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27회

4장 등 뒤의 빛

 

유년기의 민규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던졌던 유일한 사람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이었다. 물론 민규에게만 물은 것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는 누군가의 특별한 관심을 받거나 주의를 끌어본 적 없는 어린이였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아이에 가까웠다. 어른이 되고 뒤늦게 「여고괴담」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에 그는 놀랐다. 그것은 영락없이 자신의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해가 거듭되도록 계속 교실에 남아 있다 해도 아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아이. 존재감 없는 아이.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아이.

그것은 부모가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부모가 그에게 바라는 건 오로지 혼나지만 말라는 것, 그 하나뿐이었다. 늘 문제를 일으키곤 했던 두살 위의 형 탓이었을 것이다. 민규는 부모를 사랑했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랑의 방법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혼나지 않기 위해서는 눈에 띄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교과서에 자신의 미래나 장래희망과 관련된 내용이 나왔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담임은 반 아이들에게 돌아가며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자 2분단 셋째줄부터.”

마침 2분단 셋째줄에 앉아 있던 민규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지난 밤 꾸었던 꿈이었다. 그가 일상에서 접해본 꿈이라는 단어의 용례는 고작 그 정도뿐이었던 것이다. 아랫동네 화장품가게 여자는 돼지가 떼로 덤비는 꿈을 꾸더니 복권 맞았대. 종점 앞 슈퍼 남자가 배달 갔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잖아, 근데 글쎄 그 집 여편네가 그 전에 사나흘 연속으로 아랫니 윗니 돌아가며 빠지는 꿈을 꾸었더래.

그러니, 민규에겐 꿈이 무엇이냐는 말이 무슨 꿈을 꾸었느냐는 말로 들리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저, 옆, 옆집 개가.”

민규가 더듬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개? 멍멍개?”

담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민규는 일어나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떨려서 기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옆집에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열마리도 넘게 낳아서, 한마리를 제가 안고 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담임은 썩은 어금니가 들여다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하. 그러니까 너는 지금 개가 되고 싶다는 거야? 개새끼가 되고 싶다는 거야?”

아이들이 따라 웃었다. 누구는 손뼉을 치며 웃고 누구는 발바닥을 구르며 웃고 누구는 책상을 치며 웃었다. 시키는 대로 답을 했을 뿐인데, 남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던 꺼림칙한 기분은 꽤 오래도록 민규의 기억을 따라다녔다. ‘꿈’에 그 낯익은 의미 말고 또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의 막막한 부끄러움도 함께.

꿈은 조용히 자라났다. 소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그의 꿈은 ‘자동차’로 귀결되었다. 자동차 디자이너, 자동차 정비사, 카레이서 같은 일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들 중 어떤 특정한 하나를 꿈꾸었던 게 아니다. 무엇이든 좋았다. 자동차 곁에서 자동차에 대한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어쩌면 그는 그냥 자동차 그 자체가 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지연을 만난 후, 그에게는 꿈이 하나 더 생겼다.