겨 연 방문의 진동으로 여기저기에 걸린 거미줄들이 출렁거렸다. 거미 한마리는 거미줄을 길게 늘어뜨려 천장 저쪽으로 옮겨가려 하고 있었다. 날벌레 몇이 거미줄에 걸린 채 말라 있기도. 나는 거미줄이 얼굴에 들러붙는 것 같아서 손을 휘저었다. 거미줄 사이로 뜯어보지도 않은 상자들이 층층으로 쌓여 있는 게 보인다. 무슨 상자일까? 나는 안으로 들어가보려다가 다시금 눈앞을 가로막는 거미줄 때문에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웅이 떠나고 이 방을 오랫동안 거처로 삼았던 낙천이 아저씨의 비옷과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 고무장화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버려진 듯 아직도 구석에 놓여 있다. 장화 입구에도 흰 거미줄이 쳐져 있다. 거미줄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고 하더니…… 머리카락에 닿은 가는 거미줄이 질기기까지 했다. 먼지가 풀썩이는 느낌이라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망연히 서 있기만 했다. 안으로 들어가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열었던 방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빗소리가 귀에 먼저 들이쳤다. 돌아다볼 틈도 없이 굵은 빗방울이 흙냄새와 함께 폐가의 처마 밑으로 훅 밀려들었다. 나는 비를 피해 방금 닫았던 방문을 다시 열고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