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
3장. 나무궤짝 안에서
무슨 상자들이 저렇게 많이 쌓여 있는 것일까?
갑작스럽게 쏟아진 비에 떠밀려 폐가의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상자가 쌓여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얼굴에 거미줄이 들러붙는 것을 떼어내면서. 거미줄에 갇혀 널브러져 있던 날벌레가 내 움직임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뒤척거렸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쌓여 있는 상자는 거의 다 택배 상자들이다. 대부분 포장도 뜯지 않은 것들이 뒤죽박죽 쌓여 있다. 크기도 들쑥날쑥하다.
이 상자들이 개봉도 안 된 채 왜 여기에 쌓여 있는가.
의아한 마음으로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샴푸 상자다. 다른 상자를 집어 살펴보았다. 비타민D. 이건 무엇일까, 살펴보니 단백질 파우더다. DÖHLER. 완두단백분말(독일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아버지는 이것이 무엇인 줄 알고 주문한 것일까? 나도 모르게 상자들 앞에 주저앉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운동화, 옷걸이, 다리미, 칫솔걸이. 아침에 아버지가 국악원 모임에 간다고 대문을 나선 뒤에 그 대문으로 들어온 택배 기사의 머뭇거림이 떠올랐다. 헛간 평상에 놓아둔 프라이팬 상자도 동시에. 아버지가 직접 받았다는 택배들이 이것들인가? 가능하면 엄마 모르게 배송해달라고 했다던? 어떻게 엄마 모르게 배송이 가능하지? 쌓여 있는 택배 상자들의 적지 않은 양에 나는 먹먹해졌다.
정말 아버지가?
나는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기분으로 이 물건들을 주문하는 아버지를 상상해보려고 했지만 눈만 껌벅거려졌다. 아버지는 왜 이런 물건들을 주문해서 포장도 풀지 않은 채 폐가의 거미줄투성이의 이 방에 쌓아둔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으니 눈앞의 택배 상자들이 헛것들 같아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이건 손 소독제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택배 상자를 뜯어내자 따로 포장된 손 소독제 상자가 나왔다. 눈에 익는다 싶었는데 서울의 내 집에 배송된 것과 같은 상표다. 나는 손 소독제 상자를 뜯어보았다. 1리터로 표기되어 있는 큰 병 두개와 작은 사이즈의 손 소독제들이 나란나란 들어 있다. 나는 작은 병을 집어 들어 물끄러미 보다가 겉에 쓰여 있는 글씨를 읽었다. 손, 피부 등의 살균소독. 키보드, 책상 등의 살균소독. 항균 99.9%. 에탄올 62%. 본 제품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에 의거 교환 또는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안내문이 공허하게 읽혔다.
도시에서 새벽에 잠에서 깨어 텔레비전을 켰다가 홈쇼핑 채널에서 손 소독제를 팔고 있는 쇼호스트를 우두커니 바라본 적이 있던 어느날. 쇼호스트는 야윈 손에 셀 수도 없이 여러번 소독제를 뿌리며 지금 우리에게 손 소독제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했다. 소중한 우리들의 손이 옮길 수 있는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이른 새벽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을 향해 열심히 손 소독제를 설명하고 있는 쇼호스트. 잠이 깨어 우두커니 그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뜻밖의 고독이 밀려왔다. 종료시간 3분인가를 남겨놓고 나는 화면에 떠 있는 자동 주문번호를 눌러서 손 소독제를 주문했었다. 이틀 후쯤 도시의 내게 배송된 손 소독제 상자가 J시의 이곳에도 있다. 그 새벽에 아버지도 이곳에서 그 화면을 같이 보고 있었을 수도. 나는 도시의 내 집으로 배송되었던 손 소독제를 어디에 뒀던가.
신문에서 읽은 것인지 책에서 본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미국의 어느 해변에 있는 요양원에서 벌어진 한 할머니 이야기가 떠올랐다. 연금을 받을 수 있고 얼마간의 현금이 들어 있는 통장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 요양원에 입원한 처음 얼마 동안은 가족들이나 친지들이나 친구들이 할머니를 만나러 요양원을 찾아왔으나 그 생활이 길어지자 할머니는 홀로 요양원에 고립되었다. 하루에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창밖을 내다보며 지내는 날들. 어느날 할머니에게 우연히 전화 한통이 연결되었다. 전화로 물건을 파는 판매원이었다. 적적했던 할머니는 판매원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판매원의 목소리를 끝까지 다 들었다. 통화가 길어진 게 미안해서 그날 할머니는 물건을 샀다. 첫 판매에 성공한 판매원은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할머니는 판매원의 얘기를 고개를 끄덕여가며 듣기도 하고 응응, 한마디씩 맞장구도 치고 통화가 끝날 무렵엔 그 물건을 샀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는 몇년 동안 지속되었다. 물건들이 할머니의 방에 차곡차곡 쌓였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 전화벨은 계속 울렸을 것이다. 할머니가 죽은 후에 할머니의 방에서 우편으로 배달된 포장도 뜯지 않은 물건들이 쏟아졌다,고.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는 생각이 나가지고…… 아버지가 한낮이나 깊은 밤중이나 첫새벽에 홈쇼핑 채널을 보며 쇼호스트의 얘기를 듣다가 주문번호를 누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건 울적한 일이었다. 적막한 한낮이나 잠이 깬 한밤중에 쇼호스트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아버지라니. 마음이 막막해지더니 입안에 맨밥을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는 기분이 되었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나는 지난 몇년 동안 이 시골집의 부모에게 전화조차 제대로 걸지 않았다. 특히 아버지에게. 내가 편치 않다는 이유로 부모가 곁에 오게 하지도 않았다. 다음에요, 다음에 뵈어요, 다음에 해요…… 그랬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후회할 것이라고.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던 일들을 곧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아버지가 원한 건 어려운 일들이 아니었으니까. 아버지는 낙담한 나와 함께 있고 싶어했을 뿐이었다. 얼굴을 보고 밥을 같이 먹고 내 집 감나무에 거름을 묻어주고 싶어했는데 나는 다음에요, 했다. 가끔 J시에 내려가 아버지와 함께 뒷산 쪽을 천천히 오르거나 꽃게를 사러 읍내에 다녀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선산에 가던 일도 하지 않았다. 적적해진 아버지가 낡은 북의 먼지를 쓸어내고 북 장단을 하며 이산 저산 꽃이 피네…… 소리를 낼 때 곁에서 들어주는 일도 하지 않았다.
저게 여기에 있었네.
쌓여 있는 택배 상자들 앞에서 난감하게 주저앉아 있다가 나는 택배 상자가 가리고 있는 선반 위에 놓인 것이 오래전 아버지 가게에 있던 그 나무궤짝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택배 상자들을 밀어내며 선반 위로 손을 뻗어 나무궤짝을 끌어내리려다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뜻밖의 날카로운 통증에 비명이 새어나왔다. 손에 잡힌 나무궤짝을 놓치지 않으려고 양손으로 붙잡고 있다보니 찧은 곳을 만져볼 수가 없었다. 두피가 금세 부풀어오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게 여기에 있었다니…… 나는 잠깐 눈을 감고 통증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나무궤짝 안엔 무엇이 들어 있는지 꽤 무거웠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끔 이 나무궤짝이 떠오르곤 했다. 내가 이 고장을 떠난 후로는 이 나무궤짝을 본 적이 없어서 아버지가 가게를 정리할 때 그곳에 두고 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나무궤짝의 행방을 물어본 적은 없었다. 이 나무궤짝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을 줄이야.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며 머리를 찧긴 했지만 선반에서 나무궤짝을 내려 무사히 방바닥에 내려놓을 때 우사 쪽으로 열려 있던 폐가의 방문이 벌컥 젖혀지며 후드득후드득 세찬 빗소리가 들렸다. 텃밭의 머위 잎사귀 정도는 뚫어버릴 듯한 기세였다.
아버지가 가게를 운영해서 번 얼마간의 돈이 들어 있던 나무궤짝. 오백원짜리 지폐가 한두장 들어 있을 때도 있었고 어쩌다 천원짜리 지폐. 그리고 그 옆의 동전들. 내가 이 나무궤짝을 이따금 떠올리는 건 마을 끝에서 가게를 하던 아버지를 속인 기억 때문일지도. 맹랑한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모를 법한 것들을 생각해내고는 그걸 구해야 한다며 아버지에게 거짓말하곤 했다. 노트, 연필, 크레파스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게 아닌 것. 도무지 아버지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을 생각해내느라 철길을 건너 아버지에게 돈을 타러 가는 소녀는 제법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소녀가 불쑥 셀로판지를 사야 한다거나, 외우기 힘든 책 제목을 대면서 그걸 사야 한다고 하면 아버지는 물끄러미 소녀를 바라보다가 나무궤짝을 열고 소녀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꺼내 주곤 했다. 만약에 아버지가 돈을 주면서 소녀에게 그 쓰임에 대해 자세히 물었거나, 그걸 꼭 사야 하느냐고 했거나, 아껴 써야 하며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등의 말을 했으면 나는 이 나무궤짝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해서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술독을 씻어내다가 일어나서 웃옷 자락에 물기를 닦고는 나무궤짝을 열어 소녀가 말한 만큼의 돈을 꺼내주었다. 물끄러미 소녀의 눈을 바라보거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주며 학교 늦는다고 어서 가라,고 했다. 거짓말을 해서 받아든 돈으로 소녀는 무엇을 했을까? 만화방에 갔을까? 학교 앞 문방구 앞의 탄불 앞에 주저앉아 국자에 달고나를 만들어 먹었을까?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할 수는 없으나 아버지를 속였다는 죄책감은 마음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 거짓말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아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 거짓말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버지에게 수업 준비물이나 숙제를 핑계 삼아 지어낸 거짓말이었다는 생각까지 보태지며 점점 무게가 더해졌다. 언젠가 친구에게 이런 내 마음에 대해 털어놓았더니 친구는 나에게 참 순진하다고 했다. 뜻밖의 반응이라 응? 했더니 왜 아버지가 너의 거짓말을 몰랐을 것이라 여기느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돈을 준 거라고? 나로서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러니 아버지는 속지 않았다는 것이 친구의 말이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그렇게 속는 척해줄 뿐 속지 않는다고. 아버지들이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급기야 친구는 속는 척해주는 게 아버지들의 역할이라고까지 했다. 친구의 말처럼 아버지가 속은 게 아니라고 해서 내가 아버지를 속이지 않은 것이 되는 건 아님에도 친구의 말은 묘하게 위로가 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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